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 아부 아사드 감독의 <노래로 쏘아올린 기적>은 특별한 목소리를 타고난 한 소년의 아이돌 오디션 참가기다. 중요한 설명이 빠졌다. 영화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으로 불리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사는 한 소년이 이집트에서 열리는 오디션 예선에 참가하기 위해 분리 장벽을 넘어 가자지구 밖으로 향하는 여정부터 찬찬히 살핀다. 2013년, 팔레스타인 난민 최초로 ‘아랍 아이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무함마드 아사프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하니 아부 아사드는 전작 <오마르>에서도 거대한 장벽(서안지구 분리 장벽)을 넘나드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일상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단지 총알이 빗발치는 장벽만 위험한 게 아니다. 주인공 청년 오마르는 친구를 밀고하도록 협박받고 이중첩자가 되길 강요당한다.
연일 뉴스를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 소식을 접하게 된다. 10월7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했다. 보복 공격 속에 민간인의 피해는 나날이 늘고 있고,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중동전쟁으로 번질까 우려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분쟁의 역사는 깊고 복잡하다. 오랜 세월 반목해온 두 나라의 사정은 영화로도 종종 재구성되었다. 앞서 언급한 <노래로 쏘아올린 기적> <오마르>가 이스라엘 태생의 팔레스타인 감독의 시선으로 그린 팔레스타인의 현실이라면, 뮌헨올림픽 참사를 그린 <뮌헨>은 유대인 미국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시선을 경유해 참혹했던 테러와 보복의 역사를 응시한다. 1972년 9월5일, 팔레스타인 무장 테러단체인 검은 9월단이 뮌헨올림픽에 참가한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침입해 끝내 11명을 살해하자 이스라엘 정부는 테러 주동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비밀 정보기관 모사드를 투입해 보복 작전을 펼친다. 결국 피는 피를 부를 뿐이라는 역사적 진실을 재확인시켜주는 영화 <뮌헨>을 만든 뒤 스필버그 감독은 양쪽 진영 모두에서 칭찬을 듣지 못했다. 박찬욱 감독도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6부작 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의 연출을 맡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다룬 적 있다. 1979년 독일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관저에 폭탄 테러가 발생하면서 <리틀 드러머 걸>은 시작된다. 유럽에 사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테러가 이어지는 가운데, 연기의 재능을 살려 스파이의 길로 들어선 찰리(플로렌스 퓨)는 (그리고 관객은) ‘진실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을 진실이라 믿을 것인지’ 시험에 든다.
비극의 역사가 반복된다. 전쟁이 계속된다. 이번주 특집 기사에서 추석과 여름 시장 한국영화 박스오피스의 이상기류를 진단했지만, 한국영화의 위기보다 세계 평화의 위기가 마음을 더 짓누른다. 교황이 할 것 같은 얘기지만 증오, 분노, 복수, 갈등은 커지고 평화, 용서, 사랑과 같은 가치는 위기에 처했다. 매일이 근심이다. 영화를 보는 일이 다 무언가 싶은 체념까지 하게 된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의 삶에 감사해야 한다고 <전쟁과 평화>에서 톨스토이가 말했던 것 같은데…. 내일은 오늘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