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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살민 살아진다 이어야 이어진다
송경원 2025-03-21

살민 살아진다. 화제작 <폭싹 속았수다>의 여섯 번째 에피소드 제목이 가슴에 콕 박혔다. 내용 자체가 눈물샘 터지는 사연이기도 했지만 슬픔을 덮고 일상을 이어가기 위한 다짐 같은 말이라 더 가슴이 아렸다. 한탄의 말인지, 한숨의 모양인지, 그도 아니면 살고 싶은 해녀의 숨비소리인지 헷갈리는 저 무덤덤한 한마디. 그 아래로 눈물이 스며들어 고여 있다. 족히 바다를 메울 만한 양이다.

때때로 삶이 잔혹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운명이 교통사고처럼 우리를 들이받는 건 버틸 수 있다. 문제는 슬픔의 자리가 그 순간에만 머물지 않고 주변으로, 내일로 번진다는 거다. 삶은 픽션과 다르기에, 비극적인 사건이 지나가고 난 뒤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채 이어진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괴로워도 밥숟가락은 들어야 하고, 바닥에 잠길 듯 몸이 무거워도 일어나 일터로 나가야 한다. 온전히 슬픔에 잠길 쉼표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강퍅한 시간의 파도가 냉혹하게 우리를 떠민다.

주변을 돌아보니 상황이 녹록지 않다. 2024년 12월 이후 대한민국의 정상적인 일상이 정지했다. 잠시일 줄 알았는데 이 얼어붙은 불안의 시간은 고장난 시계처럼 흘러갈 줄 모른다. 서글픈 건, 그럼에도 평범한 우리는 오늘의 할 일을, 주어진 몫을, 하루치 밥벌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거다. 할 수밖에 없다. 고단할수록 몸을 일으켜 더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으로 삶은 또 이어진다. 때론 이 지긋지긋한 일상이 살얼음 같은 불안을 애써 떨쳐버리려는 몸부림인가 싶을 때도 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회의감에 젖어 손 놓아버린 채 쉬고 싶기도 하다. 자책은 달콤하고 포기는 쉽다.

<씨네21>의 밥벌이인 영화계도 위기다. 아니, 극장산업을 둘러싼 위기의 목소리는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위기가 만성이 되어 시큰둥해졌을 무렵, 정신 차려 보니 보이지 않던 조류에 떠밀려 너무 먼바다까지 나와버렸다. 작은 쪽배로는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파도를 마주하니 여기저기 체념의 목소리들이 적지 않게 터져나온다. 이미 늦었어. 왜 이제 와서 그래. 했던 이야기를 반복해서 뭐 하려고.

기본적으로 비관론자인 나는 매사 습관처럼 부정적인 상황부터 먼저 시뮬레이션해본다. 막상 감당하기 힘든 파도를 마주하고 보니 그 볼멘소리들마저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발버둥처럼 들린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게 괴롭고 난망해도 해야 한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에 답답해도 손을 놓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게 1499호에서 뒤늦게 영화표 값에 얽힌 특집기사를 준비한 이유다. <키즈 리턴>(1996) 속 대사를 빌리지만 “우리 이제 끝난 건가?/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앞으로도 극장의 현실에 대한 기사를 지겹도록 이어갈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영화 주간지 하나가 그렇게 30년을 이어왔다.

다음주 1500호는 <씨네21> 창간 30주년을 맞이해서 각별히 준비 중이다. 어쩌면 한달, 아니 1년 내내 특별한 무언가를 시도할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잘하지 지금 같은 분위기에 무슨 유난이냐는 핀잔도 들려온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축하할 일은 더 크게 축하하면서 떠들썩한 잔치를 벌이려 한다. 삶이 이어지기에 잔혹하고, 같은 이유로 아름답다. 오늘의 어려움을 끝이 아닌 과정으로 만들기 위해, 힘들고 고될수록 멈추지 않으려 한다. 이어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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