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지만, 영화 감상에 방해되기보다는 오히려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주인공이 자신의 차에 바이닐(LP)을 ‘한가득’ 싣고 어디엔가 도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 ‘한가득’이다. 마치 주인공의 컬렉션처럼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감독한 영화 <에브리바디 원츠 썸!!>에는 음악이 한가득 담겨 있다. 1960년 7월30일생. 영화 속 시간적 배경은 1980년. 과연, <스쿨 오브 락>(2003)의 감독답게 그는 음악이라는 프리즘을 경유해 자신의 20대를 향한 헌사를 바친다. 따라서 절대 방심하지 말 것. 이 영화에서 짧든 길든 흘러나오는 음악만 30곡이 훌쩍 넘는다. 그것도 모조리 역사에 흔적을 남긴 히트곡이니 음악광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것이다.
놀고 놀고 또 놀고
대략의 줄거리를 먼저 살펴본다. 주인공 제이크는 대학 신입생이자 야구 선수다. 대학 생활의 부푼 꿈을 안고 이제 막 기숙사 건물에 도착한 그는 생전 처음 보는 동료들과 금세 친해진 뒤, 곧장 한잔하러 인근 바로 차를 몰고 출발한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무작정 계속 놀고 싶지만 새 학기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3일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여. 혹시 “어떻게 하면 잘 놀았다고 칭찬받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져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주저 없이 이 영화를 선택하고 볼 일이다. 장담컨대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 영화의 야구부 친구들보다 더 무뇌아처럼 놀 수는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내년에 대학에 입학할 신입생들을 위한 교보재로 이 영화를 강추하고 싶다.
<에브리바디 원츠 썸!!>은 몇 가지 측면에서 그의 전작인 <보이후드>(2014)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먼저 우리는 <보이후드>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 메이슨은 드디어 엄마로부터 독립해 대학 생활을 위해 자동차를 몰고 떠난다. 즉 감독이 직접 언급한 것처럼, 제이크가 차를 몰고 기숙사 건물에 막 도착하는 <에브리바디 원츠 썸!!>의 오프닝은 <보이후드>의 엔딩과 조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두 영화의 톤 앤드 매너는 극과 극이라 할 정도로 다르다. <보이후드>가 아트하우스‘적’이라면, <에브리바디 원츠 썸!!>은 ‘파티’와 ‘알코올’, ‘섹스’를 주재료로 삼곤 하는, 미국식 코미디에 훨씬 가까운 작품이니까. 다른 점은 또 있다. 50분 정도 차이나는 러닝타임에 반해 영화 속 시간을 의미하는 디제시스적 시간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하긴 극한의 파티를 12년간 계속할 수는 없는 법이고 보면, 3일하고 15시간은 참으로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3일하고 15시간 동안 영화 속 인물들은 놀고 놀고 또 놀면서 술과 여자에 취해 돌고 돌고 또 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레드 제플린의 곡에서 제목을 따온 1993년작 <멍하고 혼돈스러운>(Dazed and Confused)에서 이미 비슷한 유의 시도를 했던 바 있다. 다만 고등학교가 대학교로 대체되었고, 하루가 3일로 늘었다는 점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에브리바디 원츠 썸!!>은 <멍하고 혼돈스러운>의 확장팩인 셈이다. 확장팩답게 노는 물의 규모(?)는 더욱 커졌지만 가볍고 유쾌하며, 때로는 지저분하기까지 한 주인공들의 정서는 거의 변함없이 그대로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남자‘놈’들에게 정신적인 성장을 ‘기대하지 않는’ 건, 아무래도 동서고금의 진리였나보다.
물신을 강조한 1980년대 음악들
음악적인 측면에서 나는 영화 속 1980년이라는 좌표가 참 절묘한 우연이라고 느꼈다. 간단하게, 1980년대는 당대의 물신(物神)이 과거의 정신(精神)을 압도한 시대였다. 영화의 파티 장면들에서도 표현되듯이 컬러풀하기 그지없는 1980년대식 패션은 더 크고, 더 높고, 더 많은 것을 지향하는 당대 이념의 구체적 형상화에 다름 아니었다. 패션과 동행했던 음악도 마찬가지다. 건반 하나로 오케스트라적인 스케일을 구현할 수 있는 신시사이저가 본격 도입되면서 뉴웨이브(혹은 신스 팝)라는 장르가 1970년대 말부터 이미 탄생했고, 이를 통해 음악은 더욱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사운드로의 변신을 거듭했다. 비평가 솔 아우스터리츠가 말한 것처럼 1980년대는 “모든 것의 과잉”으로서 저 자신의 의미를 획득했던, 그런 시대였다.
따라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가히 혼자 멱살 잡고 1980년대를 하드캐리했다고도 할 수 있을 그분(?)의 곡을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영 이상했다. 해답은 역시 감독의 인터뷰에 있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이 영화의 영감을 그분의 그 곡으로부터 떠올렸다고 하는데, 여러 난관으로 인해 쓸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바로 마이클 잭슨의 <Rock with You>가 이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다.
<Rock with You>는 1979년 발표되어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마이클 잭슨의 음반 《Off the Wall》의 수록곡이다. 즉 불과 1년 뒤인 1980년에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라면 이 곡을 애정하지 않을 리가 만무한 셈이다. <Rock with You> 외에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아깝게 쓰지 못한 노래는 또 있다. 다름 아닌 마이클 잭슨의 최강 라이벌이자 동료였던 프린스의 다. 역시나 1979년에 발표된 이 곡 역시 그의 학창 시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대신 관객은 낵의 <My Sharona>(1979)를 시작으로 블론디의 <Heart of Glass>(1979)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밴 헤일런의 <Everybody Wants Some>(1980)을 거쳐 데보의 <Whip It>(1980)에 이르기까지, 1980년대의 정서를 예고했던 또 다른 명곡들을 만날 수 있다. 어디 이뿐인가. 뉴웨이브와 디스코 리듬을 절묘하게 결합한 퀸의 (1980), 디스코의 정수를 담아낸 피치스 앤드 허브의 <Shake Your Groove Thing>(1978) 등 1980년대 초반까지도 인기 있었던 디스코 음악들도 끊임없이 흘러나와 귀를 즐겁게 해준다. 당연히, 정신보다는 물신에 훨씬 밀착해 있는 곡들이다.
이와는 반대급부로 회자되는 곡이나 음반이 없지 않다. 대마초를 피우면서 정신수양하듯 듣는 핑크 플로이드의 <Fearless>, 주인공이 똘끼 다분한 친구에게 억지로 빌려주는 닐 영의 베스트 앨범 《Decade》가 이를 대표하는 경우들이다. 둘 모두 영화의 주제를 상대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서 작동하고 있는데, 글쎄,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그 친구가 닐 영을 듣는다니, 차라리 내가 정우성이랑 친구 먹었다고 하는 게 훨씬 설득력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파티에 취해 과잉으로 치닫는다고 해도, 이 영화의 결말처럼 결국에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 3일 정도는 뇌가 순결한 상태로 지내도, 그게 도리어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 그저 낭만적으로 과거를 미화하기보다는 멍청하고 대책 없던 그 시절을 꽤나 솔직하게 담아낸 이 영화를 보면서 이제는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학창 시절의 유흥을 떠올리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거라고 확신한다. 부탁건대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한 당신의 뇌의 스위치를 잠시 끄고 보기 바란다. 그래도 117분 뒤에는 어차피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