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영화의 아찔함은 단지 절벽의 높이에 달려 있는 것만은 아니다. 깎아지른 암벽에 매달린 사람들, 눈사태 속에 조난당한 사람들이 살아남으려는 본능의 이빨을 드러낼 때, 그러면서 서서히 ‘평지’에선 확고했던 사회적 인간성이 흔들림을 시작할 때, 그때부터 산악영화의 ‘한계상황’은 아찔해진다. ‘버티칼 리미트’는 더이상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한계고도를 일컫는 말. 영화 <버티칼 리미트>는 그 생물학적 한계지점에 등장인물들을 던져놓고 그들의 휴머니즘을 시험한다. 그리고 그것을 옹호한다. 인육을 먹고 살아나는 <얼라이브>의 비행기 탑승객들과는 달리, <버티칼 리미트>의 베이스캠프 사람들은 조난당한 세명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여섯명의 구조대를 꾸리고, 이중 네명의 목숨을 희생해가며 한명의 조난자를 구해낸다.
죽게되는 조난자 둘 중 한명을 죽이는 것은 ‘이기적’인 본능을 드러내는 유일한 인물인 본이다. 정해진 시간 정상에 올라 첫 취항하는 자신의 항공사 비행기에 손을 흔들겠다는, 지극히 ‘세속적’인 이유로 산에 오른 본은, 오래 전 이미 산악인 몽고메리 윅의 부인을 조난중 죽인 전력이 있다. 이를 알고 있는 몽고메리는 애니를 ‘살리러’ 피터가 꾸린 구조대에 본을 ‘죽이러’ 동참한다. 다시 하나의 자일. 구조 중 한개의 줄에 여러 명의 사람이 매달리자, 몽고메리는 자신의 위쪽 줄을 잘라 피터와 애니를 살리며 자신의 밑에 있던 본과 함께 죽는다. “아버지에게 칼이 있었으면 아버지가 줄을 끊었을 것”이라며 피터를 위로하던 몽고메리의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피터는 3년 전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영화는 피터와 애니 남매의 화해를 보여주면서 ‘가족애’를 살려낸다.
해발 2만6천피트 고도의 K2 능선에서 벌어지는 조난과 구조의 이야기 <버티칼 리미트>는 7년 전의 <클리프 행어>보다 아찔한 스펙터클도 볼 만하지만, 위기에 처한 인물들간의 심리를 그려내는 드라마의 힘 역시 눈길을 끄는 영화다. 조난당한 사람들, 그리고 구조하려다 역시 조난당할 위기에 빠지는 구조대원들의 이야기에선 어딘가 <큐브>를 연상시키는 재미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최수임 기자sooee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