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전문가 스투(콜린 파렐)는 날마다 공중전화로 팸(케이티 홈즈)을 유혹한다. 아내가 휴대폰 통화 내역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팸과의 통화를 마친 스투는 공중전화 벨이 울리자 무심코 전화기를 집어든다. 수화기 저편의 낯선 남자는 자신이 스투를 지켜보고 있으며, 만약 전화를 끊으면 그를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말한다.
■ Review시나리오 작가 래리 코언은 공중전화 부스 안에 갇힌 남자의 이야기를 20년 전부터 쓰고 싶어했다. 투명하지만,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진 알 수 없는 공간. 감독 조엘 슈마허는 전화부스를 “근본적인 함정”이라고 부르면서 기꺼이 이 프로젝트를 받아들였다. 20년이 지나는 사이, 맨해튼의 공중전화들은 그 용도를 잃고 부서져갔고, 허공을 가득 채운 전파는 각자의 사생활을 떠들어대고 있었다. <폰부스>는 짜증과 폭력과 관음증이 뒤덮은 현대의 대도시에 걸맞은 영화다. 누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지, 왜 이렇게 당해야만 하는지, 뉴욕에선 물어도 소용없다.
슈마허는 93년작 <폴링 다운>처럼 화가 끓어오르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그로선 보기 드문 실험을 시도했다. 영화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시간과 러닝타임이 일치하고, 한꺼번에 돌아간 네대의 카메라는 때로 화면을 네 등분하면서 좁은 공간을 동시에 비춘다. 촬영기간은 고작 열흘. 탁 트인 LA 거리에 고층빌딩이 들어찬 뉴욕의 그림자를 만들어낸 솜씨 역시 놀랄 만하다.
그러나 가장 야심에 찬 실험은 무엇보다도 영화 <폰부스> 그 자체다. 슈마허는 치밀하게 도청을 진행해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을 짠 다음 스투를 덮친 정체불명 살인자를 오직 목소리로만 드러낸다. 전화기를 통해 쉴새없이 쏟아져나오는 그의 증오는 관객의 귀청까지 어지럽힐 정도다. 스투를 둘러싼 방송사 카메라와 얼굴 맞댄 만남보다도 잦은 전화통화, 어떻게든 터뜨려야 하는 분노는 누구나 접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스투가 공중전화 주변 가게 모니터들에서 공포로 질린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장면은 신랄하면서도 매우 사실적이다. 먹고살기 위해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징벌한다는 시대착오만 제외한다면, <폰부스>는 20년 된 아이디어답지 않은 감각으로 살아남았다.
<폰부스>의 원래 개봉날짜는 2002년 11월. 한달 전 워싱턴 D.C.에서 일어난 무차별 연쇄저격사건과 닮았다는 이유로 개봉을 미뤘지만, 개봉한 4월 첫번째 주에 1500만 달러를 벌어 제작비 1천만 달러를 곧바로 회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