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동료들과 함께 늦은 대화를 마치고 카페 문을 나설 때였다. 느닷없이 내린 눈발이 나지막한 담장 위에 고스란히 쌓여 있었는데, 새끼손톱만한 크기의 눈송이들이 녹거나 흐트러지지 않고 서로 몸을 기댄 채 가로등 빛을 받아 일제히 반짝였다. 허리를 굽혀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눈의 결정체들은 어느 것 하나 서로 같지 않았고,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눈송이 하나도 이러할진대 천지간의 우주는 어떻겠느냐는 어느 책 한 구절을 감동적으로 회상했다.
우주물리학은 나에게 접근을 허락지 않는 어려운 세계이지만 그래도 쉽고 아름답게 쓰여진 대중서를 통해 간혹 그쪽 세상을 구경하곤 한다. 최초의 경험은 <우주의 역사>라는 책이었는데, 20세기의 인류가 겨우 도달한 우주에 관한 지식을 정리하면서 그 한계를 이렇게 요약했다. 고대 동양의 어떤 민족은 우주가 거북이 열몇 마리를 엎어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믿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동그랗고 평평한 우주 모델이 거북이 모델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없다.
최근에 읽은 <엘리건트 유니버스>는 거대 우주를 설명하는 상대성 이론과 미시 세계를 해명하는 양자역학이 드디어 행복하게 화합할 수 있는 계기를 찾았으며 그 실마리는 초끈 이론이라고, 감격에 겨운 소식을 전해준다. 우주물리학자들은 우주가 4차원이 아닌 열몇개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증명하면서 여러 겹으로 주름잡힌 공간 모델도 제시했다. 들뢰즈가 이 세상은 주름잡혀 있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형이상학적인 비유가 아니라 가장 생생한 실제였던 것이다. 거북이 모델의 한판승!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혼돈이라고 여기는 우주가 실제로는 심오하고 완벽한 디자인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 아름다움은 그러나, 작은 순간들의 휘어짐을 무수히 내포하는 채로의 완벽성이다. 예측하지 못했던 특이점에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휘어지고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그 어질어질한 순간에도 우리의 우주는, 나의 우주는, 거대 디자인의 측면에서 자신의 심오하고 우아한 본성을 변함없이 구현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믿음은 삶의 무한한 역동성과 변함없는 하나의 원리를 통합해서 생각할 수 있는 지지대가 되어준다. 이 에디토리얼을 채우게 될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가져본 생각이다. 김소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