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슬림(제니퍼 로페즈)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미치(빌리 켐벨)를 만나 결혼에 성공한다. 슬림은 모든 걸 손에 넣은 듯하다. 경제적 능력도 뛰어나고 다정다감한 미치와 귀여운 딸 그레이시, 그리고 우아한 저택까지. 그러던 어느 날 미치의 휴대폰에 있는 저장번호 33번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공포스런 나날이 시작된다. 슬림은 어린 딸과 함께 폭력과 모욕, 외도를 일삼는 미치로부터 탈출하지만 그의 추적은 집요하고 위험하다.■ Review
3쌍 가운데 1쌍이 이혼하는 시대다. 여성(의 욕구)은 변했는데, 남성(의 가부장주의)은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고수하려는 게 문제라는 ‘배경설명’이 따라온다. 이런 현실을 영화와 드라마가 부지런히 좇아간다. 두 차례 이혼하고 어린 자녀를 데리고 사는 젊은 아줌마는 절대로 기죽지 않고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며(MBC 주말극 <맹가네 전성시대>), “불륜은 없다”고 외치는 여성감독의 신념은 ‘불륜’을 통해 비로소 세상에 홀로 서서 미소짓는 여인을 그려낸다(변영주 감독의 <밀애>).
따지고보면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외침은 결혼을 ‘적과의 동침’으로 묘사한 할리우드에 비하면 소박해 보인다. <이너프>에 이르면 아예 전쟁 수준이다. 생존 아니면 죽음이다. 슬림(제니퍼 로페즈)의 단단한 몸은 이스라엘 격투술이라는 ‘크라브 마가’를 통해 더욱 탄력을 받는다.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몰리던 그가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전술을 택하면서 상황은 급전된다. <적과의 동침>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남편의 학대를 피해 도망가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최종 해결사로 나선 건 새 연인과 우연이었다. 그러나 여기선 자기 자신의 몸과 치밀한 계획으로 상황을 종료시킨다. 설정만 보면 상당히 업그레이드된 ‘적과의 동침’이다.
아전인수격 시각이긴 할 테지만, 제니퍼 로페즈가 갖고 있는 라틴풍의 이국적 외모는 남부러울 게 없는 백인 중산층의 풍모를 보여주는 남편 미치와 대비된다. 묘하게도, 미치가 증오하게 된 아내의 양부는 아랍인이다. 또 미치는 다급할 정도로 슬림에게 아기 낳기를 바라고 제 핏줄에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보이는데, 슬림의 바람둥이 생부는 다급히 도움을 청하러온 딸에게 “너처럼 돈이나 챙겨가려고 갑자기 나타난 자식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아주 매몰차게 대한다. 그러나 멋진 아버지로 돌변하는 건 미치가 아니라 슬림의 생부다. <다크 엔젤>을 썼던 니콜라스 카잔의 시나리오가 를 만들었던 마이클 앱티드 감독과 만났다. 문제는 리얼리티다. 남편과 아내의 혈투가 평범한 액션스릴러로 다가온다면, 그 이유를 달리 설명할 도리는 없어 보인다. 이성욱/ <한겨레21> 기자 lewo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