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는 “디즈니는 야수를 얽어매고 있는 주문을 풀어주지만, 그 순간 우리는 다른 주문에 걸리게 된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아마도 책의 제목을 제공해준 듯한 이 문구는, <우리는 다시 디즈니의 주문에 걸리고: 영화, 재현, 이데올로기>라는 영화비평서가 붙들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요컨대 그것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우리의 걸음을 영화관으로 재촉하게 한 달콤한 (대중)영화들이 ‘또다시’ 우리를 무심코 홀리게 하는 주문에는 도대체 무엇이 깃들여 있는가, 라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자연히 이건 주문에 무방비상태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지혜롭게 맞설 수 있는 우리가 된다는 것의 문제의식과도 연결될 것이다.
여기서 어느 정도 드러나듯이, 사회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문화비평가가 쓴 영화비평글들을 모아놓은 이 책은 무엇보다도 사회학적인 의미의 계몽적 작업이란 경로 위에서 영화비평을 써내려간 시도의 산물이다. 그래서 영화란 “특정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사고를 형성하는 기능을 하는” 문화적 생산물이며 그렇기에 그것이 사회에 배포될 때 어떤 문화적, 정치적 의미들이 전달되는가를 비판적으로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비평작업의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우리는 다시…>의 근저를 이룬다. 그 같은 판단 아래 저자는 우리가 단순히 즐기기만 했던 영화들이 실은 심층에 내밀하게 감추고 있던 면모들, 예컨대 디즈니 애니메이션들 속에 숨은 동화의 탈도덕화나 <쥬라기 공원>의 이면에 있는 계급관계와 인종적 편견의 문제 등을 차근차근 밝혀내 보여준다.
<우리는 다시…>가 비록 꼼꼼한 비평들의 모임이긴 하나 이데올로기 비평에서 종종 마주치곤 하는 문제의 단순화나 비약의 오류로부터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은 미덕들이 그런 ‘소소한’ 단점을 간단히 덮어주는 저작이라고 부를 만하다. 여기서 으뜸가는 미덕으로는 아무래도 특정한 영화를 맥락화하는 데 있어서 드러나는 통찰력과 지적 성실성을 꼽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에이리언> 시리즈를 분석한 글에서 보듯이 영화들을 당대 사회의 증후와 연결할 때만이 아니라 <라 주테> <터미네이터> 사이의 영향관계를 읽어내는 데에도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처럼 박식함이 바탕이 된 글들을 쓰면서도 저자는 전혀 젠체하지 않는다. 그리고 ‘계몽적 작업’에 충실하겠다는 듯 친절하면서도 건조하지 않게 깔끔한 문장들로 우리를 글 속으로 잘 안내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애초의 계획과 달리 완성치 못해 싣지 못했다는 글들(우디 앨런, 영화와 음악, 플래시백 등에 대한)이 우리 앞에 선을 보였으면 하는 기대를 갖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