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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국의 영화비평] ‘여성성’에서 해결 방법 찾은 <다음 침공은 어디?>

<다음 침공은 어디?>

방송사 다큐 PD나 시사프로그램 담당 기자들이 가장 쉽게 여기는 일 중 하나는, 북유럽에 가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이렇다. 북유럽에 가보니 저렇더라. 바야흐로 우리도 저렇게 바꿔야 할 때다.’ 이러면 원고가 완성되니 얼마나 쉬운가. 취재도 쉽다. “당신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세요” 해서 촬영하고 “자랑해주세요” 해서 인터뷰를 따면 된다. 북유럽 취재에서 어려운 일은 살인적인 물가를 견디고 돌아와 처리하는 출장비 정산 뿐이라는 말을 할 정도다. 핀란드든 덴마크든 혹은 방글라데시든 쿠바든 그곳에 가서 시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를 취재해 보여주기는 쉽다. 취재 아이템을 선정하는 기획회의에서 문제 제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So What? 그래서 어쩌자고?” 마이클 무어는 이번 신작에서 “(어느 나라나 문제가 있겠지만) 내 임무는 잡초가 아닌 꽃을 따는 것”이라고 했는데, 꽃이야 얼마든 찾을 수 있지만 관건은 그 꽃을 어떻게 심고 가꾸느냐에 있다. 다른 토양에서 자라던 것이 이곳에서 살 수 있을지, 여기에 심는 것을 구성원들이 동의할지 등 숙제가 많다. 기자, PD들은 이 과제 앞에서 머리를 싸맨다. 마이클 무어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얼핏 고발 전문 다큐 감독의 방향 선회처럼 보이는 이번 작품에서 눈여겨볼 것은, 수많은 꽃들 가운데 무엇을 골라 자국의 정원에 조화롭게 착종시킬 것인가 하는 그의 고심이다.

마이클 무어가 고른 9송이 꽃

<다음 침공은 어디?>는 미국이 더이상 석유 때문에 다른 나라를 침공할 게 아니라 진짜 필요한 것을 가져오자며 떠난 마이클 무어의 1인 원정기다. 그가 고른 9송이 꽃은 다음과 같다. 연 8주의 유급휴가(이탈리아). 고교 1학년용 <즐거운 성생활> 교재(프랑스). 숙제를 내주지 않는 학교(핀란드). 대학 무상교육(슬로베니아). 앞 세대가 저지른 일을 정확히 알고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독일). 마약 중독자를 체포하는 것보다 인간의 존엄이 중하다고 말하는 경찰관(포르투갈). 용서(노르웨이). 여성이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튀니지). 제도와 문화 전반에 뿌리내린 여성성(아이슬란드).

마이클 무어는 9개국을 돌며 노동자, 대통령, 살인자, 초등학생, CEO, 언론인, 테러 희생자 유족, 교사 등을 인터뷰했다. 꼭꼭 숨겨놓기라도 했을 것 같은 ‘행복의 조건’에 대한 그들의 답은, 뜻 밖에도 당연한 말들이다. “휴가는 권리이자 기쁨”(이탈리아 의류업체 사장), “아이들이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친다”(핀란드 수학교사), “교육은 공공재”(슬로베니아 유학생), “퇴근하면 개 산책 시키고 여자친구와 커피 마신다”(독일 연필공장 노동자). 당연한 것인데도 우리가 못하고 있는 것들을 인터뷰로 담기 위해 마이클 무어는 우문(愚問)을 자처한다. “숙제가 없는 아이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나무나 타면 어떡하죠?” 핀란드 교사의 현답(賢答)이 돌아온다. “나무를 타면 되죠. 그러면 나무도 잘 타게 되고 곤충도 보고, 학교에 와서 그 얘기를 할 수 있잖아요.” 잘 알려져 있듯 핀란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질문은 조금씩 미국 사회가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해온 범주로 나아간다. 포르투갈에서는 마약이 범죄가 아니다. “(마약 중독자가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더라도) 배우자나 친구를 힘들게 하는데 금지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이 나라 정부 관료는 “페이스북은요? 마찬가지인데 금지시킬까요?”라고 되묻는다.

이쯤에서 각국을 여행하며 팔자 늘어지는 소리나 듣고 온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앞서 말한 기자, PD들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보다 의욕 있는 다큐라면 전후 이탈리아가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천민자본주의의 길을 걸으면서 저토록 넉넉한 유급휴가를 누리는 사회가 되기까지 자본가들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를 궁금해했어야 한다. 핀란드 교육 당국이 숙제를 과감히 폐지하는 과정에서 반대 여론을 어떻게 잠재웠고 그 결과 어떤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는지를, 현재 뿌듯해하는 교사들의 말이 아닌 지난 수십년간의 사례와 데이터를 제시했어야 한다. 마약이 법적으로 죄가 아닌 사회를 소개하려면 마약으로 인한 피해까지 종합적으로 비교한 뒤 정당성을 설득해야 한다. 독일이 일본과 달리 국가 차원에서 나치의 잘못을 반성하기까지 그 역사적 배경을 추적하고, 테러를 당하고도 용서부터 외치는 노르웨이식 관용 정신의 뿌리를 찾아 관객의 눈앞에 내놓는 것이 우리가 정밀한 다큐에서 기대하는 화면이다. 이렇게 하려면 인터뷰와 방송뉴스 자료화면만으로는 어렵다. 정밀한 다큐의 카메라라면 한 송이 꽃을 피운 흙과 물과 바람과 빛을 화면에 담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가져와 심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은 마이클 무어의 태작일까. 이 영화가 진심을 담아 향하는 방향은 이같은 의혹을 겨우 벗긴다. 올해 62살의 감독은, 같은 편끼리 맞장구친 다음 극장을 나서면 이내 절망감이 느껴지거나 미리 정해놓은 결론에 부합하지 않는 사례를 편집해 감추는 등 자신의 작품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6년 만에 내놓은 이번 신작은 마이클 무어 스스로 잘해온 분야에 대한 더 깊은 반성과 공부 끝에 나온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그가 고르고 고른 ‘행복한 사회의 조건’ 중에서도 결론으로 삼은 것은 ‘여성성’이다. 덴마크의 국회의원이나 멕시코의 축제 참가자를 찾아가지 않고 굳이 낙태를 합법화한 튀니지로 날아간 것은 인류학적으로 뜻이 깊다. 튀니지는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는 것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자신이 통제한다는 것을 의미함을 보여줬다. 이어 영화는 세계 최고 수준의 양성평등국가 아이슬란드를 찾아 여성의 DNA에서 평화와 공존의 실마리를 찾아 보인다.

여성에게 힘이 있는 평등한 나라

세계적 석학 스티븐 핑커가 1400여쪽에 이르는 대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결론부에 이르러 제시하는 바도 같은 관점이다. 그는 한 사회에서 여성의 이해를 존중하는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 사회의 폭력 비율이 떨어진다는 상관관계를 다각도로 입증하면서, 인류 역사에서 “여성화의 다양한 형태들은- 직접적인 정치 권한 부여, 남성적인 명예의 허세를 꺾기, 여성이 원하는 형태의 결혼, 여자아이가 태어날 권리, 여성이 자신의 생식력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 등등- 폭력을 줄인 요인이었다”고 강조한다. 마이클 무어는 영화 종반부에서 이렇게 정리한다. “각국을 ‘침공’하며 줄곧 확인한 것은, 여성에게 힘이 있는 평등한 나라는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점이었다.”

여성주의와 여성성은 인류가 권력욕, 지배욕, 개발과 성장욕구, 복수심의 논리에 맞서 공동체를 복원하고 지구를 덜 망가뜨리며 생태계의 일부로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다. 여성성의 문제가 인류 절반의 문제가 아닌 전체의 것임을 강조하는 이 영화의 플로 차트는, 개별 사안을 집중 탐사해 후련하게 고발하던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한결 폭넓은 시야가 생겼음을 엿보게 한다. 동시에 시민 전체를 향해 묵직한 숙제를 던져주는 인상도 준다. 마이클 무어가 한국의 갖가지 상황을 알았다면 어떤 내레이션을 첨부 했을까. 한국은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젠더 격차 지수’ (Gender Gap Index)에서 145개국 중 115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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