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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시나리오팀’이란 구조가 만들어낸 <블라인드 멜로디>의 참신함에 대하여

충돌하고 연결되는 겹겹의 이야기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아카쉬(아유쉬만 커라나)는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이지만, 사실 그는 눈이 안 보이는 척 연기하고 있다. 음악에 집중하겠다는 핑계로 시작된 거짓말이지만, 점차 혜택이 많아져서 차마 그는 그만두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거짓말들은 행운과 연관되어 있다. 일과 사랑, 심지어 일상적 공간까지 전부 그 거짓이 지탱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아카쉬가 시력을 잃는다. 운 나쁘게도 시미(타부)가 남편을 살해한 현장을 그가 목격해서 보복당한 것이다. 포스터에서 드러나듯이 둘은 천적 관계이다. 아카쉬는 ‘알지 않아도 될 것’을 안 대가로 시력을 잃고, 시미는 ‘의도를 가지고 행동’했지만 실패한 탓에 눈을 결박당한다. 힘의 강약과는 별개로 그들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 만일 아카쉬가 없었다면 시미는 연쇄살인마가 되지 않았을 테고, 반대로 시미가 없었다면 아카쉬는 소피(라디카 압테)와 행복하게 연애하고 있을는지 모른다. 이들의 관계는 그 자체로 패러독스처럼 보인다.

블랙코미디적 요소의 강점

생각해보면 영화 속 모든 사건들은 순전히 ‘우연’에 의해 진행된다. 명확하기보다는 역설적인 상황들이 이어지며 인물들이 차례로 곤란에 처한다. ‘운’이나 ‘운명’ 같은 단어로 바꾸어서 이 과정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아카쉬가 살인사건을 알리러 간 경찰서에서 만나는 인물이 하필이면 범인이고, 엘리베이터가 열렸을 때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는 것도 아카쉬다. 게다가 겨우 도망친 길거리에서 그를 구해내는 자들은 장기 밀매업자들이고, 시미의 혈액형은 때마침 희귀 혈액형이라 의사의 타깃이 된다. 한마디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모든 인과관계를 밀어내는 것이다. 혹자는 상대방을 향해 ‘그가 그것을 보았을까?’ 혹은 ‘보지 않아서 모를까?’ 내밀하게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영화 관람에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블라인드 멜로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관객을 놀라게만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잔인함과 괴로움, 절망과 부조리, 이토록 우스꽝스러운 드라마의 연쇄를 우리는 어디선가 본 적 있다. 우디 앨런의 어떤 영화들이 그랬고, 코언 형제의 영화들도 그랬다. 일반적 도덕성의 규칙으로 움직이는 세계가 아니라, 상황적 콘트라스트가 만들어내는 사건들이 유머를 구축할 때 생겨나는 상황이 바로 이들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만들어낸다. 이 영화 역시 성가시고 난처한 사건들이 관객을 당혹시키고, 이 장면들이 사회적 시스템의 텅 빈 속내를 드러내면서 결말에 이르게 된다. 스크린을 통해 비극적 현실의 내면과 관객은 접촉하는 것이다. 기존 발리우드영화들과 다르게 <블라인드 멜로디>는 이러한 주제의식을 좀더 유연하게 드러낸다는 면에서 긍정적 작품이다. 로맨스와 스릴러, 뮤지컬의 요소까지 복잡다단하게 뒤섞인 것은 동일하지만 블랙코미디를 이용해 꽤나 부드럽게 치명적 사건들을 한데 묶는다.

2013년 시나리오작가이자 감독인 헤만스 라오가 스리람 라그하반에게 단편영화 <피아노 조율사>(2010)를 소개하면서이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라그하반 감독은 단편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이후 총 4명의 다른 작가들과 어우러져 수정 작업을 진행했다. 라그하반 감독과 라오 외에도 아리짓 비스와스와 푸자 라다 수르티, 요게시찬데카르 등이 작업에 참여했다. <더 위크>의 인터뷰에 따르면 복잡한 결말 때문에 라그하반은 제작사와 갈등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제작사는 관객이 혼란스러워할까봐 우려했지만 마침내 최종적으로 감독의 초기 주장대로 결말을 확정됐다. 에필로그 장면에서 장님이 지팡이로 때리는 깡통 시퀀스는 그렇게 탄생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관객은 아카쉬의 회상을 진짜로 믿어야 할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이처럼 갑자기 열린 결말이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 상황인지도 모른다. 등장인물들은 열심히 던진 운명의 주사위가 때마침 그 순간에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이 시나리오의 패턴이자 특이점이다. 확실히 ‘시나리오 공동 창작’이란 글쓰기의 방식은 장단점을 가지는데, 기존의 할리우드식 서사가 지닌 선형적이고 연대기적이며 인과관계에 초점을 맞춘 ‘주인공 위주의 플롯’이 이런 시스템하에서는 완성되지 못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흥미도가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장점도 존재한다. 테이블 회의를 통해 완성되는 그룹식 작업은 여러 인물의 관점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참신한 해석을 끌어내기가 수월하다. 그런 맥락에서 다시 한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본다. ‘땡그랑’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깡통의 움직임을 보면서 이런 복잡다단한 글쓰기의 매력을 확신하게 된다. 다름 아닌 ‘5명의 시나리오팀’이란 구조가 이런 식의 결말을 만들어낸다.

집단적 글쓰기와 복합적인 스토리

돌이켜보면 오래전 구로사와 아키라의 글쓰기 방식이 그러했고, 최근에는 웨스 앤더슨과 같은 파괴적인 응집력을 지닌 작가들에게서도 이러한 패턴은 발견되고 있다. 웨스 앤더슨의 코퍼레이터였던 로만 코폴라는 <개들의 섬>(2018)을 작업하던 당시 시나리오 창작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 있다. “농담하고, 논의하고, 그러다 웨스가 노트에 한 가지를 적어둔다. 제이슨이 갑자기 한 가지 아이디어를 분출하고, 대사의 조각을 적는다. 그런 다음 우리는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기간을 갖는다. 이후에 글쓰기를 시작하는 새로운 단계가 온다. 애니메이션 필름이기 때문에 우리는 촬영하는 동안에도 글쓰기를 이어간다.” 비단 <개들의 섬> 외에도 <로얄 테넨바움>(2001)처럼 ‘챕터’별로 분할되는 이야기나, 혹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처럼 ‘러시아 인형’이 떠오르는 서랍식 구조의 시나리오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통용될 것이다. 즉, 집단적 글쓰기 과정은 흔히 비상업적이란 이유에서 배척 당하지만 다중적이고도 복합적인 모습으로 스토리를 완성시킨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는 명확하다. <블라인드 멜로디>의 경우 오히려 상업적 장점이 된 것 역시 특별하다.

누군가 코언 형제를 ‘머리가 둘 달린 감독’이라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나오는 길에 그 별명이 생각났다. 마치 머리가 여럿 달린 작가가 한 몸통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다. 다양한 사건들을 나열하는 영화,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사건들과 한 사건을 충돌시키고 여기에 운명처럼 또 다른 사건을 붙여놓는 영화가 바로 <블라인드 멜로디>다. 어쩌면 이 작품에 높은 점수를 준 관객은 이러한 기발함에 박수를 친 것인지 모른다. 물론 이 패턴을 산만하다고 느낀 관객이라 하더라도 취향의 차이에서 오는 소소한 단점을 완전히 나쁘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사의 각층이 서로 다른 매력으로 뒤엉킨 현재 모습은 그 자체로 꽤나 신선하다. 아카쉬와 시미, 두명의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충돌과 대조의 앙상블을 보면서 영화가 쌓아올린 도미노의 충격적 효과에 대해 생각한다. 이토록 난장판같이 치열한 사회 논평에 차마 혹평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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