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54-04-23
- 성별남
소개
전투적 좌파 영웅 혹은 신랄한 코미디언
무어는 1954년 미국 미시간주의 소도시 플린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이 “전형적인 중부 미국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의 성장기는 그렇게 전형적이지 않았다. 무어는 감독보다는 기자나 작가의 자질을 보인 소년이었다. 학교 신문을 발행하다가 압수당하고, 슬라이드를 만들어 대기업이 초래한 환경오염을 비판하기도 했던 무어는, 대학을 그만둔 뒤에 <플린트 보이스>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진보적인 이 잡지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 <미시간 보이스>로 발전했다. 그 덕분에 샌프란시스코의 정치잡지 <마더 존스>에 스카우트된 무어는 경영진과 정치적 견해 차이로 다투다가 5개월 만에 퇴직금을 받아들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고향은 황폐했다. 플린트시는 제너럴 모터스사의 자동차 공장이 경제를 지탱하는 도시였다. 1980년대 긴축경영에 들어간 제너럴 모터스는 플린트에 있던 공장을 폐쇄했고 시민 3만여명이 실직자가 됐다. 무어는 토끼껍질이나 벗기고 있는 고향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제너럴 모터스 사장 로저 스미스를 인터뷰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첫 영화 <로저와 나>는 그렇게 시작됐지만, 로저는 끝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만 700만달러 가까운 수입을 올린 <로저와 나>는 무어를 스타로 만들었다. 이후 그는 TV 매거진 형식을 취한 시사프로그램 〈TV 네이션>을 제작했고, 군수산업과 결탁한 미국 정부가 냉전을 유지하기 위해 캐나다를 적국으로 선포한다는 극영화 <캐나다 베이컨>을 연출했다. 무어는 이 영화가 호평받지 못한 이유는 보수적인 캘리포니아 지역을 상대로 시사회를 열었기 때문이라며 분개했지만, 여기엔 의문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무어는 TV와 영화 외에 작가로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영화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그의 책들도 역시 유머와 풍자가 빛을 발해 베스트셀러로 올라섰다. 9·11 테러 때문에 출판이 뒤로 미루어졌던 <멍청한 백인들>은 40주 가까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지켰던 저서. 무어는 97년 대기업의 구조조정과 제3세계 착취를 비판하는 저서 <다운사이즈 디스>의 홍보여행에 직접 나이키 본사를 찾아가는 등의 이벤트를 결합한 개성있는 다큐멘터리 <빅 원>을 찍기도 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에 가까운 입담을 과시하면서 신랄하고도 오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많은 이들이 무어를 비판하는 까닭은 그처럼 오만하고 독선적인 성격과 함께 정치적 견해와 다른 실생활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계급은 7달러를 내고 내 영화를 보러온다. 내가 그렇게 번 돈으로 대형요트 따위를 살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던 무어는 맨해튼 부촌인 어퍼 웨스트 사이드 지역에 100만달러가 넘는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그의 딸은 사립학교에 다니고, 그의 작가들은 작가조합에 가입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무어가 환영받는 유럽에서조차 비판적인 시각은 존재한다. 2002년 칸영화제 기자회견 도중 한 캐나다 기자는 모든 캐나다인이 문을 열어놓고 사는 건 아니라고 <볼링 포 콜럼바인>의 한 장면에 의문을 표했다. 무어는 그 질문에 캐나다인들은 문화적으로 미국과는 다른 DNA를 가진 국민들이라고 답했다. 몇몇 영국 언론은 그런 무어가 지나치게 외국을 선망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글/김현정 씨네 21 No. 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