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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인생은 아름다워’, 뮤지컬영화가 마법 같은 순간에 가닿으려면

아무래도 이상하다. 아름다운 음악에 가려져 있지만, 세연(염정아)의 처지는 과하게 가혹한 측면이 있다. 남편 진봉(류승룡)은 아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자 아들의 수능부터 걱정한다. 그가 아픈 아내를 대하는 방식은 폭력적이고 아이들은 무례하다. 이에 대한 세연의 반응도 뜻밖인데, 무감각하거나 순응적이다. 후반부에 이 부분을 해명하는 서사가 등장하지만, 여전히 지나치다는 인상이 남는다. 갈등은 의외의 지점에서 터져나온다. 첫사랑을 찾아나서겠다는 선언. 그녀가 부당한 대우에 상식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낭만적인 사랑을 외칠 때 여정의 막이 오른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세연의 혹독한 운명과 무방비한 수용,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을 동력으로 시작되는 영화다.

그녀의 수난은 이어진다. 첫사랑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남겨진 사람들은 눈물 짓는다. 아이들은 엄마의 병에 대해 듣고 운다. 이토록 감정이 북받칠 때 세연은 노래한다. 감동적인 넘버가 등장할 타이밍. 이 영화의 넘버에는 유독 한국 정통 발라드가 많은데, 발라드 특유의 애상은 그녀의 불행을 징검다리 삼아 스크린에 소환된다.

고난의 플롯에 따라 설계된 뮤지컬 넘버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진행은 세연이라는 캐릭터에 오롯이 의존하고 있다고. 그녀의 고난은 플롯을 구성하고, 눈물은 노래로 산화한다. 행복하거나 기쁜 순간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겪는 감정의 고저는 고스란히 영화의 내용이 된다. 그런데 이 말은 거꾸로 해도 진실이다. 영화가 진행되려면, 기가 막힌 넘버들이 등장하려면, 세연은 계속 수난을 겪어야 하고 아파야 한다. 그녀가 처한 잔혹한 환경과 갑갑증이 느껴질 정도로 해맑은 성격은 영화의 플롯을 추동하고 넘버를 불러오기 위해 꼼꼼히 설계된 결과다. 자신의 감정을 소진해 극을 이끄는 세연의 처지는 가련하다.

이런 점을 비판하는 것은 쉽다. 헐거운 플롯. 캐릭터의 기능적인 소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런 일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 그러니까 종종 뮤지컬영화가 주인공의 스토리와 감정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하나를 꼽고 싶다. 그것은 뮤지컬의 넘버에 대한 낡은 인식과 관련이 있다. ‘뮤지컬 넘버는 플롯의 일부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인식 말이다. 종종 코미디언들이 하는 뮤지컬 개그가 생각난다. 말에 음을 붙이고 행동을 과장하면 뮤지컬이 된다는 개그. 웃자고 하는 소리겠지만, 여기에는 뮤지컬 넘버에 대한 오랜 통념이 묻어난다. 그러나 넘버가 단순히 대사에 음을 붙여 노래로 변환한 수준에 머무를 때, 적절한 때 등장해 감정을 터뜨리는 통로로 소모될 때, 그것들은 주인공에 종속된다. 노래를 불러오기 위해 주인공은 계속 우여곡절을 겪고 감정에 시달려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오해다. 뮤지컬 넘버는 단순히 플롯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내러티브를 넘어 예상치 못한 지점으로 우리를 이끈다. 영화의 맥락에서 느슨하게 벗어나, 어느새 그 넘버의 활기만으로 지속되는 세계. 영화 속에 머물되 저만의 폐와 호흡으로 숨 쉬는 고유한 세계. 마치 부모와 닮은 얼굴로 다른 삶을 사는 자식처럼, 내러티브 한가운데에서 태어났지만 자신만의 생명력으로 스크린 위에서 잠시 머물다 점멸하는 그것.

하나의 장면을 예로 들고 싶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가장 매혹적인 장면은 <Gee, Officer Krupke>(젠장, 크럽키 경관님)가 상연되는 순간이다. 경찰서에 갇힌 남자들은 자기가 비행을 저지르는 이유를 설명한다. 아버지는 망나니, 어머니는 개차반. 그러니 내가 엉망인 거야. 하지만 어느새 공기가 변하고 광기에 가까운 활력이 너울댄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빈곤한 환경에서 유발된 ‘정신병’이라 진단하는 사회의 오만한 언어를 그대로 모방하며 낄낄댄다. 어깨동무를 한 채로 발을 구르며 “우리는 병들었다”고 노래하는 순간의 기묘한 활기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폭력의 언어는 어느새 뜨거운 노래와 춤으로 바뀌어 스크린을 흥건하게 물들인다. 이때 남자들은 사회의 언어를 수긍하는 듯하지만, 사실 그것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땀 흘려 노래하며 끝내 자신들의 건강한 에너지를 회복한다. 이 장면은 경관에게 하는 이야기로 시작해, 넘버의 활기와 생명력으로 채워지다가, 결국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주인공들을 구원한다. 뮤지컬영화의 넘버가 닿을 수 있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경우 플롯과 넘버가 공고하게 결합돼 있다. 넘버들은 맥락에 맞게 등장해 스토리 진행을 보조하며 감정을 고조시킨다. 장점으로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그 공고함이 영화의 여백을 지우고 있다. 넘버가 등장해 또 다른 세계를 축적해나갈 수 있는 그런 여백. <인생은 아름다워>는 플롯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노래들이 자유로이 활공할 수 있게 두어도 좋았을 것이다.

장소라는 하나의 서사

같은 맥락에서 하나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뮤지컬영화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 바로 ‘장소’다. 장소는 뮤지컬 속 인간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배경, 그 이상이다. 영화가 펼쳐지는 시대와 지역의 숨결을 머금은 공간, 뮤지컬 전체의 정서를 포획하는 상징적인 얼굴. 그것이 장소다. 장소는 배경과 구분된다. 배경이 서사를 뒷받침하기 위한 공간이라면 장소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가 된다. 인간 없는 배경은 있을 수 없으나, 인간 없는 장소는 존재한다. 뮤지컬영화사에서 장소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Do Re Mi Song>을 배우는 언덕, <사랑은 비를 타고>의 비 내리는 거리, <라라랜드>에서 사랑에 빠진 남녀가 춤을 추는 LA의 곳곳들. 모든 뮤지컬영화는 아니지만, 훌륭한 뮤지컬영화에는 장소들이 존재한다. <인생은 아름다워>에는 서울극장, 훈련소같이 한국적인 곳들이 등장하지만 이 영화만의 특유한 장소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위하는 풍경도 등장하지만 이는 한국영화에서 흔히 반복된다. 한국 뮤지컬영화가 오래 이어지며 외국에서도 사랑받으려면 장소에 대한 고민이 필수다.

한편으로 뮤지컬영화의 불모지에서 태어난 <인생은 아름다워>가 홀로 이런 비판들을 짊어지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이 영화는 쉬운 스토리 위에 올드팝을 불러내 관객과 놀겠다는 목표가 분명해 보인다. 그러므로 이 글은 앞으로 등장할 한국 뮤지컬영화들을 위한 제언이라 해두자. 그럼에도 말한 것들을 양보할 생각은 없다. 우리의 질문은 끊이지 않아야 한다. 뮤지컬영화가 닿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영화적인 세계는 무엇이며, 어떻게 그곳에 닿을 수 있을까. <인생은 아름다워>를 시작으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윤제균 감독의 <영웅>까지 한국 뮤지컬영화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중요한 시기에는 중요한 선택이 필요하다. 플롯과 내러티브에서 슬쩍 빠져나와 넘버와 장소, 뮤지컬영화들의 요소들이 활개칠 수 있는 작은 틈을 스크린에 내어주었으면 한다. 그 한바닥 자리에 한국 뮤지컬영화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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