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지켜줄게. 넌 혼자가 아니야.” 극장 가가 ‘하츄핑’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개봉 3주차 누적 관객 70만명 돌파를 앞둔 국내 애니메 이션의 돌풍은 좋은 기사 거리이긴 하다. 아이들 때문에 갔다가 엄마아빠가 울고 나왔다든지, 공주 분장을 하고 관람하는 아이들이 캐릭터 대사 하나하나에 답하며 스크린과 대화를 나눈다는 에피소드는 건너 듣고 있으면 꽤 재미있다. 다만 ‘하츄핑’ 열풍의 실제 당사자가 되면 강 건너 불 보듯 즐거울 수만은 없을 것이 다. 사랑에 빠진 존재 옆에서 동행한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묻지 마시길. (언론 시사도 제대로 못 챙겨보는 내가 <사랑의 하츄핑>을 이미 2번이나 봤다.)
‘애니메이션 애호가’ 입장에서 기분 좋은 소식 사이사이 이상한 포인트로 어그로를 끄는 기사들이 보인다. ‘<리볼버>, <하츄핑>에 참패…’, ‘<하츄핑>, 전도연 이겼다’ 같은 제목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내 얼굴이 뜨거워진다. 미안한 마음이 샘솟는다. 아예 다른 카테고리의 시장에 있는 두 작품을 이런 식으로 비교하는 건 자신의 길을 관철해온 작가와 고군분투 중인 한국 영화 전반에 대한 모욕일 뿐 아니라 한창 분위기 좋은 <사랑의 하츄핑>에도 민폐다. 이런 표현 자체가 국내 애니메이션에 대한 몰이해와 무관심을 스스로 떠들어대는 꼴이다.
애정을 전제하지 않고 쉽게 던진 말은 이렇게 값싸다. 문득 얼마 전 최민식 배우가 고심 끝에 꺼낸 극장 티켓값에 대한 걱정을 편의대로 잘라 공개 저격한 카이스트 교수의 값싼 비판이 떠오른다. 그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자면 (카이스트 교수처럼) 무지한 건 죄가 아니다. 그는 영화산업에 대한 일말의 애정도 없을 테니. 하 지만 알려고 하지 않는 건, 상대를 이해할 의지도 없이 (보이는 만큼만 보고 판단하여) 함부로 내뱉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스스로 무지를 뽐내는 책임 없는 말은 같은 태도로 오랜 세월 길들여진 언론의 펜을 거치며 이미 세균처럼 번식 중이다.
<사랑의 하츄핑>이 70만, 100만 관객을 넘보는건 그다지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다. 국내 아동 애니메이션 시장은 생각보다 저변이 넓고, <사랑의 하츄핑>은 가족 관객이 함께 봐도 충분히 즐길 만큼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스토리도 생각보다 매운맛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수차례 경험해왔다. 좋은 작품이 반드시 흥행하는 것도 아니고, 흥행이 작품의 가치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란 사실을. 작품성과 진정성, 흥행의 상관관계가 생각보다 훨씬 희미하다는 진실을. 어쩌면 수치로서의 흥행은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인식, 거창하게 말하면 시대정신을 읽어낼수 있는 건조한 지표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관객의 선택을 받은 작품만큼 받지 못한 작품들에 대해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건 흥행이나 부진의 이유를 찾는 것과는 결이 다른 작업이다. 영화 전문지로서 <씨네21>이 놓치지 않아야 하는 건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이면에 대한 호기심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영화를 향한 애정과 관객을 향한 궁금증. 그것이 이미 극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리볼버>를 굳이, 다시 말하는 이유다. 걸작이라서 되돌아보겠다는 게 아니다. ‘널 지켜주겠다’는 오만을 부릴 처지도 못 된다. 다만 이렇게 어정쩡하게 잊히도록, 혼자 내버 려두진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