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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칼럼니스트 이철민의 <인터넷 없이는,영화도 없다>
2002-08-29

영화는 어떻게 인터넷과 조우했나

이제는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인터넷과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영화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90년대 중반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은 우리의 생활을 바꿔놓았다. 어떤 정보를 찾으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인터넷을 뒤지는 것이고, 취미가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가장 빠른 방법도 인터넷이다. 소멸해가던 편지를 되살린 것은 이메일이나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는 메신저다. 이제는 인터넷이 없으면 생활의 시스템 자체가 흔들릴 지경이다. 영화에서도 비슷하다. 영화에 접근하는 가장 빠른 경로는 역시 인터넷 접속이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물론 의견교환이나 영화의 내용과 표현에 대한 항의까지도 인터넷으로 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영화 보기가 가능한 건 물론이고 자기가 만든 단편이나 애니메이션을 올릴 수도 있다. 인터넷 마케팅은 영화 홍보의 기본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 모든 것이 단 몇년간 정착된 일이라고는 차마 믿기 힘들다. 도대체 어떤 경로로 영화와 인터넷이 만났고 영화는 인터넷을 활용했을까, 아니 인터넷은 영화라는 매체를 어떻게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일 수 있었을까. <인터넷 없이는, 영화도 없다>는 그 짧고도 극적인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필자는 인터넷과 영화의 만남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에 그 누가 개개인에게 영화 제작비를 공모해 영화를 만들고, 만들어진 영화를 인터넷으로 홍보하고, 심지어 배급을 할 생각을 했겠는가? 또한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물던 관객이 영화에 대한 안티 사이트를 만들거나 팬 사이트를 만들어 영화사에 협조하거나 혹은 위협하는 상황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7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터넷 속의 영화 이야기를 다룬 <씨네21>의 칼럼 ‘네트21’을 써온 필자의 이력답게, <인터넷 없이는, 영화도 없다>는 구체적인 정보와 자료들로 풍성하게 채워져 있다. <U.S.Today> <The Royal Pain> 등의 패러디 신문을 이용하여 복제인간의 소동을 사실처럼 담아낸 패러디 홈페이지를 만든 <멀티플리시티>부터 마녀가 살고 있다는 버킷스빌에 대한 전설과 헤더의 일기 등을 마치 실제 있었던 이야기처럼 구성하여 홈페이지의 연장선상에 영화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 <블레어 윗치>까지 인터넷 영화 마케팅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 그리고 1995년 무예산영화 만들기란 모토로 시작했다가 좌초한 LoeRes 필름페스티벌, 97년 인터넷으로 결과를 공개하면서 유명세를 얻게 된 골든 라즈베리상, 인터넷을 통해서 벌어진 1925년판 <잃어버린 세계> 복원운동, <허리케인 카터>의 내용과는 달리 카터가 유죄임을 주장하며 영화의 사실 왜곡을 치밀하게 짚어보는 홈페이지 등 인터넷 속 영화에 얽힌 이야기들도 들려준다.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 <스테인보이>나 유료회원으로 가입해야만 볼 수 있는 데이비드 린치의 홈페이지에 관한 글을 읽으면 당장이라도 인터넷에 접속하고픈 욕망이 인다.

단 몇년 사이에 일어난 인터넷 혁명은, 인터넷과 영화의 관계를 예측하기 힘들게 하지만 <인터넷 없이는, 영화도 없다>는 “영화의 탄생 이래 ‘극장 없이는, 영화도 없다’라는 말이 항상 진실이었던 것처럼, ‘인터넷 없이는, 영화도 없다’는 말이 항상 진실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무지의 소치로 그 말에 100%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인터넷 없는 그리고 영화 없는 세상이 도래하지는 않는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영화는 언제까지나 인터넷과 함께 발전해갈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꼭 필요한 지침서다.김봉석/ 문화평론가 lotusid@hanmail.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