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같이 살고 젊은 나이에 죽어 아름다운 시체를 남긴다.”
보니와 클라이드, <트루 로맨스>의 클레런스 같은 부류의 막 가는 청춘을 위한 이 슬로건은 뤽 베송 감독이 잿더미 속에서 부활시킨 15세기 프랑스 성녀 잔 다르크에게도 꼭 들어맞는다. 뤽 베송이 연인 밀라 요보비치의 육체에 불어넣은 잔 다르크의 영혼은 흡사 고조기에 접어든 조울증 환자다. 구원받고 구원하려는 신열에 들떠 한시도 자신을 가만두지 못하는 그녀는 잠자지 않아도 피곤을 모르며 허벅지에 화살이 꽂혀도 아픈 줄 모른다.
1899년 이래 열여덟편에 이르는 ‘잔 다르크 영화’가 만들어진 사실이 웅변하듯 오를레앙의 처녀는 스크린이 누구보다 경애하는 성인(聖人)이다. 칼 드레이어(<잔 다르크의 수난>(1928))의 잔이 지복에 닿은 순교자였고, 빅터 플레밍(<잔 다르크>(1948))의 여성 전사가 페미니스트의 원조였으며, 오토 프레밍거(<성녀 잔>(1957))의 히로인이 감당 못할 일을 저지른 틴에이저였다면, 뤽 베송의 잔 다르크는 그 모든 것이 되기를 욕심낸다. 베송과 앤드루 버킨의 무엄한 각본은 잔 다르크 신화에 드리운 가톨릭적인 휘장과 성스러운 동기마저 쑤시고 찔러본다. 대관절 군사들은 뭘 믿고 애송이를 따랐는지, 어쩌자고 신쯤 되는 존재가 인간들의 패싸움에 끼어 들었는지, 엄청난 살생을 하고도 성녀가 될 수 있는지. 평범한 현대인이라면 품음직한 ‘경망스런’ 궁금증을 툭 까놓고 던지는 것이다.
잔 다르크는 그저 환각에 홀린 운 나쁜 광신자에 불과한지도 모른다고 소근대는 무람없는 태도는, 실상 최신판 <잔 다르크>가 지닌 제일 쓸 만한 창과 방패다. 하긴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 간구할 때마다 응답하는 존엄하고 아름다운 신이 있다면, 그 신이 너를 믿노라고 어떤 소명을 쉼없이 속삭여온다면, 어떻게 그를 실망시킬 수 있으랴. 전장에 나선 소녀는 죽도록 무서웠을 것이다. 토막난 팔다리에 걸려 넘어질 때마다 도망치고 싶었으리라. 이처럼 눈높이 전략을 택한 베송은 기적에 대해 철저히 인색하다. 잔의 통쾌한 무용담이나 기적을 잔뜩 기대하게 해놓고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여, 나를 따르라!”고 소년 같은 목소리로 외쳐 병사들의 미묘한 집단 심리를 휘젓는 ‘치어리더’를 보여줄 뿐이다.대관식의 성유를 보통 기름으로 바꿔치기 하는 일화도 기적에 대한 코웃음에 다름 아니며, 잔의 종교적 비전을 원색의 넝쿨과 꽃잎으로 장식된 다소 유치한 소녀적 판타지로 꾸며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성한 후광을 걷어낸 <잔 다르크>의 승부수는 상업 영화의 그것이다. 악귀 같은 적군과 기회주의적인 왕실과 교회에 포위된 외로운 영웅, 남녀 관객 모두에게 호소하는 요보비치의 중성적 섹시함, 카메라로 드럼을 치는 듯한 베송 특유의 박력있는 스타일에 <브레이브 하트>류의 중세적 잔혹함까지 버무려진 액션 시퀀스는 기나긴 상영시간 동안 관객을 붙잡아둔다. 그러나 피부 안쪽까지 소름돋게 하는 흉칙한 모양새의 무기들이 일으키는 피보라와 불필요하게 잔혹한 강간 장면은 알레르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잔 다르크>의 또다른 주요 병기는 강인한 젊은 여성의 이미지. 잔은 시종 여자를 얕잡아보는 병사들에게 으르렁대고, 끝내는 남장이 독신(瀆神)보다 더 큰 죄인 양 심문받는다. 하지만 전장에서 바람둥이, 무뢰한, 지적인 미남 등 다양한 유형의 장군들에게 보호받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이 든든한 ‘오빠’들을 거느린 ‘막내공주님’을 연상시킨다. 들판을 누비고 성벽을 타오르던 영화는 잔이 포로가 되는 순간 잉그마르 베르히만 풍의 사이코 드라마로 변신한다. 인간의 형상을 한 잔의 양심으로 등장하는 더스틴 호프먼은 “들판에 놓인 검! 그것이 징표였어요!”라고 도리질하는 잔을 “아니. 그건 그저 들판에 놓인 검일 뿐이야”라고 일축하며 가엾은 소녀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미국과 러시아의 배우들이 영어 대사를 주고받는 프랑스 시대극 <잔 다르크>는 베송의 영화가 언제나 그랬듯 프랑스영화의 적통과도 관계가 멀지만 할리우드 관습에서도 비스듬히 비껴간다. 국적없는 영화가 2000년대 영화의 한 경향이 된다면 베송은 훗날 개척자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예산 6천만달러의 대작 <잔 다르크>가 당장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는 스타일의 소화불량이다. 서로에게 단단히 동여매졌더라면 이완과 긴장의 매력적인 리듬을 창출할 수도 있었던 전쟁 서사극의 악장과 심리극의 악장은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데 그쳤고, 전투 시퀀스 내에서는 다시 중세적 하드고어와 코미디가 서툴게 공존하는 딱한 광경이 연출됐다. 이 영화의 처음이자 끝이 되는 인물 잔을 민중의 벗과 근왕주의자, 광신자와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고단하게 방랑하도록 만든 것도 시대극 팬들을 맥풀리게 할 만하다. 스펙터클과 영웅담, 인간성의 비밀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위대한 서사극의 징표를 <잔 다르크>에서 찾기는 힘들다.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승전고를 울린 지점에서 뤽 베송의 <잔 다르크>는 총총히 퇴각하고 만다.
실존인물 잔 다르크(1412∼31)
성녀인가 정신병자인가
“절망과 복수심으로 싸웠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구원으로 믿고 계속 피흘리게 했습니다. 저는 오만하고 편협했으며… 그래요, 잔인했습니다.” 영화 <잔 다르크>에서 화형을 앞둔 잔은 메마른 목소리로 이렇게 고해한다. 진짜 동기가 무엇이었든 근세로 넘어오는 길목에서 프랑스 국민의식 형성의 마스코트가 된 영웅 잔 다르크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로렌 근교의 시골마을 동레미의 신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난 잔은 대천사 미카엘과 성녀들의 음성을 통해 프랑스를 유린하던 영국군과 부르군디 일파를 축출하는 사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신과 직접 교통한다는 그녀의 고백은 후일 종교재판에서 교회의 심기를 거스른 원인이 된다. 잔의 언니가 반송장 상태로 강간당하는 영화 속의 끔찍한 사건은 역사에 기록된 바 없지만 시농성에서 신분을 감춘 황태자를 한번에 알아본 일화는 유명하다. 기록에 의하면 잔은 힘세고 건장했지만 얌전한 몸가짐을 가진 처녀였고 영화와 달리 태자를 만났을 때 이미 무장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진두지휘에 나선 잔은 계시를 받은 듯 갑작스런 공격을 명하거나 그녀가 들어봤을 리 없는 지역으로 출동을 명해 승리를 거둠으로써 프랑스 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했다. 현실적 조건을 초월한 몇 차례의 승전과 잔의 불가해한 육체적 정신적 용기는 신화가 됐고 영국군은 잔의 흰 옷자락이 나타나기만 해도 줄행랑을 쳤다. 1430년 콩피에뉴전투에서 후위를 방어하다 사로잡힌 잔은 극심한 탈출 욕구에 시달린 나머지 첨탑 위에서 몸을 던져 실신하기까지 했다. 잔 다르크의 마지막 부탁은 화형의 순간에 십자가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현대의 연구들은 잔 다르크가 적인 영국인보다 프랑스 내분의 희생양이었다는 점을 밝혀내왔다. 종교에 비판적이던 후세 작가 아나톨 프랑스는 잔 다르크를 성직자들의 조종을 받은 신경쇠약증 환자라고 냉정히 평했으나, 전기 작가 앙드레 모로아는 그의 <프랑스사>에서 잔 다르크를 가리켜 신앙과 의지가 성취할 수 있는 기적의 가장 경이적인 예라고 썼다. 1920년 5월16일 성녀로 추증된 그녀의 축일은 5월30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