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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공작>과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같은 시대의 다른 이야기
주성철 2018-08-24

노태우 대통령이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1990년 10월 13일이다. 물론 그것은 앞서 10월 4일 육군 보안사 소속 이병 윤석양이 탈영하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양심선언을 하고,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기록을 공개한 사건을 덮으려는 의도였다. 정계는 물론 노동계와 종교계까지 망라한 그 사찰 기록에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수환 추기경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야당과 재야단체는 10월 13일 공동 집회를 열고 보안사의 사찰과 노태우 대통령의 관련성을 조사하고 만약 관련이 있다면 대통령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바로 그날 노태우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새질서 새생활 운동’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이 사건은 박인제 감독이 연출한 <모비딕>(2011)의 결정적인 모티브가 되었는데, 영화 속 발암교 사건이 조작된 것임을 알리기 위해 이방우 기자(황정민)에게 일련의 자료들을 건네는 고향 후배 윤혁(진구)의 모델이 바로 윤 이병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변호인>(2013)에서 양심선언을 하는 군의관 윤 중위(심희섭) 캐릭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아무튼 당시 그 사건으로 인해 국방부 장관과 보안사령관이 해임되고 보안사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로 개편됐는데, 기무사가 이름만 바뀐 채 이후 별로 달라진 것 없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최근 우리가 목격한 그대로다.

바로 그 시기를 조명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 2012)와 함께 윤종빈 감독의 <공작>을 주목하게 된 이유는, 바로 우리가 모른 채(어쩌면 모르도록 강요당하며) 살아왔던 90년대의 풍경화이기 때문이다. ‘범죄와의 전쟁’이 1990년 선포되었다면 <공작>의 ‘흑금성’ 박채서씨가 육군3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국군정보사령부에서 일하다가 본격적인 대북 공작 업무에 참여하게 된 것은 1991년부터다. 말하자면 <범죄와의 전쟁>과 <공작>은 같은 시대의 다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범죄와의 전쟁>의 최익현(최민식)과 <공작>의 흑금성(황정민)은 묘하게 닮아 있기도 하다. 영화에서 건달도 일반인도 아닌 ‘반달’로 지칭되는 최익현이 “저 깡패 아입니다. 공무원 출신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흑금성도 “저 간첩 아입니다. 사업가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뭐랄까, 두 영화는 각각 조폭과 간첩을 통해 들여다본 90년대의 기억이지 싶다. 어쩌면 그처럼 ‘경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두 조폭과 간첩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그것이 윤종빈 감독의 영화가 묘한 독창성을 획득하는 요소가 되는 것 같다. 그는 그저 한국에서만 묘사 가능한 인물들을 좇았을 뿐인데, 그러다보니 그만의 고유성이 발생했다고나 할까.

위와 같이 쭉 쓰고 보니 <공작>에 대해 상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는 것을 기어이 재현하고, 표면적으로는 공식적으로 소거된 역사의 흔적을 들여다보려는 힘겨운 시도 그 자체가 흥미로웠다. 적어도 근래 보기 드문 집요함을 가진 한국영화였다고 생각한다. 결정적으로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를 쭉 훑어볼 때, 독립영화진영의 이런저런 성과(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상 이미 지난해에 여러 영화제를 통해 공개됐던 작품들이다)를 제외하고는 곱씹을 만한 상업영화가 있었나 싶기 때문이다. 올해 <씨네21> 영화평론상 공모를 봐도 그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한국영화를 재료 삼아 자신의 필력을 전개한 글들이 드물었다. 조만간 상반기 한국영화를 결산하는 자리도 마련하려 한다. 우리는 여전히 한국영화를 중심에 두고 한권의 잡지를 만들고 싶다. 그런데 갈수록 그러기가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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