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이제 막 경찰학교를 졸업한 신참 슈라더는 밍크 반장에게 꼬투리를 잡혀 억지로 강력계에 들어가게 된다. 린이라는 여자의 죽음을 계기로 연쇄적인 살인 사건들의 전모가 드러나고, 슈라더와 밍크 반장은 문신이 새겨진 인체를 사고 파는 암거래망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살인용의자로 지목되던 군첼의 죽음과, 딸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을 이기지 못한 밍크 반장의 자살. 슈라더는 진범을 잡기 위해 마지막 생존자 마야를 미끼로 작전을 펼치지만, 동료는 죽고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 Review
썰렁하게 혼자 웃긴 했지만 첫 장면은 그래도 웃긴다. 인육이 뜯겨져 나간 채 피를 흘리며 거리를 헤매던 나체의 여인은 질주해오던 트럭에 받히면서 불에 타 죽는다. 이렇게 잔인한 장면이 웃음을 유발하다니. 보는 사람의 정신상태에 이상이 있는 것일까? 때때로 잔인함은 폭소를 반응양식으로 비틀어 만들어내도록 작동할 때가 있다. 이럴 경우, 그 잔혹함이 건드린 무엇인가의 증후적 반응일 때도 있지만, 이 영화의 첫 씬이 웃긴 것은 이미지를 '한 방에' 디스플레이하고자 하는 감독의 강박적 욕구가 얼핏 도를 넘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너희들 이래도 안 무서워?'
대답. 물론, 무섭기도 하다. 텔레비전 스릴러물을 만들기도 했던 로베르토 슈벤트케는 하드고어적인 이미지들로 화면을 채우며 음산함을 피워 낸다. 푸르스름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는 이미지들은 냉혈한 살인의 세계를 이루는 대기가 되고, 그 안에 나뒹구는 인체들의 인육과 피는 눈을 찌르기에 충분하다. 어스름한 달빛이 스며드는 생물실을 상상하는 공포가 <타투>에는 있다. 소재의 측면에서 얼른 <양들의 침묵>을 떠올리게 하지만, <타투>는 그런 깔끔한 내러티브를 축으로 하는 헐리우드 스릴러 영화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타투>는 모든 구체성을 상실하는 모험을 감행하면서 그 뒤에 남는 잔여적인 모호함들을 잡으려고 한다. 이 과정에는 부작용도 역시 있다. 인물들의 성격창조는 굳어져 있고, 모티프들은 느슨하게 연결되어 결락되어 있다. 그런데도 인물들은 지칠 줄 모르고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고, 굳이 소개되지 않아도 상관없어 보이는 대사들이 내러티브를 파먹는다. 영화 전체가 단단하게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각 씬에서 표현 수위가 생동하는데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것들이 엮어진 전체는 약화되는 결말에 이르기 때문일 것이다.
밤과 낮의 구분이 아닌 푸른 기조와 붉은 반점의 충돌로, 즉 빛이 아닌 색으로 영화를 구성해내고자 하는 <타투>는 헐리우드 스릴러 영화들이 갖는 일반적인 차원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하는 의지를 표명한다.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과장된 하드고어적 이미지들 역시, 그 깔끔한 뇌의 충격들을 뒤집어 놓기 위한 구토의 전략일 수 있다. 문제는 그 의도들이 구성의 제자리에 박혔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투>는 공포와 범죄의 근원성을 끌어내는 것에 언제나 탁월한 예능을 보여왔던 독일 영화의 역사에 일면 기대어 있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헐리우드의 장르적 요소들이 전혀 다른 물적 토대의 장에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정사헌/ 영화평론가 taogi@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