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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 사단의 LP 복각-이정화, 김정미 앨범 발매
2002-08-14

전설,부활하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신중현 사단의 전설적인 LP들이 본격적으로 CD로 복각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복각 작업은 그동안 대표적인 앨범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이루어져 왔으나 희귀 LP들은 이른바 소수 ‘마니아’층의 귓전에만 한정돼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복각되어 나오기 시작한 CD들은 이제 고전적인 한국 록음악의 현장이 마니아층을 넘어선 다수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검증, 음미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번에 나온 신중현 곡집은 우선 2장이다. 이정화의 앨범이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김정미의 앨범이다. 모두 오리지널 음반이 발매된 연도가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정화의 앨범 속지에는 ‘1969년’이라는 연도 표시가 ‘당시 67년도에 22세이던’이라는 신중현의 증언과 함께 있고 음반 날개의 띠지에는 ‘1968년작’으로 표시되어 있다. 김정미의 앨범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유니버설 레코드에서 나온 오리지널 음반이 1972년 말인 것으로 알고 있다. 역사적인 앨범들이니만큼 연도 표시에는 철저한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정화의 음반은 신중현이 ‘덩키스’(Dunkeys)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만들어낸 앨범인데, 이정화를 앞세워 한국 대중가요 무대에 본격적으로 ‘사이키델릭 록’을 선보인 첫 번째 시도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앨범이다. 모두 6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싫어> <봄비> <꽃잎> <마음> 등 곡 제목이 모두 두 글자다. 원래의 LP B면에 수록된 <마음>은 20분에 이르는 대곡이다. 정말 ‘주옥같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훌륭한 노래들이 앨범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당시의 록음악 음반에는 곳곳에 뽕짝의 색깔을 포진시켜 대중을 안심시키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 음반에는 전혀 그런 색깔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급진적인’ 앨범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아닌게아니라 신중현은 “음반은 6개월에 걸쳐서 녹음되었고 출시되었지만 일반무대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고 음반은 그대로 사장되고 말았다”고 적고 있다. 그뒤 이정화는 월남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하고 월남으로 떠났다고 한다.

김정미의 <바람> 역시 전설적인 앨범이다. <바람> 직후에 나온 <Now>와 한쌍인 이 앨범은 타이틀곡인 <바람> 하나로도 신중현의 작곡 실력과 김정미의 관능적이고 사이키델릭한 매력을 일시에 확인할 수 있다. 김정미에게 늘 따라다니는 ‘70년대 최고의 사이키델릭 보컬리스트’라는 수식어는 그저 헛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신중현 명반 시리즈>는 펄시스터즈, 김추자, 더 맨 등 고전적인 명반들의 CD발매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물론 시장성의 부족, 마스터 테이프의 열악한 상태나 존재 유무 자체의 모호함, 그리고 저작권이나 판권 당사자들의 의지 부족 등으로 인해 앞으로도 어려움이 많겠지만 일단은 고무적인 출발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문서보관소’ 같은 형태의, 마스터 테이프 복원 및 보관을 전문으로 하는 공적 연구소 내지는 기관이 생겨나야 한다고 믿는다. 고전적인 한국 록음악의 ‘소리’ 역시 일종의 무형문화재이기 때문에 그것을 관리하는 일이 개인들의 이해관계나 의지에만 맡겨져서는 안 될 것이다.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