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990~1918>
스티븐 컨 지음 l 박성관 옮김 l 휴머니스트 펴냄
불교의 연기설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진작부터 모든 건 연관되어 있다. 문제는 그런 무수한 연관의 갈피와 얼개를 파악하는 일이다. 역사학자 스티븐 컨이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한 연관의 시간적 범위는 1880년부터 1918년까지이며 무대는 유럽이다. 이른바 ‘벨 에포크’(좋았던 시절)라 일컬어지는 시기를 포함하고 있으며, 세기말과 제1차 세계대전 시기도 포함하고 있다. 컨은 그 시기의 무수한 연관의 갈피와 얼개를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로 파악하려 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미술 분야에서 입체파는 여러 시점에서 본 대상의 내부와 외부를 하나의 캔버스 위에 펼쳐놓았다. 이를 통해 회화의 전통적인 공간적 및 시간적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다. 그런가 하면 1차 세계대전의 전장에 등장한 군용 트럭에는 주위 배경과 구별되지 않도록 하는 위장술(카모플라주)이 적용됐다. 입체파의 전략과 군사 분야의 위장 전략이 같은 시대에서 연관되어 있는 셈이다. 저자는 환원주의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제1차 세계대전을 입체파적인 은유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어디 그뿐이랴. 작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시도한 사적인 시간, 즉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시간과 속도가 다른 시간은, 철학자 베르그송이 붙잡고 씨름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예전에는 무시되어온 ‘빈’ 공간이 부활했다. 건축의 빈 공간과 도시의 광장, 입체파의 사이공간, 변경, 국립공원, 말라르메의 공백,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과거 등은 일종의 부정성으로서, 특권, 권력, 성스러움 등 전통적인 낡은 성역을 공격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자료가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에 더없이 충실하다. 무수한 자료들을 다스려 유럽의 세기말, 세기 초 40년 문화사의 지형도를 그린 것이다. 그 지형도는 점묘화나 모자이크화를 닮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이리저리 건너뛰는 징검다리 독서가 적합하다. 그렇게 건너뛰어 다니다보면 어느새 그림 전체의 꼴이 눈앞에 펼쳐지는 독서 체험이 가능하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런 성격의 책은 번역자를 무던히도 괴롭힌다. 확인해야 할 엄청나게 많은 사항들이 번역자의 머리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작업 속도를 자꾸만 더디게 한다. 물적 보상만 생각해서는 감내하기 힘들다. 번역자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