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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침체를 부술 스펙터클에 시동을 걸어라!
송경원 2025-06-20

오늘, 집 근처 자주 가던 극장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부터 퇴근 후 아이를 재우고 마지막 상영 회차를 챙겨보는 게 하루의 소소한 행복이었지만 이젠 어렵게 됐다. 심야영화는 사람이 적을수록 특별해진다. 아무도 없는 극장, 혼자 스크린을 독차지하는 날엔 전세를 낸 기분마저 들었다. 관객이 한명도 없는 날에도 꼭 제일 뒷줄에 앉아서 영화를 봤는데, 내 자리에서 스크린까지 객석이 모두 비어 있는 사치스러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더 좋았다.

하지만 올해는 같은 광경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극장에 사람이 하나둘 없어지더니 텅 빈 극장에서 혼자 영화 보는 날이 많아진 탓이다. 넓은 극장에 사람이라곤 직원 한명과 나뿐일 때, 쾌적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동전의 뒷면처럼 황량하게 다가왔다. 점점 불안해졌다. 이러다 극장이 망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이내 기우에 불과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6개월을 못 채우고 우려가 현실이 된 후에야 자각한다. 내가 즐겼던 건 적막함이 아니라 평소와 다른 특별함이었다는 것을. 적막함이 기본값이 되고 나서야 소란스럽던 극장 풍경의 소중함을 절감한다. 극장이 (언제나 내 곁에 있을) 당연한 공간이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극장 체험이란 묘하다. 이 넓고 검은 방 안엔 각자 따로 보면서도 같은 시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안개처럼 깔려 있다. 번잡하지도 쓸쓸하지도 않을, 적당한 거리감이라고 해야 할까. 돌이켜보면 내가 극장이란 공간에 매료되었던 첫 감각은 ‘사이즈’였다. 현실에선 체험할 수 없는 특별한 사이즈가 주는 비현실적인 매력. <쥬라기 공원>(1993)을 극장에서 본 날의 감각은 아마도 평생 잊히지 않을 종류의 충격일 것이다. 스펙터클한 ‘사이즈’ 자체에 이유 없이 무장해제 됐던 건 아마도 그 무렵부터다.

분석이나 평가 이전에 <트랜스포머>(2007)나 <퍼시픽 림>(2013), <고질라 VS. 콩>(2021) 같은 영화들을 보면 조건반사처럼 내적 환호가 터져나온다. 거대한 스크린, 아니 스크린과 거대함 앞에서 단지 크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열리는, 철없는 아이를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건 영화가 아니라 극장이란 공간 자체에 보낸 환호였던 것 같다. 한편 크기만큼이나 스펙터클을 형성하는 또 하나의 강렬한 요소는 속도다. 눈으로 쫓기 힘든 현란함도 매력적이지만 속도를 실감할 수 있는 건 의외로 중량감이다. 크고 무겁고 거대한 존재가 움직이는 에너지, 실체화된 중력이라고 해도 좋겠다.

<탑건: 매버릭>(2022)에서 마하의 속도로 관객의 마음을 뺏었던 이들이 돌아왔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신작 <F1 더 무비>는 극장 영화의 쓸모와 매력을 다시금 각인하는 영화다. 제리 브룩하이머 제작이라는 타이틀이 이번만큼 믿음직스러운 적이 없었다. 고요와 적막 속에서 내면으로 집중해 들어가는 영화도 좋지만 적어도 여름에는 떠들썩하고 시원한 영화에 더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올해도 무더위와 함께 조용한 극장을 축제의 한복판으로 바꿔놓을 영화들이 시동을 걸고 있다. <씨네21>도 <F1 더 무비>를 시작으로 올여름 극장의 존재 의미를 증명할 영화들을 매주 차례로 소개할 예정이다. 더 크고, 빠르고, 화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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