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이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중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화차>나 <모방범>을 감명 깊게 읽었다면 사회파 작가라고,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시리즈(<기타기타 사건부> <외딴집> 등)를 좋아한다면 옛날이야기 전문가로 기억할지도. <용은 잠들다>나 <브레이브 스토리> 등에서는 판타지 미스터리를 선보이기도 했던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에는 과학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이한 현상과 SF적인 요소들이 간혹 엿보인다. SF 앤솔러지 잡지에 연재 제안을 받은 작가가 “그동안의 ‘어쩐지 SF’가 아니라 ‘제대로 SF’인 작품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힌 것은 이전 소설에 묻어났던 ‘어쩐지 SF’적인 요소에 대한 정확한 언급이다. 10년간 발표한 SF 소설을 단행본으로 묶은 신간 <안녕의 의식>에는 총 8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노인이 된 작가의 아버지가 로봇청소기에 다정히 말을 거는 것을 보고 쓰게 된 것이 표제작 <안녕의 의식>인데, 인간이지만 사랑을 주지도 받아본 적도 없는 화자가 ‘차라리 로봇이 되고 싶다’고 술회하는 마지막 문장은 이러하다.
“나는 때때로 소리내어 울고 싶어진다. 그것은 참으로 인간다운, 로봇은 결코 하지 않는 행위이지만.” 에도 시리즈에서는 과거를 통해 현대를 비췄다면, SF 소설에서 그리는 것은 미래 배경이다. 현대사회를 묘사할 때에는 냉혹하리만큼 현실적인 문장을 구사했던 미야베 미유키이지만 미래는 따스하게 응시한다.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40대 비혼 여성이 타임슬립한 10대의 나와 조우하는 <나와 나>를 보자. 미래의 나를 향해 “절대 아줌마처럼 되진 않겠다”며 과거의 내가 울음을 터트리자 ‘나’는 생각한다.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는 과거의 자신과 사이좋게 지낼 생각은 없다”고. 미래로 갈 수 있는 자판기 음료의 버튼도 누르지 않는다. “그런 미래의 일 따위 모른다. 나하고는 관계없다”면서. 현재를 정확히 인식하되, 미래를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 덤덤한 태도가 소설 전반의 기조다. 8편의 단편소설은 미야베 월드의 새 장을 여는 발단처럼 읽힌다.
146쪽
그런 불만과 고민은 언제나 피를 흘리는 상처 같았다. 그 피는 언제 멎었을까. 언제 아물었을까. 상처는 흔적을 남겼고, 지금도 눈에 보인다. 아팠던 시절의 기억은 흐릿해졌지만.나이 먹는 건 이런 것이다. 시간은 친절하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도 친절하다. 스스로에게도 주변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