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부조화스러운 커플의 어둡고 격렬한 연애담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인종과 계급 등 민감한 사회문제를 건드리고 간다. 자신의 근본과 결별한 채 살았던 남자, 가정을 잃은 상처로 피폐해진 여자가 신분과 나이 차이를 넘어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육체를 통해서였고, 깊고 은밀한 상처를 내보이고 또 보듬으면서였다. 고해를 통해, 인생의 ‘오점’을 인정함으로써, 그들은 진정한 안식과 자유를 얻은 셈이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마음의 고향> <노스바스의 추억> 등을 연출한 노장 로버트 벤튼의 신작. 미국 고전영화의 스타일을 고수해온 그의 화술은 이번엔 안타깝게도 낡고 안이해져 있다. 개인사를 소개하는 길고 무거운 플래시백은 극적인 재미를 반감시키고, 내레이터의 잦은 개입은 액자 속 인물들에 빠져들기 어렵게 만든다. 또 다른 문제는 스타 이미지가 너무 ‘강한’ 배우들을 불러모았다는 것. 아무래도 앤서니 홉킨스가 흑인 가계의 돌연변이 백인 교수로, 니콜 키드먼이 “허리가 휘게 일해야 하는” 노동계급 여성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존재만으로 영화에 ‘1품격’을 보태는 그들이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하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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