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베프>는 비평가로서의 그의 화려한 이력과 공력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만끽시킬 만한 영화였다. 일견에서 제기되는 영화와 뱀파이어의 존재론적 유사성을 은연중에 상기시켰을 뿐 아니라, 영화 만들기의 현장을 다루면서 영화에 대한 영화, 즉 자유로운 자기성찰적 양식을 선보였다. 잘 알려져 있듯 <이마베프>는 루이 푀이야드의 무성영화 <뱀파이어>를 참조하고 있으며, 시네필들이 보기에는 더없이 재치 넘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클린>은 그런 점에서 다소 다른 면을 갖추고 있다. 어떤 식으로건 지식으로서의 인용이나 참조의 과정을 끌어들이지 않고 자신이 부여한 인물의 드라마상의 처지와 처소를 통해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클린>에는 비평 개념의 야심적인 둔갑술이 등장하지 않고, 영화매체의 성질에 천착하는 우회로도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인물의 정서를 좇아가는 것에 집중한다.
한물간 록스타 리(제임스 존스턴)와 그의 아내 에밀리(장만옥)는 캐나다 밴쿠버의 허름한 모텔에서 여느 때와 같이 실패한 인생을 빌미로 서로에게 상처주며 싸움을 벌인다. 화가 난 채로 모텔을 빠져나와 차 안에서 마약에 취해 잠이 든 에밀리, 돌아온 그녀가 목격하는 것은 남편의 시신이다. 결국, 현장에서 에밀리 역시 마약 복용 혐의에 걸려 6개월간 복역을 마치고 나온다. 이제 그녀에게 삶의 희망은 시부모 밑에 맡겨놓은 어린 아들뿐이다. 그러나 그녀를 믿지 못하는 시부모들은 아이를 보여주는 것조차 꺼린다. 그때부터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고 마약의 유혹에서 벗어나 새 삶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에밀리의 모습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끌어간다. 어느 날 일생일대의 마지막 기회가 그녀에게 찾아온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을 오디션. 그러나 같은 날짜에 어렵게 성사된 아들과의 하룻밤. 오디션을 포기하고 아들과의 하루를 선택했던 에밀리는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데리고 샌프란시스코로 오디션을 보러간다.
<클린>은 ‘갱생의 드라마’다. 그 과정에서 감정은 고양될 수밖에 없다. 에밀리가 과거의 마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위탁한 자식을 되찾기 위해 모성애를 발휘할 때 그 감정은 처연하게 흐른다. 캐나다, 파리, 런던,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로 이어지면서 영화는 에밀리의 내면과 도시의 외양을 서로 연결시킨다. 절망은 도시의 새벽녘과 함께 찾아오고, 복잡다단한 삶 속에 놓인 에밀리의 불안함은 그녀를 둘러싼 도시의 풍경들로 드러난다. 마침내 에밀리가 희망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삶의 미래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은 이 영화 속에서 도시가 어떤 의미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마침표와도 같다. 비록 그 방법이 너무 도식적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실패자가 걷는 갱생의 드라마, 아들을 되찾기 위한 모성의 드라마를 기본 골자로 설정하면서 <클린>은 현실 체감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정서의 수위를 이미 갖게 된다. 그것은 이 영화의 허구가 더 폭넓은 영화적 짐을 짊어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화의 전반적인 리듬이 살아 있긴 해도<클린>은 거기에서 많이 나아가질 못한다. 오히려 아사야스는 그 대안을 음악에서 찾지만, 이것은 <클린>의 장점이자 한계가 된다. 음악은 이 영화의 감정을 영화화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기제이면서도, 보통의 평이한 영화가 취할 수 있었던 보완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불운이지만, 뛰어난 감식안 때문에 오히려 대가가 되지 못하는 감독들이 있다. 결국 이들은 습관처럼 무언가의 힘을 끌어오면서 걸작의 창조에는 실패한다.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클린>이 그 점을 증명한다. 비교하자면 그는 프랑스의 빔 벤더스에 가깝다. <밀리언 달러 호텔>이 사실상 빔 벤더스의 영화가 아니라 보노의 영화에 가까웠듯, <클린>의 서정성은 감독 아사야스를 넘어서서 음악을 맡은 브라이언 이노가 기입해 넣은 정도가 더 큰 것이다. 끝내 이 영화에서의 감동은 녹음실에서 에밀리가 노래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터져나오는데, 만약 그녀가 잊혀진 퇴물 뮤지션이 아니었다면 <클린>은 매우 진부한 모성애 드라마로만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직업을 설정하고, 음악을 선곡하고, 그 자리를 찾아넣은 아사야스의 판단이 빛을 발한 것이겠지만, <클린>은 음악이 그 본래적인 위대함으로 영화의 정서를 구제해준 몇몇 예 중 하나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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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의 이야기는 물론 허구이지만, 이 이야기를 쓸 때 장만옥을 위한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나는 장만옥이 서양영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중국 여인 캐릭터가 아닌 다른 인물로 등장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다. 어떤 점에서 그녀는 중국인이라기보다는 서양인에 더 가깝다. 그래서 인종에 상관없이 연기할 수 있는 그런 캐릭터를 만들고자 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클린>의 여주인공으로 장만옥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 말대로라면 <클린>은 일면 순수하게 장만옥을 위한 것이며, 그녀는 영화의 모티브까지 제공한 셈이다. 사실 와전된 면이 없지는 않다. 칸에서 장만옥이 여우주연상을 받자 사람들은 그녀의 순수한 표정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믿어버렸다. 그러나 그녀를 돋보이게 한 것이 뮤지션이라는 배역 설정, 특히 전반적인 영화의 음악 사용과 맞물려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어쨌거나, 장만옥은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인생의 시름과 갱생의 노력, 또는 모성애의 원천을 능숙하게 표현해낸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상기된 모습으로 직접 노래를 부를 때는 어떤 초연함까지도 담아낸다. 어릴 적 영국에 살았고, 아사야스와 결혼한 뒤에는 파리와 홍콩으로 넘나들며 생활했던 그녀가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다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이 영화의 에밀리 역에 적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장만옥과의 관계는 <이마베프>에서 시작되었다. 그전에도 이미 장만옥은 홍콩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여배우였다. 성룡의 영화에서 얼굴을 알렸고, 온갖 장르의 홍콩영화들을 배회하다가 왕가위를 만나 자신의 이미지를 찾았고, 관금붕의 <완령옥>으로는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다. 아사야스와 장만옥의 로맨스는 그뒤 1996년 <이마베프>를 촬영하다가 이뤄졌으며, 1998년 둘은 결혼했다. 그러나 <클린>은 2002년 그들이 이혼한 뒤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장만옥이 서로에게 나눠 가진 마지막 선물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때때로 연인이었던, 부부였던 관계가 깨어지고 나서도 좋은 파트너로 작업을 하는 감독과 배우들이 있는데,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장만옥의 관계도 그런 면에서 보면 흥미롭다. 결국 장만옥은 2004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