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스물네살의 구청 공익근무요원 준이(김현성). 제대가 아닌 소집해제를 한달 남겨둔 그는 무료한 근무와 세탁소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를 지워 나간다. 유부녀이자 구청 직원인 미영(방은진)과의 애정없는 육체관계에 회의가 들 무렵, 우연히 구청에 들른 첫사랑 은지(변은정)를 만난 준이. 은지와 다시 만날 약속을 하지만 약속장소에는 바쁜 언니 대신 은지의 동생 현지(김민선)가 나온다. 준이는 왠지 모르게 우울한 은지와 달리 밝고 귀여운 현지를 보며 새로운 이끌림을 느낀다.■ Review ‘워너비’(wanna be)도 ‘워너두’(wanna do)도 없는 삶. <그들만의 세상>의 임종재 감독이 5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스물넷>은 구속해줄 학교도 군대도, 혹은 여자도 없는 무형의 공간으로 내몰리기 직전의 스물넷 젊은이에 대한 소고다.
각기 다른 세 여자에 둘러싸인 대략의 시놉시스만 보자면 헤세의 <지와 사랑>의 골드문트가 그러했듯, 농염한 여인의 가슴에 묻혀 혹은 순수한 어린 여자의 입술을 통해 뼈와 살이 완성되어가는 청년의 파란만장한 성장기에 가깝지만, 영화는 오히려 한 젊은이의 사소하고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택했다. 그러나 ‘섹스말고도 궁금한 건 많다’(<고양이를 부탁해>)고 외치던 스무살 여자아이들 대신 ‘키스가 섹스보다 좋아졌다’는 스물네살 남자의 삶은, 뗏목에 누워 강을 거슬러올라가는 안락한 상상이 아니라 도시에 나타난 사슴에 대한 꿈을 꾸는 것처럼 왠지 더 불안하고 모호하다. 또한 세탁소 주인(명계남)이 젊은 시절 그린 뒷모습 자화상을 닮으려는듯, 카메라는 청년의 앞모습을 향해 돌진하기보다 벌거벗고 미숙한 뒷모습을 멀찌감치 바라볼 뿐이다. 그러니 일상은 사실적이되 생기가 없고, 사랑은 넘쳐나되 희망적이진 않다.
한끼먹는 밥처럼 되어버린 섹스, 과감히 손을 내밀지 못했던 첫사랑, 새롭게 솟아나는 감정, 그 사이에서 방황하던 청년은 마지막에 이르러 한곳을 향해 전력질주하지만 그곳 역시 결승점은 아니다. 소집해제된 인생처럼 다시 한번 텅빈 곳에 내던져지는 것일뿐.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된 <스물넷>은 <봉자>에 이은 박철수필름의 두번째 작품. 개봉일이 2002년으로 옮겨오는 동안 임종재 감독은 아·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인 신인감독상을 수상했고 영화는 몬트리올국제영화제 ‘뉴 트렌드’ 부문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다. <세친구>의 ‘무소속’이자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주’로 출연한 김현성이 2000년 실시한 ‘사상 최대 오디션’을 통해 준이 역에 캐스팅되었다. 백은하 luci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