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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죄의식, 아버지의 이름으로 신의 법정에 오르다, <사마리아>

원조교제를 하는 딸과 그녀의 아버지의 이야기. 아버지는 어떻게 세상의 죄를 씻어낼 수 있을 것인가?

여기 한 아버지가 있다. 원조교제 하는 딸을 목격한 아버지가. 당장 달려가 딸의 머리채를 잡아채야겠지만 이 남자는 그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딸과 함께 여관에서 나온 남자를 미행한다. 딸의 뒤를 밟고 딸과 만나기로 약속한 사내들에게 겁을 주며 뺨을 때린다. 아버지는 딸을 구할 수 있을까? 다른 영화라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김기덕 영화다. 이런 질문으론 답을 구할 수 없다. 언제나처럼 김기덕 영화에는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가 있다. 분노가 들끓지만 그 대상이 자신임이 드러난다.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과연 딸에게 욕정을 느끼는 아버지들은 어떻게 속죄할 것인가?

김기덕은 이번에도 죄의식과 싸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떨쳐버릴 수 없는 죄의식. <사마리아>에서 10대 소녀들이 벌이는 위험한 불장난은 신이 인간에게 던진 숙제다. 세상의 딸들은 너무 매혹적인 자태로 그들의 아버지를 시험에 들게 만든다. 3부로 나뉜 이 영화의 제1장 <바수밀다>에서 재영은 매춘을 통해 불교를 전파했다는 인도의 창녀 바수밀다 얘기를 하며 원조교제를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바로 재영의 표정이다. 그녀는 늘 웃고 있다. 아주 해맑은 표정으로 웃는 그 모습은 부처의 미소를 닮았다. 몸을 파는 여자라면 의당 연상되는 삶의 그늘이 전혀 없는 것이다. 몸을 팔면서 어떤 죄의식도, 괴로움도 없는 그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포르노에서나 가능할 법한 그 미소는 즉각 페미니즘의 표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김기덕 영화에서 남성적 판타지가 사건의 발단이 되는 건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그는 전보다 노골적이고 대담하게 판타지의 극단을 제시한다. 그녀가 몸을 주면 남자들은 행복감에 취한다. 제2부 <사마리아>에서 재영의 친구 여진은 죽은 재영이 만나던 남자들을 찾아다닌다.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내밀라는 성인의 말씀처럼 그들을 만나 몸을 주고 재영이 받았던 돈까지 돌려준다. 여기까지는 ‘매춘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전언처럼 보인다. 물론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단적으로 <사마리아>는 원조교제를 하는 딸과 그 아버지의 이야기다. 제3장 <소나타>에서 아버지는 딸이 원조교제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이런 경우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은 딸을 격리하고 딸의 몸을 취한 자들을 법의 심판대로 끌고가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김기덕은 그러지 않는다. 그는 법과 제도가 세상의 딸들을 보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자신 법의 집행자인 형사라는 신분을 갖고 있지만 아버지는 범죄자들을 체포하는 대신 개인적인 복수를 감행한다. 아버지의 분노와 죄의식은 법으로 털어낼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마리아>는 태생적인 선인과 악인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 서로 오해없이 잘 살아야 한다. 서로 상처주지 말고”, “죽을 때까지 널 위해 기도할게” 같은 우스꽝스런 대사가 가슴을 찌르는 것은 원조교제를 하는 나쁜 남자들도 무언가에 굶주린 짐승일 뿐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위선의 껍데기에 감춰진 그 허기는 상상으로 간음한 죄까지 파고든다. 문제는 10대 소녀들에게 정욕을 느끼는 아버지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자기 딸 대신 남의 딸을 취하거나 상상만 할 뿐이라고 해도 사태는 달라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잠든 딸의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은 아버지 또한 남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사마리아>의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아비들이 저지른 죄악을 대신하는 존재가 된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처럼 아버지는 고난의 가시밭길을 향한 한 걸음을 내딛는다. 이쯤되면 전반부의 남성적 판타지가 뜻하는 바도 명확해진다. 김기덕은 무의식에 뿌리박힌 남성적 욕망까지 끄집어내 신의 법정에 들고간다.

아마 <사마리아>는 김기덕의 변화를 말하기에도, 김기덕의 동어반복을 얘기하기에도 좋은 소재일 것이다. 매춘을 하는 여인과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라는 점에서는 <나쁜 남자>, 여인의 부정을 목격한 남자가 살인을 한다는 점에서는 <섬>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매춘을 대신하는 걸로 우정을 나누는 여자들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파란 대문>을 떠올릴 수 있다(저예산영화에 걸맞은(?) 기술적 미숙함도 여전하다). 반대로 김기덕 영화로는 처음 아버지의 시점이 전면에 등장한 점, 섹스신이 없다는 점, 10대 소녀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 등은 달라진 요소일 것이다. 김기덕 영화다운 논쟁거리는 변함없이 풍부하다.

<사마리아>에는 목각 성모상에서 새싹이 돋았다는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등교하는 딸에게 들려주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기독교적인 기적과 성자에 관한 일화다. 어떻게 기적이 일어나고 어떤 사람이 성자가 되는가? 딸이 매춘하는 광경을 목격한 아버지가 고뇌와 번민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엔 아무도 기적을 믿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고통의 덩어리가 아버지와 딸이 탄 쏘나타 자동차의 바퀴에 끼어 있다. 죄의 무게를 버리지 않는 한 차는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가지 못한다. 아버지가 말한다. “자, 이제부턴 여기 혼자 가는 거야. 아빤 안 따라가.” <사마리아>의 마지막 장면은 죽은 나무에서 새싹이 돋는 기적같다.

:: <사마리아> 제작과정

싸게! 빠르게! 명확하게!

<사마리아>는 11회 촬영으로 완성한 장편영화다. 10월1일 제작부장이 첫 출근을 해서 10월5일에 프리프로덕션팀을 구성했고 10월27일 크랭크인해서 11월10일 촬영이 종료됐다. 애초 계획했던 15회 촬영에서 4일을 단축한 것이다. 촬영일정만으로 보면 남기남 감독의 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놀라운 스피드다. 물론 김기덕 감독은 <사마리아>보다 빨리 영화를 마무리한 적도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실제상황>은 단 200분간 촬영해 완성한 장편영화였다. 심지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처럼 사계를 담는 영화를 찍을 때도 그는 기다려서 천천히 찍는 법이 없었다. 그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영화를 찍는 것은 저예산으로 작업한다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자신의 스타일로 정착된 탓이다. 김기덕 영화는 대체로 한 장소를 무대로 삼는다. 장소가 여러 곳인 경우도 주무대는 비교적 제한적이고 촬영여건이 여의치 않을 경우 게릴라식 촬영도 서슴지 않는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찍을 때는 경찰관이 촬영을 중지시키려는 도중에 거리 촬영을 마친 적도 있다. 그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보이는 태도도 속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는 배우들에게 내면 깊은 곳의 모호한 어떤 것을 끄집어내기보다 직설적인 연기를 요구한다. 김기덕 감독과 작업한 배우들은 이런 면을 많이 아쉬워하지만 그는 어떤 장면의 이중적인 뉘앙스를 연기보다 미술, 촬영, 소품 등에서 많이 끌어내는 편이다. 그는 부지런한 감독이기도 하다. 대부분 촬영장소도 촬영이 없을 때 직접 돌아다니며 골라둔 곳이다. <사마리아>에서 아버지와 딸이 찾는 시골집은 강원도 홍천에 있는 김기덕 감독의 작업실이며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백사장도 김기덕 감독이 찾아낸 팔봉산 근처 한적한 강가다. <파란 대문>과 <나쁜 남자>에서 같은 로케이션 장소가 나오는 것처럼 반복되는 요소가 많다는 것도 돈과 시간을 절약하는 데 한몫한다. <사마리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썼던 나룻배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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