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새만금 갯벌을 촬영하려다 불의의 사고로 카메라를 놓았던 황윤 감독. 그에게 새만금은 아픈 기억이 서린 곳이다. 그랬던 황윤 감독은 2014년 다시 전북 군산으로 이사 온다. 그리고 20년간 갯벌의 철새들을 촬영해온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을 만나게 된다. 군무를 추는 저어새. 단란한 검은머리갈매기 가족. 황윤 감독은 새만금의 모습을 담기 위해 다시 카메라를 든다. 7년에 걸친 부지런한 기록의 결실이 영화 <수라>다.
‘비단에 놓인 수’를 뜻하는 ‘수라’. 수라마을은 한때 넘쳐나는 생명들로 풍만한 아름다움을 내뿜던 곳이었지만 30여년간 이어져온 간척사업으로 조개, 게 등 많은 생명이 사라지며 지금은 척박한 땅이 됐다. 그러나 오동필 단장은 이곳에 여전히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고, 언젠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갯벌’이라 불러줘야 한다고 말한다. 오동필 단장의 아들 오승준씨는 수라갯벌에 멸종위기종인 쇠검은머리쑥새가 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새의 노랫소리를 녹음하러 간다. 그의 옆에는 황윤 감독이 있다. 이들은 쑥새 울음소리를 담을 수 있을까. 황윤 감독은 황홀하다는 저어새의 군무를 볼 수 있을까.
동물원에 갇힌 새끼 호랑이의 아픔을 담은 <작별>(2001)부터 식탁에 오른 돈가스를 시작으로 음식과 생명의 윤리를 생각하는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까지. 끈기 있고 미더운 태도로 환경 다큐멘터리를 연출해온 황윤 감독의 신작이다. 어차피 매립될 곳, 어차피 죽을 생명들을 왜 보호하느냐는 물음에 한 활동가는 “현장에 한번 와보라”고 답한다. <수라>는 그 요청에 응답하는 영화다. 말라죽은 조개와 끝나버린 어민의 삶. 어미에게 사냥을 배우는 새끼 새와 아버지의 활동을 따라 하는 소년. 영화는 이곳의 생명과 인간을 연결 지으며 하나로 수렴하는 거대한 생태계를 보여준다. 도요새의 시점에서 본 갯벌의 모습과 ‘아름다움을 목격한 사람의 책임감 혹은 죄’에 대한 언급까지. ‘본다’는 행위에 방점을 두고 유려하게 이어지는 장면간의 호흡이 인상적이다. 2022년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