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명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그녀의 취미생활>은 폐쇄적인 고향 마을의 집단적 폭력으로 고통받던 정인이 자신과 다른 듯 닮은 외지인 혜정을 만나 복수를 감행하는 과정을 그린다. 여성 버디 무비이자 스릴러 복수극으로서 장르적 관습을 벗어나려 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학대 장면을 최대한 배제하려 한다는 점에서 폭력의 이미지가 안기는 손쉬운 충격보다는 피해자의 황폐화된 내면과 그로 인한 변화에 보다 중점을 두는 듯한 인상이다. 미술, 음악, 조명 등 제각각의 요소들이 빚어내는 무드가 흥미로우나 이따금씩 느린 호흡 속의 투박한 장면 연결, 대부분의 캐릭터 활용이 단선적이란 점에선 아쉬움을 남긴다.
<기생충>의 ‘피자집 사장’으로 얼굴을 알린 정이서가 무기력한 피해자에서 대담한 복수자로 변모하는 정인 역을 맡아 핏기 없는 맨얼굴과 스크린 너머를 응시하는 텅 빈 눈빛으로 불안과 긴장을 표현해낸다. 조력자 혜정을 연기한 김혜나는 등장마다 묘한 이질감에서 비롯된 은근한 활기를 극에 부여한다.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부문에서 상영되었으며 배우상(정이서) 등을 수상했다. 서미애 작가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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