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의 영화에서 감=감이 아니다. 그는 기표가 곧 기의와 일치하는 것에 몹시 불안증을 느낀다. 그가 보기에 이 세계는 합리적인 추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태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오! 수정>의 수정과 재훈이 똑같이 동의하는 “우리 어디 좋은 데 가요!”의 ‘좋은 데’는 서로 공통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의미이다. 또 <생활의 발견>에서의 똑같이 남겨진 기차시간 ‘15’분은 한 여자와 일말의 여지없이 헤어지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여자와의 며칠간의 만남이 시작될 단초일 수도 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제목은 ‘여자는 남자의 과거다’라는 이 영화의 내용을 배신하는 표현이다.
스토리 라인은 간단하다. 겨울 어느 날 미국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영화감독 지망생 헌준(김태우)과 서울 유명대학에서 미술 강사를 하고 있는 문호(유지태)가 만난다. 그들은 중국집에서 낮술을 마시다 갑자기 둘 모두의 옛사랑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선화(성현아)를 떠올린다. 헌준은 문호에게 선화를 만나러 갈 것을 제안하고, 그들은 부천에 살고 있는 그녀를 찾아간다. 선화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지만, 헌준과 문호와 선화는 안 좋은 기억만을 남긴 채 다시 헤어진다. 수더분한 외모와 다르게 걸핏하면 화를 내는 이기적인 성격의 헌준, 유순한 웃음과 다르게 비열한 성격의 문호,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는 선화, 이들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주인공들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강원도의 힘>에서 홍상수는 시간의 구조로 인간관계를 질문하기 위해 애썼다. 촘촘하게 재구성된 달력 속에서 인물들은(정확히 말해서 ‘모델’들은) 위악스런 제스처를 취하거나, 과장된 진술을 내뱉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변화는 <오! 수정>에서 시작됐다. <오! 수정>에서부터 인물들은 과잉되기 시작했다. 홍상수는 이제 믿고 싶은 것과 여전히 믿지 못할 것을 영화 속에 동시에 두고 자신이 무엇에 더 끌리는지 궁금해한다. <오! 수정>에서 수정의 행동이 ‘의도’인지 ‘우연’인지 추측해보고, <생활의 발견>의 경수가 인덕이 많은 사람인지 산천을 떠돌 스님의 팔자인지 미완적으로 결론지어보기도 한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선화가 헌준과 문호에게 다른 모습의 여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런 점과 연관되어 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홍상수의 영화가 전면적인 단절을 통해서가 아니라, 몇개의 본질적인 단위들을 환기시키는 방식으로 가지치기하면서 한편씩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단적으로 알레고리를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던 전작 두편에 비해 <오! 수정>에는 시간의 구조에 덧입혀진 알레고리가 등장한다. 그 점은 <생활의 발견>에서도 이어진다. 하지만 그것을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찍어놓은 몇몇 장면들을 편집과정에서 ‘일부러’ 빼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홍상수는 촬영 중에 어떤 우연이 끼어들어 그것이 그 장면을 더욱 불가해하게 만들면 선택하지만, 무언가 일치된 의미로 공고화되면 주저없이 제외하는 듯하다. 홍상수의 영화는 그 전작들의 어느 요소와 중첩되면서, 또 빠져나가면서, 새것을 찾아간다.
그 점에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오프닝 크레딧이 왜 주황색 바탕 위에 새겨져야 하는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이 영화는 심심할 수밖에 없다. <생활의 발견>에서 성우가 입었던, 어느새 경수의 몸에 걸쳐진, 경주의 술집 바깥에 걸린 간판들과 한몸을 이뤘던, 그 모방전이의 색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자주 등장하는 패닝 기법 역시 <생활의 발견>과 관련있는 부분이 있다. 한편으론, 두 인물이 마주하여 나누는 대화를 눈여겨보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무의식적 모방은 <생활의 발견>에서처럼 작품 전체의 분기점을 틀어쥐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로 상대방이 방금 한 낱말 안에서 또 다른 사람의 언어가 형성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그 둘의 대화가 중언부언, 중구난방으로 들리는 것은 그 즉자적인 낱말의 모방에서 생겨나는 느낌 때문이다. <생활의 발견>의 모방, 흉내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넘어와 인물들의 대화를 공허로 만들어버린다.
여기에 전작들과의 가장 큰 차별점이자 비평적 함정이 들어선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솔직한 플래시백으로 만들어진 홍상수의 첫 번째 영화이다. 헌준과 문호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하여, 각자의 플래시백이 끝나고, 선화 집에서의 에피소드를 지나면, 헌준과 선화는 갑자기 이별한다. 즉, 사라진다. 영화의 결말은 문호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홍상수는 지금까지 전작들에서 지켜오던 기본적인 구성의 합의점을 완전히 깨버렸다. 그 순간 관객은 홍상수의 형식이 무너졌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다른 세계의 요소로 이동해보려는 시도이다. 홍상수는 ‘시제’를 문제삼는다. 그리고 여자=선화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이것이 이상한 결말부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라면 힌트다. 홍상수는 진부해진 것이 아니라, 또 한번 질문하고 있다.
홍상수 영화의 가이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대한 다섯 가지 질문
-왜 유지태(문호)의 아내 역으로 예정되었던 김호정은 영화 속에서 빠진 것일까?
애초 김호정은 촬영까지 참여했다. 들려오기로는 이 영화의 결말부에 등장하기로 되어 있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최종편집본에서 첫 장면 대문 앞 스피커폰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제하고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슨 이유일까?
-왜 오즈와 브레송이 떠오르는 걸까?
홍상수는 결코 인용 범벅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다. 오히려 혐오하는 편인 듯하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오프닝 크레딧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오프닝의 결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덧붙여, 왜 선화의 집에는 커다란 검은 개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 검은 개를 따라 한밤에 이루어진 두방 사이의 섹스를 연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장면은 브레송이 만든 <돈>의 후반부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검둥개를 따라 카메라는 방과 방 사이를 패닝한다. 말하자면, 살인 대신 섹스로 모든 관계를 파괴한다. 왜일까?
-왜 선화의 이빨은 깨져 있는 걸까?
술에 취해 서로 잡담을 나누던 헌준, 문호는 선화의 이빨이 깨져 있다며 깔깔대고 웃는다. 선화가 말하려는 순간, 옆집 친구가 개를 데리고 들어오면서 이유는 증발한다. <생활의 발견>에서 경수는 성우에게 목에 난 그 상처는 무엇이냐고 묻는다. 짐작할 뿐, 영화 속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김상경은 DVD 코멘터리에서 그 상처를 내는 장면이 촬영되었다고 말해준다. 홍상수는 찍어놓고, 빼고, 다시 묻는다. 왜 그럴까?
-왜 홍상수는 겨울과 여름을 오가는 것일까?
홍상수는 주로 겨울 아니면 여름을 영화의 배경으로 삼는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현재의 시간은 겨울이고, 플래시백은 여름이다. 왜 현재는 겨울이고, 과거는 여름일까?
-왜 배우 오달수는 떡장수 목소리로 특별출연한 걸까?
가장 단순한 해답이 있을 수 있다. ‘오달수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작업장에 놀러왔고, 그의 목청을 유심히 들은 홍상수가 배우들에게 언제나 그렇게 하듯이 한번 시켜본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들어 썼다’고. 그런데, 이 영화에서 짐을 메고 가는 공사판 인부와 떡장수를 영화의 두 주인공 남자는 유심히 쳐다본다. 그리고 또 하나. 홍상수는 (여)배우의 목소리를 본질적으로 중시하는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