몇년 전 뉴스 한 토막에서, ‘복권으로 수백만달러의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의 현재 모습’에 대한 조사결과를 들은 적이 있다. 충격을 준 부분은, 호화저택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 거라 생각됐던 사람들 중에는 복권당첨 당시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못한 상태에 있거나 갑작스러운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TV나 영화에서 등장한 슈퍼히어로를 흉내내다가 사고를 입는 아이들의 소식이 종종 들리곤 했다. 일반적인 인간의 힘을 뛰어넘어 ‘악’을 징벌하는 ‘슈퍼히어로’의 존재는 어느 시대에나 동경의 대상이다.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수많은 부조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공상적인 해결수단으로서 널리, 그리고 오랫동안 쓰인 캐릭터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동경해 마지않는 이러한 ‘힘’의 소유자들은 대체로 그리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괴력의 소유자 ‘삼손’은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배신당하고, 호랑이도 맨손으로 때려잡은 남이 장군은 28살의 나이에 모함을 받아 죽었다.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히어로들은 모델이 된 동물의 이미지가 문제였는지 허구한날 누명을 쓰고 경찰에게 쫓긴다(‘토끼맨’이나 ‘도그맨’이었다면?). 심지어 <X맨>에서는 ‘돌연변이’라고 불리며 경계의 집단으로 묘사되는 등 날이 갈수록 ‘초인’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밀리터리와 60∼70년대 호러SF영화 마니아인 만화가 니시카와 로스케의 연작과 단편모임집인 <SF/페치 스내쳐>에서도 불쌍한 영웅 한명이 등장한다. 지난해 말에 일본에서 출간된 이 만화의 주인공 ‘쿠리모토 하루’는 원래 평범한 여고생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우주형사 303호와 만나게 되면서 그와 같이 지구로 숨어든 우주범죄자들을 색출해 없애는 ‘지구의 파수꾼’이 된다는 설정이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영웅만화와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 우주형사는 안경형(보스턴형, 일반적으로 뿔테라 불린다) 우주인이고, 우주범죄자들이 전부 ‘팬티’, ‘실내화’, ‘브래지어’, ‘양말’ 같은 형태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을 색출해내는 방법은 외계인에게 치명적인 독약이 되는 인간의 ‘타액’, 즉 '침'을 발라야 한다. 정리해보면 뿔테안경을 쓴 여고생이 몰래 친구들이 벗어놓은 신발, 속옷, 수영복 등을 핥아서 도망치는 물건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시선에서는 변태로밖에 안 보이는 이런 행동을, 첫화부터 같은 반 친구들에게 들킨 ‘하루’는 학교신문에 대서특필되고 만다. 물론 자신의 처지를 말할 수 없는 주인공은 나중에는 친구들로부터 ‘천성적인 변태소녀’로 공인받는 수준에 이른다. 코믹만화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정의’를 위한 주인공 역이라도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설정이다.
주입식 정보에 익숙해지는 현대사회이다보니 특정사건에 대해 이야기되는 대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지만, 이처럼 사람들의 행동에는 양면성이 있게 마련이다. <성공시대>에 나온 사람들도 고민이 있게 마련이고, 앞서 말한 행운의 주인공인 ‘거액복권 당첨자’들의 사연처럼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가지고 그 사람이나 사건을 일차원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혹시라도 지나가다가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히어로라도 만나면, 어깨라도 두드려주기 바란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고생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김세준/ 만화·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