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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한판 신나게 놀아젖히는 영화, 홍은미 평론가의

작정하고 웃기는데 난데없어 더 웃긴 <THE 자연인> 앞에서 냉정해지기란 쉽지 않다. 아니,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불호가 나뉘리라 짐작하면서도 <THE 자연인>이 아주 제대로 노는 코미디영화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이 영화와 함께 놀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허들이 높진 않다. 얼마간 비위가 강해야 하고 망측한 장면에서도 의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도만 충족되면 취향 타는 영화를 보는 데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어떤 의미로든 노영석은 웃음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는 폭소든 실소든 풍자로든 여러모로 관객을 웃기는 데 재능이 있다. 우리는 그의 저력을 데뷔작 <낮술>(2008)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기도 하다.

누군가는 <THE 자연인>을 ‘병맛’ 코미디라고 칭하고 B급영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풍부한 코미디의 결을 다 살리지 못하는 듯해 살짝 석연치 않지만, 이 영화의 성격상 부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병맛 유머가 예측 불허에서 기인하기도 한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THE 자연인>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예측 불허는 이 잘 노는 코미디영화의 중핵이자 동력이다. 예상해도 웃기고 예상치 못해서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영화는 온갖 수단과 상상력을 동원해 웃음을 유발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다소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기상천외한 코미디영화에 정색하고는 진지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 의문이 자극적인 영상에 열광하는 세태를 풍자하는 이 영화의 일면과 관련 있다면 오히려 정색한다는 느낌은 없었을 테다. 질문은 간단하다. 웃음을 향한 방대한 코미디의 모험에 대놓고 넌 어떻게 그렇게 잘 노니? 하고 묻는 것이다.

온갖 유머로 웃음을 유발하다

<THE 자연인>은 코미디의 전형과 변칙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만담, 슬랩스틱, 병맛, 촌철살인형 개그까지 손을 뻗지 않는 데가 없다. 태세 전환도, 장르 전환도 빠르다. 그런데 장르의 동거는 좀 기이하다. 사실 코미디와 미스터리, 호러가 혼종된 영화는 많다. 보통 그런 경우 각 장르적 유희를 조화하는 게 전형적인 방식이다. 이 영화 또한 전형적인 방식을 구사한다. 다만 좀 난데없어 그저 웃길 때가 많다. 이를테면 내게는 다소 이상한 장르적 세부의 혼종 때문에 이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는 장면조차 유희적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주인공인 유튜버 인공(변재신)과 병진(정용훈)이 등장할 때다. 귀신을 쫓는 유튜버 인공은 귀신을 봤다는 제보자 ‘자연인’(신운섭)을 찾아 산속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고, 구독자 수에 목말라 있는 댄스 유튜버 병진은 '귀식커' 인공의 유명세에 편승하고자 그와 동행한 참이다. 유튜버의 생태를 드러내는 자동차 신이 지나고 나면 카메라가 운무 짙은 광대한 산등성을 비추고 긴장감이 감도는 음악이 웅장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출처도 모를 긴장감이 고조에 다다랐을 때 이때다 싶게 화면 가득 채우는 시뻘건 ‘THE 자연인’ 타이틀이 보인다. 엉성한데 거창해서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 하나. B급영화의 기개가 강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별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고 그럴 만한 무드도 없었는데 급긴장감을 조성하는 영화에 반사적으로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러나 뭐라 해도 <THE 자연인>이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자연인이 나올 때부터가 압권이다. 등장부터 심상치 않은 자연인. 이 사내가 요물이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한껏 미스터리를 조성하다가도 심드렁하게 툭툭 던지는 너무나 상식적인 말, 가령 산속에 만든 유령의 집에다 첫사랑을 닮은 마네킹을 고이 모셔놓는 변태스러운 행위를 버젓이 해놓고도, 그렇게 소중하면 집에 모시지 그러냐는 인공의 물음에 대뜸 “미친놈 변태 소리 듣게?”라는 멀쩡한 응수로 폭소를 자아내는 그의 능력도 대단하지만, 그 모두를 능청스럽게 구사하는 뻔뻔함이 실로 감탄스럽다. 뻔뻔함은 코미디영화의 핵심이다. 오래된 슬랩스틱의 거장들부터 고수하는 불변의 캐릭터다. 자연인은 인공에게 대놓고 욕하고 싶을 때 빙의된 연기를 시전하며 시원하게 화를 내고, 뭔가 불리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태세 전환도 쏜살같다.

장소가 곧 장르

하지만 그보다 고수가 있었으니, 자연인의 후배 란희(이란희)는 아무나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자연인의 거처와 주변 숲을 바로 평정한다. 노영석의 영화에서 장소는 하나의 장르적 요소로 작동한다. 노영석의 인물들은 어딜 갔다 하면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대체로 강원도의 어딘가에 있는 장소들은 딱한 사내의 처량하고 웃긴 사랑의 모험을 펼치는 폐쇄회로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낮술>), 도주의 필사적인 운동이 일어나는 폐쇄공포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조난자들>(2012)). <THE 자연인>의 장소 또한 전작들의 공간과 마찬가지로 개방되어 있지만 동시에 닫혀 있다. 자연인의 마성과 억지와 이상한 배려로 인해 쉬이 산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공과 병진이 탈출을 시도할 때 때마침 란희가 미스터리한 모습으로 나타나 영화에 새로운 웃음을 부여한다.

능청스러운 연기로 사내들을 곤란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것은 물론이고, 누구도 쉽게 잊을 수 없는 라면 신은 가히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이 장면은 영화를 먼저 접한 이들에게 익히 들었고, 기대와 두려움을 안고 기다린 장면이다. 아니, 코로 라면을 먹다니. 웃기기야 하겠지만 보기 민망한 장면이 연출될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그건 기우였다. 프로페셔널하고 깔끔하게 라면을 해치우는 란희의 기예에 감탄이 절로 나오고 코로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며 우리의 편견을 우습게 깨버리는 그녀의 논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게 이 영화의 진정한 무서움이다. 이 영화가 잘 노는 방식은 라면 먹는 장면에 응축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유튜버의 방식으로 놀되, 그보다 더 신나게 달려버리는 영화, 그게 바로 <THE 자연인>의 전략이고 놀이 방식이며 풍자고, 순수한 유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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