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보이스>

지난 7월 유튜브에 게시된 <휴먼 보이스>(Human Voice)는 장 콕토의 1930년작 동명 모노드라마를 각색한 패트릭 케네디 연출, 로저먼드 파이크 주연의 단편영화다. 약 18분의 러닝타임 동안 주인공은 5년의 사랑 끝에 헤어진 연인의 전화를 기다리고 의연한 척하다 무너지고, 전화가 끊기면 다시 걸려오길 초조히 기다린다. 침대에 흩어진 폴라로이드 사진과 넘쳐나는 재떨이가 깊은 우울을 웅변하는 가운데 관객은 문득 이 대화의 상대방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염려하게 된다. 아직 전화가 신문물이던 시대에 초연된 <휴먼 보이스>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에 의해 영화화됐고 공교롭게도, 성악가인 로저먼드 파이크의 어머니가 과거 이 작품의 1인 오페라 버전을 공연한 적이 있다고 한다.

08/01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이하 <폴아웃>)을 보다가 불쑥 버스터 키튼이 영화 촬영 도중 목뼈 골절 사고를 당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앞서 쓴 대로, 톰 크루즈는 스크린의 이미지가 카메라 앞의 피사체와 현상이 실재했다는 증거가 전혀 될 수 없는 디지털 시대에도 대역 없는 아날로그 액션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차이를 믿고 밀어붙이는 구식 스타다. 물론 관객이 알든 모르든 나는 진정성을 추구하겠다는 구도자라서는 아니다. 톰 크루즈에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 역시 고역의 실체를 관객에게 목격당하는 것이다. 대역 없는 스턴트가 강조된 이후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촬영은 지금 당신이 보는 질주와 다이빙, 충돌이 톰 크루즈의 것임을 못박는다. <폴아웃>의 파리 고공 침투신에서 카메라의 시야는 톰 크루즈의 얼굴을 프레임 안에 둔 채 넓어져 점프의 순간을 담는다. 고공낙하와 모터사이클 추격전에서 에단 헌트가 착용하는 헬멧의 바이저는 반투명해 연신 배우의 얼굴을 인증해준다. 여기서 우리는 군사시설도 아닌 도심지의 행사장 그랑 팔레에, 그것도 폭풍우 치는 날씨에 어째서 구태여 낙하산을 저공에서 펼치는 위험천만한 스카이다이빙으로 도착해야 하는지 반문해서는 안 된다. 먹구름과 파리 공중 전경을 어차피 CG로 교체할 거면서 ‘리얼 액션’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따져서도 안 된다. <폴아웃>의 많은 관객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톰 크루즈의 애크러배트, 달리 말하면 대중의 오락을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백만장자 스타를 보기 위해 멀티플렉스를 찾는다. 톰 크루즈의 액션 연기는 놀라운 몸 관리로 남보다 빨리 달리고 절벽을 잘 타는 예외적 운동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톰 크루즈가 세계에서, 아니 영화계에서도 제일 빨리 오래 뛰는 인간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카메라와 호흡을 맞춰 가능한 한 최고의 속도로 꾸준히 달리는 인물을 가장 잘 연기할 수 있는 배우다. 모래 폭풍과 대형 폭발을 등지고 제일 폼나게 점프할 수 있는 배우다. 2000년 이후의 톰 크루즈 커리어는, 몇몇 저널리스트들이 이미 말한 대로 개인의 나르시시즘이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희귀한 예다.

08/02

할리우드 주류를 대표하는 이름이지만 톰 크루즈의 이미지는 정상성과는 거리가 있다. 종교도 꾸준히 언급되지만 2005년 <오프라 윈프리 쇼>의 소파 사건은 그에게 기인의 꼬리표를 붙였고 고도의 일 중독증이 동료들의 인터뷰 주요 화제가 된 다음부터는 모종의 결핍이 낳은 조증과 집중력이 톰 크루즈 커리어의 엔진으로 추측되기도 했다. <미션 임파서블>의 에단 헌트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그에게 슈퍼파워가 있다면 힘이나 지성이 아니라 다소 병적인 집요함일 것이다. 이 점은 실제 톰 크루즈라는 배우/제작자의 면모와 정확히 일치한다. 톰 크루즈는 지구상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무비 스타이면서도, 데뷔 후 37년째 인정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 중인 이상한 인물이다. 연기 예술가로서 능력을 평가받는 정도에 비해 실상 그의 필모그래피는 타율이 높다. 44편가량의 장편 중 즉시 떠오르는 태작은 <미이라>(2017)나 <잭 리처: 네버 고 백>(2016), <락 오브 에이지>(2012), <바닐라 스카이>(2001) 정도다. 캐릭터의 범위도 뱀파이어, 바텐더, 상이용사, 여성혐오 대중강사 등 대단히 넓다. 대스타들이 그렇듯 톰 크루즈 배역의 다수는 스타 페르소나와 일치하거나 그것의 선명한 패러디- <제리 맥과이어>(1996), <매그놀리아>(1999), <트로픽 썬더>(2008),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 등- 다. 심지어 개봉 당시 공연한 다른 배우가 더 칭찬받았던 <컬러 오브 머니>(1986), <레인맨>(1988)과 역대급 캐스팅 반대 열풍이 불었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에서 크루즈의 연기는 최근 들어 재평가받고 있다. 각설하고, 인터뷰에서 톰 크루즈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성취하기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아주 많다고 여겼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높은 장소만 보면 올라가서 뛰어내리는 버릇이 있어 가족들을 애태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요컨대 이 스타는 극복의 아이콘이다. 현재 그가 대놓고 극복 중인 대상은 세월이다. 톰 크루즈는 내가 아는 한 이자벨 위페르와 더불어 본인의 나이를 절대 먼저 거론하지 않는 배우다. 하지만 <폴아웃>의 크리스토퍼 매쿼리 작가/감독은 영웅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영리한 방식으로 톰 크루즈의 나이듦을 인정하고 활용한다. 밧줄을 타고 오르는 톰 크루즈의 얼굴에는 “젠장, 이젠 한번에 안 되나?”라는 찰나의 한숨이 스쳐간다. 한편 <폴아웃>은 CIA 요원 어거스트 워커 역으로 톰 크루즈보다 체격이 우월하고 젊은 헨리 카빌을 캐스팅해 간접적으로 에단 헌트의 노쇠를 일깨운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이제 에단 헌트의 힘은 전투력이 전부가 아니라고 넌지시 주장한다. 톰 크루즈가 나이 들지 않는 뱀파이어 레스타트(<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캐릭터)라고 묘사하는 이들에겐 <미션 임파서블>(1996)을 다시 보길 권한다. 22년 전 에단 헌트는 자신의 유능함에 취한 경솔한 엘리트였고 본부에 카푸치노 머신을 놓아달라고 조르는 청년이었다. <폴아웃> 도입부의 에단 헌트가 읽고 있는 책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다. 그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길 위에서 영원처럼 긴 모험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중년이다.

크리스토퍼 매쿼리는 매번 감독을 바꿔 새로운 스타일을 도모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최초로 두편째를 연출하는 감독이다. 무엇보다 매쿼리는 <작전명 발키리>(2008)부터 각본 및 감독으로 다수 작품을 함께한 톰 크루즈의 사람이다. 이는 폄하로 들릴 수도 있지만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감독의 경우, 이 스타를 잘 이해하고 그가 보여주려는 바를 말이 되는 서사로 구조화해 잘 찍어내는 능력은 더없이 중요하다. 단지 톰 크루즈를 근사하게 포장한다는 뜻이 아니다.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2015)의 비엔나 오페라 하우스 시퀀스에서 덩치가 두배 가까운 거한을 단신의 톰 크루즈가 극복하는 액션이 좋은 예다. <폴아웃>에서 강건한 헨리 카빌과 무술 고수 리앙 양 사이에서 톰 크루즈의 액션 개성을 살려내는 그랑 팔레 화장실 싸움도 마찬가지다.

<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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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스크린

모든 사건이 컴퓨터 스크린 위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데스크톱 영화 또는 온 스크린 영화는 새로운 형식은 아니다. 하지만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서치>는 포맷의 이색(異色)에 의존하지 않고 형식을 납득하게 만드는 스토리와 감정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장편 스릴러다. 예컨대 <서치>는 구식 모뎀 연결음과 함께 컴퓨터 윈도 XP 화면에 어린 딸 마고의 계정을 처음 설정하는 순간으로 시작해 홈비디오, 이메일, 소셜미디어 화면의 몽타주로 한 가족의 십수년을 요약한다. 마치 픽사의 <업>(2009) 도입부처럼. 트라우마에 대응하는 방식도 모니터상에서 표현된다. 아빠는 행복한 추억을 담은 영상을 아예 검색에서 제외시키는 반면 딸은 라이브 인터넷 방송을 통해 익명의 낯선 이들에게서 위로를 구한다. 브라우저 창을 여닫고 움직이는 속도도 인물의 기분을 반영한다. 주로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상황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주연 존 조의 호연이 수훈감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