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처럼 소비되곤 하는 예술작품에 순위를 매긴다면, 구스타프 클림트는 단연 수위를 차지할 것이다. 특정 화풍에 엄격하게 규정되어지지 않은데다가 묘한 매력으로 감상자를 빨아들이는 클림트의 그림은, 그래서 미술사 책보다는 오히려 개인 블로그나 미니홈피에서 만나는 것이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다. <클림트>는 이름 그대로 그에 관한 소설이다. 책이 따라가는 시선은 가장 오랫동안 그를 곁에서 지켜왔던 에밀리 플뢰게의 것이다. 2차대전을 피해 클림트와 주로 시간을 보냈던 아터 호숫가로 피난 온 에밀리 플뢰게는 인생의 말년을 앞두고 그녀의 인생을 지배했던 클림트를 추억한다. 수많은 여자와 자유로운 연애관계를 이어온 클림트와, 그를 사랑한다고 깨닫는 순간부터 그의 존재가 평생의 마음앓이가 될 것을 예감한 플뢰게의 관계는 시작부터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었다. 열두살 어린 나이에 제자와 스승으로 만난 에밀리 플뢰게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로뎅-카미유 관계처럼 극적이지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형상화된 영화 속 베르메르-그리트처럼 그저 애틋하지만도 않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묘사되었던 다채로운 표현처럼 그들은 하나의 색깔로 규정하기 어려운 사이였다. 44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도 결국 한 단어로 명명하기 어려운 그들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책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은 클림트가 에밀리와 자신을 모델로 <키스>를 그리는 장면이다. 그를 독점할 수 없었지만, 어떤 여자와도 가질 수 없었던 특별한 관계라고 믿는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배어나온다. 클림트의 다른 연인이었던 아델레 블로흐 바흐어가 <키스>의 진짜 모델일 것이라는 논쟁은 중요하지 않다. 실존 인물을 새로운 사실과 함께 가공한 이야기는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화가 클림트만의 것이 아니라, 그가 죽음 앞에서 마지막으로 불렀던 에밀리와 그녀의 사랑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