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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혜경의 영화비평] 폴 버니언 되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어선 ‘전설적 존재’를 만든다는 것은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

2001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고니시 다카코라는 이름의 일본 여성이 숲속 눈밭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죽기 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던 경관의 오해로 당시 모든 뉴스에서는 그녀가 코언 형제의 영화 <파고>(1996) 속 숨겨진 돈가방을 찾기 위해 미국에 왔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라고 소란스레 보도했다. 이후 조사를 거듭한 끝에 그녀의 죽음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밝혀졌지만 <파고>의 돈가방을 찾아 미국의 소도시 ‘파고’에 도착한 일본 여성의 죽음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일종의 ‘도시 전설’(urban legend)로 번져나갔다. 데이비드 젤너 감독은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이하 <쿠미코>)가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때 “바탕으로 했다”라는 말은 어쩐지 난처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바탕으로 한 출발점이 현실도 허구도 아닌 ‘(도시) 전설’이기 때문이다.

‘다카코 전설’에서 무엇을 보고 싶었을까

백과사전을 뒤져보면 어떠한 이야기가 ‘전설’(傳說)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필요로 하는데, 예를 들어 화자와 청자가 그 사실을 믿어야 하고,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증거물이 있어야 하며, 상당한 시간을 거쳐 살아남을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 전설은 도시 전설의 형태로 일부 변주되기 시작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충분히 그럴듯해야 한다’는 조건은 변치 않고 남아 있다. 실제로 데이비드 젤너 감독은 2002년 인터넷에서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이 전설을 사실이라고 믿었으며, 이를 토대로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흥미로운 것은 감독 자신이 <파고>와 얽힌 다카코의 이야기가 ‘사실’(a true story)이 아님을 알고 나서도 십년이 넘게 <쿠미코>의 작업을 계속 해나갔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그는 이 이야기가 ‘진짜’(real)인지 ‘가짜’(fake)인지를 놓고 관객과 게임을 벌일 생각이 없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가 불러들이는 여러 층위의 현실과 허구를 경계 짓느라 애쓰지만, 그건 마치 (‘허구’의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실화입니다’(This is a true story)라는 자막으로 시작해 영화 내내 관객을 ‘실화’의 굴레에서 허덕이게 만들었던 <파고>의 고약한 트릭에 붙잡히는 격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데이비드 젤너가 ‘다카코 전설’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쿠미코(기쿠치 린코)가 미네소타에 도착해 친절한 지역 경찰과 마주치는 장면을 먼저 떠올려보자. 길 잃은 자신을 도와주는 경찰관에게 쿠미코는 <파고>의 DVD를 보여주고 영화 속 ‘보물’을 찾으러 ‘파고’에 갈 거라며 헝겊에 수놓아 만든 지도를 꺼내놓는다. 이에 난처한 기색을 표하던 경찰은 <파고>가 뉴스나 다큐멘터리나 혹은 리얼리티 쇼가 아니라 ‘보통 영화’(a normal movie)이며, 그래서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고 이야기한다. 그러자 쿠미코는 영화 내내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단호한 태도로 “가짜일 리 없다”(not fake)고 소리친다. 신기하게도 이때 경찰은 <파고>가 허구의 이야기임을 좀더 설득하는 대신, 쿠미코와 자신 사이에 놓인 ‘문화적 장벽’이 없었더라면 좀더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라며 그녀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한다(게다가 이 대사는 감독 자신이 직접 출연해 들려주는 것이니 강조점까지 자연스레 따라온다). 언뜻 돈도 없고 갈 길도 막막한 쿠미코 앞에 함께 선의를 베푸는 인물이 (다행스럽게)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장면은 좀 이상하다.

쿠미코는 ‘도와주겠다’(help)는 말과 ‘이해한다’ (understand)는 경찰의 말을 ‘왜 파고에 가려는지 이해하고, 그곳에서 보물을 찾는 일을 도와주겠다’라고 잘못 받아들인다. 그러나 경찰은 이해할 수 없는 쿠미코의 행동이 그저 ‘문화적 장벽’ 혹은 ‘언어적 장벽’에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쿠미코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일정 부분 포기해버린다. 쿠미코가 왜 자신에게 키스를 하려 했는지 경찰은 끝내 알지 못하며, 자신의 키스를 마다하며 물러선 그를 쿠미코도 결국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에는 일본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턱없이 부족한 이해가 전제되어 있다(때로 어떤 것들은 너무 명백해 오히려 대놓고 말하기 힘든 법이다). 쿠미코에게 하룻밤 묵을 곳을 제공해주었던 할머니는 도쿄에서 왔다는 그녀에게 자신의 남편이 한국전에 참전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본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며 제임스 클라벨의 소설 <쇼군>을 자랑스럽게 건네준다. 쿠미코와 말이 통하지 않자 중국인을 찾아가 통역을 부탁하는 경찰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 도착해 쿠미코가 만난 미국인들은 대부분 낯선 이방인인 그녀를 이해할 생각이 없거나 혹은 이해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데이비드 젤너는 다카코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어떻게 뜬금없는 ‘보물 찾기의 전설’로 발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 이야기에 도시 전설이 될 만큼의 ‘그럴듯함’을 부여해준 것은 결국 미국인들의 ‘몰이해’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무지’ 속에서 쿠미코(와 다카코)는 허구의 보물 찾기에 매혹된 낯선 이방인이자 ‘전설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보물 찾기의 전설’ 그 뒷이야기

그러나 영화는 전설만으로는 알 길이 없는 쿠미코의 ‘전사’(前事)를 영화의 전반부에 만들어 넣음으로써 한발 더 나아간다. 결혼을 채근하며 더 많은 돈을 벌어오길 바라는 엄마, 어리고 예쁜 동료들 틈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직장 생활, 작은 고민 하나 털어놓을 길 없어 자꾸만 혼자 집으로 숨어들어야 하는 쿠미코의 일상은 영화(<파고>) 속 허구를 믿고 매달리고 싶을 만큼 절박하다. 그런 그녀가 일본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순간, 왠지 정말 ‘전설 속 다카코’라면 그랬을 것만 같은 ‘진짜 같음’(reality)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데이비드 젤너는 코언 형제가 <파고>에서 취했던 전략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인질을 톱밥 기계에 거꾸로 넣고 갈아대는 전설 같은 사건에 도달하기 전까지 코언 형제는 이것이 진짜 같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이야기를 쌓아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오프닝 자막도 사실 코언 형제의 이러한 전략의 일부인 셈이다. 이때 <쿠미코>와 <파고> 모두 미국의 전설 속 거인 나무꾼 ‘폴 버니언’(Paul Bunyan)과 ‘푸른 소 베이브’(Blue Ox)의 조각상을 등장시킨다는 점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파고> 속에서 베이브는 식당 간판으로 등장한다). <쿠미코>에서 경찰은 전설 속 주인공인 폴 버니언과 푸른 소 베이브의 이야기를 쿠미코에게 들려주며, 베이브의 조각상이 예전엔 좀더 ‘사실적’이었는데 알코올 중독자가 총으로 쏴버려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폴 버니언과 베이브의 전설은 사실(a true story)은 아니지만, 이들의 존재는 현실 속에 ‘사실적’으로 실재한다. 누군가는 좀더 험악하게 생긴 <파고> 속 폴 버니언의 모습이 어딘가 우스꽝스럽게 생긴 <쿠미코> 속 폴 버니언의 모습보다 더 진짜 같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둘 모두 폴 버니언이라는 전설 속 주인공의 실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영화의 마지막에 담요를 덮어쓰고 눈밭에 우뚝 서 있는 쿠미코의 모습에서 폴 버니언의 조각상이 겹쳐진다. 어느새 쿠미코도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어선 ‘전설적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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