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리턴> O.S.T|유니버설 발매
개인적으로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서 초기 고다르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림을 느낀다. 기타노 영화는 드라이한 착잡함의 영화, 무표정의 죽음을 그리는 영화, 자폭의 영화다. 물론 서 있는 자리는 고다르와 기타노가 다르다. 전후의 허무적 실존주의를 바탕으로 한 고다르의 초기 영화들은 삶에의 근원적인 회의에서 출발하는, 그러나 동시에 충일한 자기의식에 사로잡힌 자아의 영화인 반면, 기타노 영화는 삶에의 애착 자체가 일종의 원죄인 자들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다르는 붙들려고 하고 기타노는 ‘놓으려’ 한다. 고다르의 자폭이 ‘격렬한 자기 껴안음’이라면 기타노의 비극적 톤은 ‘순순히 자기 자신을 내놓음’이다. 선(禪)적인 경지로도 보이는 이러한 색깔은 그러나 그렇게 한가하지는 않다. 전후 일본 지식인의 회한이랄까, 그의 영화에서는 그것에 대한 매우 고통스럽고 충격적인, 솔직하고 투명한 고백이 보인다. <하나비>나 <소나티네>의 블루톤이 말해주는 것은 그것이다.
영화음악가 히사이시 조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들과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들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단골 손님. 1950년 생, 일본 구니타치 음악대학 졸업. 한때 미니멀리즘에 경도된 적이 있음. 그래서 그런지 그의 음악은 멜로디도 멜로디지만 리듬의 변화에 민감하다. 영화가 톤을 바꿀 때마다 그에 걸맞은 리듬을 찾아 약간은 반복적인 방식으로 그 리듬을 배경에 깐다.
일본만화와 극영화의 최고봉만을 상대하는 듯한 그는 역시 테크니션이다. 그만의 특유한 색깔이 있는 것도 같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분위기’로 전해지는 색깔들이다. 영화에 따라 테크노적, 민속음악적, 감상적 발상의 음악을 거의 자유자재로 변화시켜가며 구사한다.
어떻게 보면 습작 같기도 한 영화 <키즈 리턴>(1996)에서 기타노는 인물 탐구에 집중하고 있다. 인물들을 설정하는 방식은 러시아 작가 체호프 풍이다. 열심히 복싱을 하는 애송이가 등장하는가 하면 그의 곁에는 ‘변칙적인’ 체중 감량의 비법, 다시 말하면 인생을 망치는 법뿐만 아니라 그것을 효과적으로 남에게 감염시키는 법도 알고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청소년기의 씁쓸한 추억을 회상조로 돌아다보고 있는 이 영화는 그들을 감정의 높낮이를 최대한 자제하고 매우 중성적으로 잡고 있다. 그래서 인물들은 어딘지 나무 인형들 같아 보인다. 그 ‘나무 인형’들이 바로 기타노가 창조한 특유의 영화세계 속 인물들이다.
이 영화에서도 기타노 특유의 드라이함은 잘 살아 있다. 평면적이고 단순한 컷,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포커스 등이 그 드라이함을 받쳐주지만, 음악 역시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듣다보면 기본적으로 느껴지는 것 중 하나가 ‘평범하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은 사실 입체적인 생동감을 지니고 있는 음악은 아니다. 멜로디도 어떤 의미로는 구태의연하거나 무덤덤하며 쓰이는 악기의 톤도 다양하기는 하지만 무채색에 가깝다. 그래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만을 듣다보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중성적인 특성’이 오히려 영화에는 잘 붙는다. 특히 히사이시 조가 기타노 영화에서 발휘하는 힘은 그 ‘중성적인’ 색채에 있는데, 이 영화의 음악도 그렇다. 감독들 중에는 음악이 영화를 과도한 채도로 떡칠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 생각에는 기타노도 필시 그럴 것이다. 그의 영화 자체가 중성적인 채도 속에서 특유의 터질 듯한 침묵을 몰고 가는 스타일이니, 음악이 붕붕 날아다녀서야 되겠는가. 뒤늦게나마 발매된 O.S.T는 히사이시 조의 그러한 중성적 특성을 좀더 섬세하게 감상할 기회를 제공한다. 비디오로 영화를 한번 빌려본 다음에 찬찬히 다시 듣는 것도 이런 유의 O.S.T를 즐기는 재미 중 하나일 것.
성기완|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