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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개들로 이루어진 사랑의 세계, ‘도그맨’
김철홍(평론가) 2024-01-23

케일럽 랜드리 존스의 연기가 돋보이는 뤼크 베송 감독의 <도그맨>의 매력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 뤼크 베송 감독의 신작 <도그맨>은 시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한마디로 문을 연다. 위 문장은 인간을 위로하는 존재로서의 신을 긍정하고 오랜 세월 인간과 공생 관계였던 개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말이다. 이는 이제부터 펼쳐질 극의 방향성과 분위기를 암시하는 장치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에 따르면 <도그맨>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해진다. 그 첫째는 ‘불행’이고, 둘째는 그곳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인간을 구원해줄 누군가이다.

돌이켜보면 ‘불행’과 ‘구원자’의 서사는 40년간 20편에 달하는 작품을 연출한 뤼크 베송의 영화 세계에 자주 등장한 레퍼토리다. 아니 어쩌면 라마르틴의 저 한 문장만으로 이 감독의 여러 영화들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린 <그랑 블루>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자크에게 신이 돌고래를 보낸 영화이고, 대표작인 <레옹> 또한 세상에 홀로 남은 10대 소녀 마틸다를 레옹이 구원해주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의미심장한 문장을 오프닝에 삽입한 것과 더불어 감독 스스로 자신의 신작에 대해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을 압축한 이력서”라고 말했던 것까지 고려하면, <도그맨>은 뤼크 베송의 다사다난한 필모그래피 중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닐 작품임이 분명하다.

뤼크 베송이 이번 작품에서 찾은 불행의 장소는 미국 뉴저지의 한 마을이다. 금발의 여성 가수 행색을 한 사람이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발생한다. 핑크 드레스 사이로 보이는 몸 곳곳의 혈흔과 체포 당시 그가 운전하던 차의 트렁크에 태우고 있던 수백 마리의 개들로 인해 경찰은 난색을 표한다. 무엇보다 곤란스러운 건, 이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지 쉽게 유추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에 정신과 의사인 에블린(조니카 T. 깁스)이 급히 경찰서에 파견되고, 그러자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그가 비로소 가발을 벗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인간보다 개들을 더 사랑한다고 말하며 무수히 많은 개들과 함께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더글라스(케일럽 랜드리 존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에겐 어떤 불행이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얼마나 큰 불행이 있었기에, 신은 이토록 많은 개들을 그에게 보내야만 했던 것일까. 그렇게 우리는 조심스레 질문을 던지는 에블린의 옆자리에 앉아, 더글라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더글라스의 말에 따르면 그에게도 가족이 있었다.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가족이 아닌, 그저 피로 이어진 가족 말이다. 투견용 개를 사육하는 사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던 소년 더글라스는, 어느 날 아버지의 규칙을 어기고 개에게 사랑을 주다 그만 발각되고 만다. 지속적으로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왔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끔찍한 벌을 내린다. 바로 더글라스를 개가 살고 있는 철창에 가두어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더글라스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갇히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 평범한 ‘맨’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사이 특별한 유대 관계를 맺은 개들과 힘을 합쳐 나를 버린 세상에 복수하는 ‘도그맨’이 될 것인가. 에블린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도그맨의 영웅담을 들으며, 사태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배우 케일럽 랜드리 존스에 주목하라

‘영웅담’이라고 표현하긴 했으나 <도그맨>은 영화가 제공하는 구경거리를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쉽게 말해 이 영화의 주인공인 더글라스는 조커와 같은 안티히어로에 속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더글라스는 다른 흔한 안티히어로들처럼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지니진 않았다. 따라서 그가 저지르는 일들도, 대체적으론 이해가 가능한 선에서 이뤄진다. 예컨대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자에게 (개를 보내) 책임을 묻는다거나, 또는 수많은 유기견들을 먹여살리기 위한 방도로 (개를 보내) 부잣집을 터는 것이다. 그는 절대 개들에게 애꿎은 사람을 물라는 명령을- 아니 부탁을 하지 않지만, 사회 바깥의 삶을 살고 있는 ‘개+인’이 벌이는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인간들의 관점에서 시정하고 처벌해야 하는 대상에 속한다. 그렇다면 결국 영화에서 묘사되는 더글라스의 행동들을 ‘범죄지만 합리적’이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 ‘합리적이지만 범죄’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 이번 작품에서도 직접 각본을 쓴 뤼크 베송 감독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그 방점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헷갈리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 줄 위에서 완벽한 묘기를 선보인 또 한명의 인물은 배우 케일럽 랜드리 존스다.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동시에 지닌 더글라스라는 인물의 이야기에 관객들의 마음이 움직였다면, 감히 말하건대 그건 감독보다도 이 배우의 공이 크다. “그가 없었다면 <도그맨>도 없었을 것”이라고 평한 감독의 말 역시 흔한 수사적 표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케일럽 랜드리 존스는 <겟 아웃> <플로리다 프로젝트> <쓰리 빌보드> 등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들을 통해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다 2021년 제74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상영된 <니트람>을 통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배우다. 큰 영예를 얻었음에도 곧바로 또 한번의 파격적인 연기에 도전했다는 점이 계속해서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게 한다. <도그맨>에서 그는 개와 소통하는 기인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젠더의 경계를 넘나드는 드랙퀸 공연 퍼포먼스까지 보여주며 그의 다재다능함을 세상에 각인한다.

끝까지 믿고 포기하지 않는 것은

다재다능은 사실 <니키타> <레옹> <제5원소> 등 다른 영화들에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들을 연달아 연출했던 감독 뤼크 베송의 이름에 따라붙던 수식어였다. 그에겐 한번 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개성 있는 인물을 창조하고 그 인물의 매력에 부합하는 스타일리시한 액션 시퀀스를 연출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발표한 작품들을 통해 그 능력들을 잃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았고, 그렇게 그는 아직까지도 전세계의 영화 팬들로부터 시험을 당하고 있다.

과연 <도그맨>은 그 상황을 반전시킬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이에 관해선 상반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비관적인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부분을 지적할 테다. 더글라스는 레옹과 마틸다처럼 세상의 유일한 존재로 느껴지기보단 불행한 일군의 사람들 중 대표자처럼 보이고, <도그맨>의 많은 장면들 또한 다소 관습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개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주인공만의 특별한 능력도, 요즘같이 온갖 초능력자들이 날뛰는 이 세상에선 평범하게 느껴진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동하는 건 영화가 끝까지 믿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바로 타인의 사랑이자 관심이기 때문이다. 관련해 1인칭 시점 대신 에블린의 시점을 활용해 극을 여닫는 이 영화의 형식은(이 또한 매력적인 연출 방식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비극의 진정한 엔딩이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지에 대한 감독의 답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뤼크 베송의 영화는 결국 사랑받지 못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그의 세계에서 사랑받지 못한 누군가는 자크가 되고, 니키타가 되었다가 마틸다가 되었다가 다시 도그맨이 된다. 그리고 그 인간들을 창조한 감독은 그들에게 개를 보낸다. 그렇게 n마리의 개들로 이루어진 세계가 탄생한다. 가끔 이 불행한 현실에 신이 필요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섣부른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우리에게 완벽한 사랑을 주는 존재들. 그들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든 현실을 살며, 뤼크 베송의 개들을 바라본다. <도그맨>이라는 개는 어쩌면 당신과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긴 세월 불행이 있는 곳에 영화를 보내왔던 감독의 다음을 기다리게 만드는 작품인 것만은 확실하다.

<도그맨>의 주역들: 도그와 맨

<도그맨>은 그 무엇보다 배우와 배우 개들의 호흡과 매력도가 중요한 영화다. 영화 특성상 동시에 많은 개가 화면에 등장해야 했기 때문에 실제 촬영 현장에도 전세계에서 캐스팅한 100마리가 넘는 개들과 25명의 훈련사들이 함께했다고 한다. 거기엔 당연히 매우 바쁜 ‘스타 개’도 몇 마리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중 영화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도베르만은 그 본성과 맞게 극 중에서도 늠름한 경비견 역할을 맡아 영화의 스릴러적인 면모를 부각하는 데 일조한다.

유년 시절에 받은 학대로 인간 사회에 쉽게 녹아들지 못하는 한 남자를 연기한 케일럽 랜드리 존스 또한 이 영화에 여러 방면으로 크게 기여한다. 그는 하반신이 마비된 인물을 완벽하게 연기해냄과 동시에 중반부 이후부터 등장하는 드랙퀸 공연 장면에서도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극에 몰입감을 불어넣는다. 특히 프랑스의 전설적인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대표곡인 <군중>(La Foule)과 독일의 사랑 노래 <릴리 마를렌>(Lili Marleen)을 공연하는 장면에선, 이 배우의 넓은 스펙트럼과 가능성을 무한 긍정하게 된다. <도그맨>은 분명 주연을 맡은 케일럽 랜드리 존스에게 중요한 이력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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