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지방대학 영화과 교수인 김(설경구)은 유부남이지만 아내와 자식들과는 잠시 떨어져 혼자 살고 있다. 그에게는 중학교 교사인 영희(김소희)라는 애인이 있다. 영희는 김에게 그녀의 고향에 함께 내려가 부모님에게 인사드릴 것을 요구하지만 김은 주저한다. 결국 마지못해 영희를 따라나선 김은 그녀를 여관방에 남겨둔 채 홀로 돌아오고 만다.■ Review 데뷔작 <내 안에 우는 바람>(1997)에 이은 전수일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가 드디어 우리 앞에 도착한다. 완성되고 나서 거의 3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도착한 이 영화는 오염된 진흙탕 속에서 퍼덕거리던 철새처럼 애처로워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영화가 자리를 잘못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역사와 현실을 장르 속으로 밀어넣고 덧없는 웃음과 거짓 비장함이라는 양날의 칼로 곤죽을 만드는 동안, 전수일은 우리의 영화가 왜 텅 빈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어쩌면 무심결에)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의 화면은 장시간 촬영을 통해 얻어진 고정숏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화면을 채우는 것은 지방대학 영화과 교수 김의 남루하고 지리한 일상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다소 시시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세세한 일상의 묘사보다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주인공 김의 영화가 끝내 완성되지 않을뿐더러 시작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새에 집착하는 김의 행위는 자신도 잘 모르는 무언가를 단지 새라 명명하면서 허망하게 뒤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새조각상을 든 남자를 김이 뒤쫓아갈 때 갑자기 카메라는 인물의 움직임을 불안하게 따라가는데, 영화에서 가장 격렬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이 순간이 거꾸로 가장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중의적이다. 그저 자신이 그린 지도에 따라서만 이동하는 새의 모습은 어떤 폐쇄성, 관습적인 반복이기도 하지만 새의 회귀와 반복운동은 언제나 하나의 생성, 탄생을 예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김이 오염된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새를 바라볼 때, 전시회에서 한 그림- 상단에는 날갯짓하는 새가, 하단에는 폐곡선이 그려진 그림- 을 주시할 때 전수일은 쉽사리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제목 뒤에 생략된 말은 ‘우리도 폐곡선을 그린다’일 수도 ‘왜 우리는 폐곡선을 그리지 못하는 것일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는 많은 아쉬움과 함께 오히려 전수일의 다음 영화를 기대하게 만들지만 뒤늦은 귀환에 충분히 값하는 작품이다. 유운성/ 영화평론가 akeldama@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