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 룸>을 감독한 데이비드 핀처는 미국인들의 일상적 심성 안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들을 즐겨 그려낸다. <쎄븐>에서도, <파이트 클럽>에서도, 그는 뒤틀린 미국인들의 마음 뒤안길을 속속들이 찾아다녔다. 이번에는 9·11 테러 이후를 살아가는 미국 중산층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외부의 어떤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한 방이라는 뜻인 ‘패닉 룸’은 9·11 테러 이후 새로운 관심사의 하나라고 한다. 마돈나도 자기 집에다가 이런 방을 설치했다고 전해진다. 뉴욕에 사는 이혼녀 조디 포스터가 딸과 함께 이사온 날, 이 집에 설치된 패닉 룸에 숨겨진 돈을 노리는 침입자가 들어오고 조디 포스터 모녀는 안전을 위해 오히려 패닉 룸으로 숨어들어간다. 거기서부터 드라마가 성립한다. 핀처는 히치콕의 스릴러, 인질영화, 도둑영화 등 몇개의 장르를 넘나들며 조합한 컨벤션을 가지고 그 대치상황을 꾸며낸다.
음악은 하워드 쇼어가 맡았다. 이 사람은 지난해 <반지의 제왕>에서 음악을 맡았던 바 있다. 최근에 주가가 많이 상승하는 작곡가 중 한 사람. 본 지면을 통해 소개한 바 있는 <하이 피델리티>의 음악 역시 그가 맡았다. 데이비드 핀처와의 인연은 이미 1995년 <쎄븐>의 음악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다. 어둡고 느리고 천천히 감겨오는 듯한 느낌의 음악으로 <쎄븐>에서도 심리적인 압박감을 음악적으로 주는데 성공했던 그다. 그의 스타일은 ‘정통 할리우드 스타일’이라 부를 만하다. ‘정통’이라는 말은 보통 잔재주를 부리는 사람에게는 붙지 않는다. 하워드 쇼어는 잔재주로 승부하는 영화음악가가 아니다. 잽싼 미키 마우징이나 순발력 있는 분위기 전환 음악 같은 걸 여간해서는 잘 쓰지 않는다. 그는 작은 대목에서 영상과의 일체감보다도 영화 전체의 분위기나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음악가다. 이 영화가 도대체 어떤 분위기로 가야 하느냐, 큰 스케일로 우선 그걸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그게 이루어지고 나면, 그의 음악은 거의 하나의 심포니처럼 길고도 길게, 테마의 깊이를 끝까지 끌고 가면서 이어진다.
지난번 <반지의 제왕>에서도 그렇지만 이번에도 역시 ‘저음’의 흐름에 중심을 두고 있다. 고음보다는 저음쪽에 확실히 강한 음악가다. 처음부터 장중한 저음의 화음이 비극적으로 울려퍼진다. 그리고 그 저음은 계속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영화 전반을 무겁게 짓누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면 이 영화가 그렇게 ‘장중한 저음’의 음악으로 채워져야할 영화는 아니라는 인상을 받는다. 하워드 쇼어의 음악은 오히려 이 첨예한 심리 스릴러물을 일종의 더 비극적인 재난영화로 만들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 불일치는 무엇일까. 그냥 잘못 짚은 걸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마도 거기에 핵심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워드 쇼어는 9·11 이후의 미국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어떤 공포를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작은 ‘패닉 룸’에 갇혀버린 모녀와 그들을 어떻게 해서든 거기서부터 나오게 하려는 3인조 남성 침입자의 대립이 그저 할리우드 스릴러물에 등장하는 아주 익숙한 세팅의 하나로 여겨질 수 있지만 미국인에게는 이 세팅이 좀더 심각한 공포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구조일 수도 있다. 하워드 쇼어는 그 깊은 곳을 음악적으로 파고들려고 했는지 모른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