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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초대
2001-05-10

영화음악 <시민 케인>

오슨 웰스가 만든 미증유의 걸작 <시민 케인>의 키워드는 ‘깊이’이다. 영화 속에는 또다른 영화가 있고, 케인의 승승장구 뒤에는 외로움과 추문이 있다. 화면의 한켠에 어머니가 아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을 견디며 모딜리아니의 그림처럼 비스듬히 걸려 있고 그뒤로 동등한 시각적 지위를 가진 아버지와 은행가가 있듯, 화면의 포커스는 인생의 흐름 깊은 곳에 존재하는 것과 겉모습을 동시에 붙들려 하고 있다. 아니, 겉모습을 뚫고 들어가 그 깊은 곳에 있는 무엇을 건지려 한다. 그 맨 끝에는 신비의 단어 ‘로즈 버드’가 있다. 영화의 구조는 케인의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거기서 다시 빠져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발견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먼 굴뚝에서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연기가 솟아오를 뿐이다. 그러나 ‘들어갔다 나온다’는 바로 거기에 카메라의 의도가 있다.

영화음악을 맡은 버나드 허먼은 예전에 <택시 드라이버>를 소개하면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아주 괴팍한 영화음악 천재였다. 초기 출세작인 이 작품에서 버나드 허먼은 매우 인상적인 음악적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영화는 하나의 트릭으로부터 시작한다. 케인이 죽었다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다큐멘터리’ 화면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음악은 뉴스용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행진곡’ 풍의 힘찬 톤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톤은 맨 처음, 유리공을 툭 떨어뜨리며 ‘로즈 버드’의 외마디 속에 죽어간 케인을 보여주는 대목의 음산한 브라스 멜로디와 첨예한 대조를 이룬다. 그 두톤의 대조를 통해 깊이와 연대기의 시간적 전환과 진전을 음악적으로 받쳐주고 있다. 신문사 직원들이 라이트를 끄면서 다큐멘터리는 종료되지만, 다큐멘터리의 느낌은 영화의 끝까지, 케인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지속되는데, 그 톤의 유지는 음악적으로만 명시적으로 보장된다. 맨 앞에 나왔던 힘찬 행진곡 풍의 음악이 변형, 반복됨으로써 케인의 일대기를 연대기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장면이 맨 앞에 등장했던 다큐멘터리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화가 ‘연대기적 세계’에서 ‘깊이’의 세계로 이동할 때 음악도 함께 이동한다. 이때 음악은 버나드 허먼 특유의 도시적이고 음울한, 느릿한 불협의 브라스 섹션 위주로 진행된다.

이 영화는 사운드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도 기념비적인 몇개의 장면들을 가지고 있다. 우선 귀에 들어오는 것은 ‘신문사세요!’ 하고 외치거나 ‘해리 실버스톤 부인의 살해사건’이 실린 신문을 사라고 외치는 사소한 대목이다. 어느 이름 모를 성우가 질러대는 이 소리들은 어느 순간 그 배경에 흐르는 음악과 협화음을 이루면서 음악의 일부가 된다. 또 영화가 순간적으로 ‘뮤지컬’로 변모하는, ‘뉴욕 최고 판매 부수’를 올린 것을 기념하는 파티장면도 기념비적이다. ‘자연스러운 낯섦’이라고나 할까. 파티장이 뮤지컬 무대처럼 변해버리는 그 ‘낯선’ 반전을 ‘파티장에 동원된 브라스 밴드’라는 장치를 통해 놀랍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그 순간 영화는 쇼가 되어버리고 인생이나 케인의 정치적 이력도 쇼가 되어버린다. ‘뿜빠뿜빠’하는 보드빌 풍의 음악은 그 자체로 일종의 패러디로 작용한다. 또한 케인이 첫부인과 아침식사를 하는 유명한 장면에서도 음악은 매우 인상적이다. 긴 시간의 흐름을 음악적인 흐름이 보장하고 있는 이 장면에서, 음악은 즐거운 느낌에서부터 점차 우울하고 슬픈 느낌으로 변화함으로써 그 ‘긴 시간’ 동안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 밖에도 이 영화는 장면장면 독특한 사운드의 활용을 선보이고 있다.

훌륭한 영화음악의 기본 특징은 따로 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특히, 의도적으로 그러하다. 음악과 대사, 효과음들이 독자적으로 기능하다가 한데 어우러지는 순간을 이 영화처럼 효과적으로 잡아낸 영화는 지금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