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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크레이지>에서 시작된 물음

우리가 사랑한 시간

“내가 아는 한 이 사진첩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슬픔이 웃음이 되어 터져나올 때까지 하루하루 무심하게 세월은 흐른다”(<사진첩>)고 시인 비슬라바 심보르스카는 말했지만, 사랑만큼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은 많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의 상실이 과거를 소환한다. 상실은 언제나 상실하지 않았던 과거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탐구한 작가 알랭 레네의 <사랑해 사랑해>(1968)가 사랑과 상실을 소재로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영화는 타임머신을 통해 시간여행을 하는 리데르의 이야기다. 리데르는 1년 전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려 하지만, 시간여행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리데르의 시간여행은 가장 사랑했던 카트린과 관련된 기억들 사이를 오간다. 시간여행은 연대기를 구성하지 않고 뒤죽박죽으로 엉키고, 리데르가 죽음 직전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여기에서 뇌의 모양을 한 리데르의 타임머신은 일종의 상징처럼 보인다. 리데르의 타임머신처럼 인간의 뇌에서도 기억이, 과거가 비선형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리데르가 자신의 의도대로 타임머신을 작동할 수 없듯이 뇌에서 일어나는 시간여행 또한 마찬가지다. 뒤늦게 개봉하는 <라이크 크레이지>(2011)의 결말부에서도 두 사람 사이에 기억이 난입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제이콥(안톤 옐친)과 애나(펠리시티 존스)는 함께 샤워를 한다. 두 사람이 몇년간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다 드디어 함께하게 된 기념이었다. 샤워를 하면서 둘은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카메라는 둘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다가 행복했던 시절의 회상숏으로 넘어간다. 그 후에 둘은 슬픈 얼굴을 지은 채 잠시 멈춘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무엇인가가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둘은 함께 있지만 더이상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지 못한다. 사랑했던 기억은 있는데 사랑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은 너무 늦게 만났다. 여기서 어떤 물음들이 생겨난다. 사랑했던 기억으로는 사랑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일까? 사랑과 기억은 어떤 관계일까? 오직 감정만이 사랑을 지속하게 하는 유일한 힘일까? 드레이크 도리머스의 영화들은 이 질문에 천착한다. <우리가 사랑한 시간>(2013), <이퀄스>(2015), <뉴니스>(2017)는 모두 사랑을 소재로 시간, 과거와 기억이라는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 특히 <뉴니스>는 어떤 면에서 <라이크 크레이지>의 후속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혼을 한 마틴(니콜라스 홀트)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마틴은 마치 제이콥의 미래처럼 보인다. 마틴은 여전히 과거에 매여 있는 인물로, 지속되는 새로움을 찾아나서고 그것이 지루해지면 떠나버리는 가비(라이아 코스타)와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새로움은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고, 그것도 반복되면 결국엔 지루해진다. 영원히 지속되는 새로움은 없다.

인간은 지워지지 않는 과거로 구성된다

쇼펜하우어가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왕복하는 시계추와 같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가비는 언제나 현재만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뉴니스>의 표현을 빌리면 “(과거의 기록이) 인터넷에는 영원히 어딘가에 남는 것처럼” 인간도 지워지지 않는 과거로 구성되어 있다. 그 수많은 과거들은 인간의 분열적 지점을 만들어낸다. <라이크 크레이지>에서 애나의 “자신을 반으로 나눈 반 사이에 뭐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당신과 나의 잔인한 일부만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말도 인간의 분열적 지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한 시간>의 키이스(가이 피어스)도 마찬가지다. 결말에서 유부남인 키이스는 자신의 제자 소피(펠리시티 존스)와 이별한 뒤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마치 현재를 사진으로 고정시키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클로즈업된 키이스의 얼굴은 가족과 있는 현재에 고정되지 않는다. 소피를 사랑했던 과거가 애써 큰 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 안에 스며 있다. 과거는 유령처럼 출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져 있다.

<라이크 크레이지>의 애나 또한 제이콥과의 행복했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제이콥이 애나를 보러 잠시 영국에 머물렀을 때 애나는 제이콥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제이콥을 배웅한다. 제이콥이 떠난 뒤 애나의 시선은 제이콥이 앉아 있던 빈자리에 머문다. 그리고 행복해 보이는 연인의 모습을 본다. 애나는 제이콥이 없는 자리에서 제이콥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애나가 몇년 동안 제이콥을 보내주지 못한 이유는 애나가 매순간 상실과, 사랑이 있었던 과거와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거가 그저 과거로 흘러가버린다면 어떤 비극도 그렇게 비극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는 주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돌아와 인간을 그 자리에 붙잡아놓는다.

사랑했던 기억은 있는데 감정은 없어

<이퀄스>에서도 사랑과 감정, 기억의 문제가 반복된다. 가까운 미래, 감정을 통제하는 사회에서 사일러스(니콜라스 홀트)는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사랑을 느끼고 함께 도망치려 하지만, 니아가 죽은 것으로 오해하고 감정 억제제를 맞는다. 그 후, 돌아온 니아에게 사일러스는 말한다. “사랑했던 기억은 있는데, 감정은 없어.” 떠냐고 싶냐는 니아의 물음에 사일러스는 “계획했잖아”라고 무덤덤하게 말한다. 기억은 있는데 감정은 없다. 계획은 있지만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모른다. 니아와 사일러스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변주이자, 제이콥과 애나의 또 다른 모습이며, 둘의 관계는 무의미해진 결혼생활과도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결말은 <라이크 크레이지>와 다르다. 감정을 잃어버린 사일러스는 니아와의 기억을 떠올리고 니아의 손을 잡는다. 사랑의 감정이 사라져도 사랑했던 기억만으로 계속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일러스가 기억을 떠올리는 행위를 단지 과거에 매여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리데르가 고통스러워하는 근본적인 원인도 이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관계는 매 순간 바뀔 수 있다. 기억은 현재에 과거를 불러세워 새로운 관계를 맺는 현재의 일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니아와 사일러스는 너무 늦게 만났지만, 한편으론 아직 오지 않은 더 큰 사랑을 기다리는 중이다.

제이콥과 애나는 그들이 사랑한 대상은 사랑했던 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직감한다. <뉴니스>의 결말에서 가비와 마틴도 마찬가지다. 가비와 마틴은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서로에게 싫증을 느끼게 될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싫증도 사랑의 일부로서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것이 도리머스 감독이 돌고 돌아 찾은 결론이다. 사랑은 단지 감정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주는 실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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