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알메레이다 감독의 영화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은 조던 해리슨의 원작 <마조리 프라임>(Marjorie Prime)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치매로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마조리(로이스 스미스)는 남편의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복원된 인공지능 월터(존 햄)와 그녀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의 기억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감독은 연극처럼 한정된 공간인 거실에서 주로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로 영화를 구성했다. 이 영화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세우스의 배’를 떠올리게 한다.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고 아테네 사람을 구한 영웅이다. 그는 배를 타고 아테네로 돌아갔고 아테네 사람들은 테세우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몇 백년간 그 배를 보존했다. 세월이 흘러 배는 조금씩 훼손되고 사람들은 배를 구성하는 나무판자를 하나씩 새것으로 교체하면서 배를 유지했다. 그렇게 몇 백년이 지난 후 원래의 나무판자가 다 새 나무판자로 교체되었다면 이 배는 테세우스의 배일까? 다른 배일까? 기억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의 주된 공간이었던 마조리의 거실에서 인간은 배제된 채 인공지능들만이 대화(인간의 기억)를 나누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인공지능 월터가 이들의 대화를 주도한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인공지능(마조리, 테스)들보다 더 많이 인간들의 기억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는 영화의 도입부에서 마조리에게 얘기해준, 그가 청혼한 날 본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카사블랑카>로 바꿔서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마조리가 그에게 “우리가 함께 본 영화가 오래된 극장에서 본 <카사블랑카>였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인공지능 월터가 자신의 기억(누군가가 그에게 말해준)을 마조리의 제안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인공지능들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 기억의 퍼즐을 맞춘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월터가 이 장면에서 언급한 대체된 기억을 우리는 ‘테세우스의 배’처럼 ‘월터의 기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또한 감독은 왜 우리에게 인공지능들만의 대화 장면을 보여주는가?
인공지능들의 대화가 의미하는 것
먼저 인공지능들만의 대화 장면을 설명하기 위해서 영화의 중반 마조리의 생일파티에서 인공지능 월터를 보여주는 카메라의 시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장면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은 그가 자의적으로 거기 서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마조리의 집 테라스에서 가족들이 그녀의 생일파티를 열어주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빠르게 카메라가 팬하면서 거실로 들어오면 어두운 실내에서 누군가 그들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잠깐 보여준다. 그의 어깨너머로 생일파티 장면이 보인다. 잠시 후 카메라는 다시 베란다에 위치하고 유리를 통해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이 인공지능 월터라는 것을 유리창 너머의 희미한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준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은 그가 어떻게 그곳에 있을 수 있는가다. 그는 환영이기 때문에 그의 의지로 모습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족 중 누군가가 그 시간에 그 장소에 그가 나타나도록 사전에 프로그램해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장면 이전에 그의 등장을 떠올려보면 그는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마조리를 도와주기 위한 인공지능에 불과하다. 만약 생일파티 신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그에게 당위성을 주려면 그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이 설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등장은 아무런 역할 없이 거기서 끝난다. 그 이후에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마조리가 사망했다는 것이고 인공지능 월터는 영화의 마지막 대화 장면에서야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를 그 순간에 소환한 것일까?
이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구성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이 영화의 전반부는 마조리, 인공지능 월터, 딸 테스(지나 데이비스)와 사위 존(팀 로빈스)의 대화로 구성되며 후반부는 테스와 인공지능 마조리, 존과 인공지능 테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반 이후에 인공지능 월터가 등장하지 않는 것과 마지막 대화 장면에서만 그를 등장시킨 것은 마조리의 생일파티 장면을 바라보는 월터의 시선이 마지막 장면의 거실에서 밖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은 이 장면에서 인공지능 월터의 등장에 당위성을 주기 위해서 영화의 중반 마조리의 생일파티를 바라보는 월터를 등장시켰던 것은 아니었을까.
함께한 기억들은 수정되었다
또한 이 마지막 대화 장면의 거실 신은 영화 도입부의 거실 신과도 대응된다. 도입부에서 인공지능 월터는 마조리에게 그녀와 함께 본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이야기를 꺼낸다. 그때 마조리는 왜 하필 그 영화냐고 반문한다. 그는 영화가 끝나고 자신이 청혼했다고 말하자 그녀는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면서 “만약 우리가 오래된 극장에서 <카사블랑카>를 보고 집에 오는 길에 당신이 청혼했다면? 다음번에 얘기할 때는 그게 사실이 되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녀는 왜 그날의 상황을 바꾸길 원하는가? 이것은 그녀의 회상 장면을 통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모텔 방에서 사랑을 나눈 후 월터는 알몸으로 그녀에게 반지를 주면서 청혼을 한다. 당연히 그녀도 알몸이었다. 그때 TV에서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녀는 모텔 방에서 청혼을 받았다는 것이 창피했을 것이고 그 사실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대화 장면에서 인공지능 월터가 그녀가 원했던 것처럼 “고전영화를 상영하는 오래된 극장이 있었어. <카사블랑카>를 상영했어. 극장 밖에서 한쪽 무릎을 끓고 반지를 꺼냈지”라고 이야기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기억이 왜 수정됐는지 알 수 있다. 반면에 마조리는 자살한 아들 데미안에 대한 기억만은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그녀는 철저하게 아들의 이름을 기억의 밑바닥에 가뒀기 때문이다.
다시 인공지능들만의 대화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그들은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고 인간의 기억으로 존재한다. 지금 인간이 부재한 가운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것은 영화의 마지막 세개의 숏을 보여주기 위한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숏은 마치 세 사람(마조리, 테스, 존)의 회상 장면에 대한 응답처럼 보인다. 첫 번째 존의 회상에서 미술관의 마리앙바드 성의 그림 앞에서 존과 테스가 키스하는 장면은 클로즈업된 세개의 그림숏으로 대체된다. 두 번째 마조리의 회상에서 보여준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카메론 디아즈의 클로즈업된 얼굴 때문에 TV 화면인지 영화인지 구분이 안 된다. 마지막 테스의 회상에서 TV를 통해 센트럴파크 공원에서 열린 전시회의 사프란(주황)색 깃발을 바라보며 아들 데미안의 죽음을 괴로워하던 월터의 모습은 화면을 가득 채운 같은 색의 천으로 대체된다. 이 이미지들은 인공지능들이 인간들에게 들은 기억을 바탕으로 구성된 이미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클로즈업된 이미지들 때문에 구체적인 장소와 그때의 상황은 알 수가 없다. 결국 우리가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와 과거의 어떤 순간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여기엔 감정도 포함된다. 그래서 기억은 인간의 욕망에 따라 자의적으로 선택된다. 시간이 흘러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차이가 날지라도 감정은 남아 있다는 것을 감독은 이 마지막 세개의 숏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