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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그 익숙하고 다채로운 적 <블루>
2003-01-27

■ Story

해군 소속 특수 잠수부대 SSU의 김준(신현준)과 이태현(김영호) 대위는 어렸을 적부터의 친구이자 부대 내 최고를 다투는 실력자들이다. 훈련 동기 출신으로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강수진 소령(신은경)이 교관으로 부임한다. 오랜 우정과 엇갈린 사랑, 업무 수행을 둘러싸고 세 사람 사이에 난기류가 흐른다. 해군 합동훈련 도중 지휘관의 무리한 욕심 때문에 잠수함 한대가 깊은 바다에 가라앉는 사고가 발생하자, SSU 부대가 인양 업무를 맡게 된다. 그러나 강수진이 포함된 구조반도 잇따라 조난당하고, 이들을 구하기 위해 포화 잠수를 시도한 김준과 이태현 역시 줄이 엉키는 바람에 누군가 한명의 생명줄을 끊어야 하는 상황에 빠진다.

■ Review

지난해 충무로를 위기에 몰아넣었던 블록버스터의 재앙이 드디어 끝나는가. <블루>는 한국에서 만드는 블록버스터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철저하게 연구한 모범 답안이다. 모범 답안을 보면 늘 상식으로 되돌아간다. 외지에서 개발된 문화상품을 다른 환경에 이식하려면, 상품 자체의 특성과 토양에 대한 연구 그리고 노련한 정원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블록버스터는 기본적으로 스펙터클영화이고 스펙터클의 기본은 규모와 이색성이다. 심해 잠수부대라는 이색적인 소재를 다룬 <블루>는 마치 해군 전체를 스탭으로 활용한 듯이 화려한 규모와 사실감을 자랑한다. 바다라는 넓고 낯선 공간을 다루는 촬영 테크놀로지와 컴퓨터그래픽도 손발을 잘 맞추었다. 전체 분량의 30%를 차지하는 수중장면 촬영에 모션 무버와 모션 컨트롤 카메라 등 첨단 장비와 기술이 동원되었고, 드라이 포 웨트(dry for wet, 스모그와 조명으로 바닷속을 표현하는 기법)에서 한발 더 나아가 600m에 달하는 디지털 세트(full digital set)를 만들었다고 한다. 시행착오가 있었을 테지만 완성된 화면은 결과적으로 기계와 기술, 주요 스탭의 공조 체제가 탄탄했음을 증언한다.

<블루>를 성공적인 블록버스터로 이끈 또 하나의 요인은 드라마와 캐릭터라는 영화의 기본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새로운 소재를 다루려는 영화나 TV드라마는 흔히 주최쪽 스스로가 도취해서 새로움 자체를 생경하게 과시한다거나 반대로 한바탕의 멋진 설정으로 끝내고 마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블루>는 새로움과 드라마, 인물들이 착 붙어서 달린다. 이것은 시나리오를 오래도록 열심히 썼다는 뜻이다. 해군당국과 SSU 부대가 제공했을 기초 정보와 일상적인 면모도 영화의 생생함에 한몫 한다.

말이 난 김에 덧붙이자면 영화 <블루>와 해군은 서로 득을 봤다. 해군당국은 사전에 시나리오를 검토했음이 분명한데도 군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둥 트집을 잡지 않고 전폭적으로 지원해버렸다. 내용상 약간의 수모를 감수하는 대신, 군부대 중 가장 화려한 해군의 면모와 각종 장비, 업무 특성 등을 종횡으로 보여줌으로써 해군 자체의 매력을 홍보하는 더 큰 이익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의 줄기는 우정과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테마다. 두 남성간의 우정에 한명의 여성이 끼어들어 관계의 위기를 초래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장엄한 우정으로 승화시킨다는 전형적인 남성영화다. 거기에 잠수함영화 혹은 군대영화의 전통적인 요소들이 버무려져 있다.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는 남성들의 거칠지만 속깊은 우정과 갈등, 명예욕이나 출세욕에 사로잡혀 무리한 작전을 감행하는 상사, 군대식 명령체계에서 정의와 항명의 문제, 그리고 안전 해수면 이하로 잠수하기, 새는 물, 제대로 열리지 않는 해치, 꺼진 엔진, 두절된 무선 연락도 빠지지 않는다. 상업영화에서 관객이 용서하지 않는 것은 어디서 본 듯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제대로 버무리지 못했을 때이다. 그런 면에서 <블루>는 면죄부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 드라마의 줄기는 우정과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테마다. 두 남성간의 우정에 한 여성이 끼어들어 위기를 초래하지만 결국 더 장엄한 우정으로 승화된다는 전형적인 남성영화다.♣ 여러 조연배우들은 선악이 비교적 명확하지만 악인을 희화하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수의 캐릭터들을 비교적 생생하게 건져올렸다.

캐릭터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성공적이다. 가장 입체적인 인물은 주인공인 김준인데, 그는 희한하게도 작금의 한국 상업영화 시장에서 가장 애호되는 코믹 캐릭터에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을 조합해냈다. 신현준의 연기 스펙트럼이 자못 볼 만하다. 김준과 대립각을 이루는 이태현은 흐트러짐 없는 이성의 소유자로 살리에리 콤플렉스에 시달리지만 마침내 2인자다운 영웅적 최후를 맞이한다. 엘리트 장교인 강수진은 언뜻 보기에 드라마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결국에는 남성을 위한 멜로 주인공의 위치로 내려앉는 역할이긴 하지만, 여성 관객을 그다지 기분 나쁘게 만들지 않을 수준의 책임감 있는 위치를 고수한다. 그 외의 조연급들은 선악이 비교적 명확하지만 악인을 어처구니 없는 존재로 희화화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수의 캐릭터들을 비교적 생생하게 건져올렸다.

이 영화가 의표를 찌른 점이 있다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피해갔다는 것이다. 초반에 미사일 하나가 미군 비밀 기지 근처에 떨어졌다는 설정이 나왔을 때만 해도 저것이 갈등의 중심축이겠거니 했으나, 이내 사소한 에피소드로 마무리된다. 이 영화의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갈등 혹은 적은 미국이나 일본, 북한, 소련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욕망이다. 그럼으로써 굵직한 하나의 스토리는 없어도, 이 익숙하고 다채로운 ‘적’으로부터 파생되는 자연스럽고 다양한 갈등 요소를 갖게 되었다.

<블루>는 <부활의 노래> <두 여자 이야기> <채널 69> <편지> <산책> 등으로 지그재그 행보를 보여왔던 이정국 감독이 기분 좋은 깜짝쇼를 벌인 작품으로 기록될 만하다.김소희/ 영화평론가 cafe.daum.net/cw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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