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마와 루이스>에서 <스내치>까지
할리우드의 연인에서 연기자로 변모해가는 배우 브래드 피트
1999년 11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할리우드 파워맨 100인 리스트에서 오랜 단골 브래드 피트를 떨궈냈다. 96년부터 내리 3년간 온갖 장르와 캐릭터를 갈지자로 오가며 부진한 성적을 보인 브래드 피트는 케빈 코스트너와 더불어 졸지에 ‘지는 별’이 돼버렸다. 결정적으로 당시 개봉작 <파이트 클럽>의 흥행 성적이 저조해, 배급사인 폭스를 실망시킨 탓이 컸다. 그러나 당사자인 브래드 피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할리우드가 그의 남은 상품가치를 측량하며 배우로서의 생명력을 의심하고 있을 때, 그는 유유히 영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의 감독 가이 리치의 새 작품에 배역을 따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흥정하지 않았다. 배역의 비중도, 성격도, 개런티도 논외였다. 무조건 출연하기만 하면 됐다.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이 부서지는 데서 쾌감을 느끼기라도 하듯이, 스타덤의 디딤돌이 된 달콤한 연인의 이미지를 조롱하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그는 <스내치>에서 또 한번 ‘파이터’ 연기를 선보인다. “때려. 있는 힘껏 날 치라구. 다 잃어봐야 진정한 자유를 알게 돼.” 이즈음의 브래드 피트는 <파이트 클럽>의 이 대사를, 아예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은 것처럼 보인다.
“2천만달러짜리 배우이자 기막힌 미남인 브래드 피트를 망가뜨린다고 생각하자 신바람이 났다”는 가이 리치의 말이 불길하다 싶더니, <스내치>의 브래드 피트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무참하게 망가지고 있다. 그가 연기한 문신투성이 아일랜드 집시 복서 ‘원 펀치’ 미키는 사회화된 문명인이라기보다는 생존 본능에 기댄 거친 야생동물에 가깝다. 등장부터가 충격적이다. 도시 양아치들이 집시 캠프를 찾아갔을 때, 그는 차 뒤에서 일을 보다가 엉거주춤 일어나,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눈을 빛내며 비칠비칠 걸어나온다. 가을 들판을 가로질러 말을 달리며 물결치는 금빛 머리칼로 여성 관객을 도발하던 나르시스의 흔적(<가을의 전설>)은 온데간데 없다. 더구나 그는 알아듣기 힘든 촌스런 사투리, 어처구니없는 무데뽀식 협상논리, 그리고 살인적인 주먹으로, 도시 양아치들의 이성을 교란한다. 갈수록 가관인 것이, 피와 땀과 침으로 뒤범벅돼 일그러지고 무너지는 링 위의 모습은,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브래드 피트의 얼굴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10여명의 양아치 중에서 가장 덜 떨어져 보이던 그의 캐릭터가 다른 모두를 가지고 놀았다는 반전의 플롯처럼, 깨지고 부서지고 망가지는 브래드 피트의 모습이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카리스마와 눈부신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내치>의 진정한 승자는 가이 리치 감독이 아니라, ‘성격파 조연’ 브래드 피트다.
카우보이 J. D, 그만의 전설을 만들기까지
브래드 피트는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한때 그는 미국적인, 대단히 미국적인 청춘스타였다. 금발머리에 푸른 눈, 싱그러운 미소, 가늘고 단단한 체격의 그는 ‘헝크’(hunk, 섹시한 남자)의 기준을 다시 세웠다. 물론 처음부터 조금 수상한 구석이 있긴 했다. 뭔지 모를 우울하고 불안하고 음험한 그늘은, 그가 그저 ‘남자 바비인형’에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아메리칸 드림의 ‘빛’을 상징하는 톰 크루즈의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캐릭터들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할리우드는 그에게 깃든 반항아 제임스 딘의 그림자에 흥분했다.
91년 <델마와 루이스>의 가출 아줌마 지나 데이비스에게 첫 오르가슴을 선사한 대가로 도피 자금을 훔쳐 달아나는 건달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을 때, 그의 극중 이름은 J. D(제임스 딘의 약칭)였다. 청바지에 카우보이 모자, 흙먼지를 뒤집어쓴 서부 양아치의 뒷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던 건 지나 데이비스뿐이 아니었다. 그가 출연한 14분의 여운은 길고도 강렬했다. 이어 로버트 레드퍼드의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브래드 피트는 다시 한번 ‘미국적인’ 캐릭터를 체현해낸다. 완벽한 삶을 가장하지만 내면의 공황을 견디지 못해 자폭하는 청춘은, 이번엔 어딘지 ‘겉은 그럴 듯하지만, 속은 공허한’ 로버트 레드퍼드식 청춘과도 맞닿아 있었다. 죽음으로써 자신의 신화를 완성한 제임스 딘처럼,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애처롭게 사그라든 브래드 피트의 분신은, <가을의 전설>에 이르러 ‘신화’와 ‘전설’이라는,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상승한다. 그의 아름다운 외모를 최대치로 활용한 영화 <가을의 전설>이 개봉하던 94년, <피플>은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브래드 피트를 뽑았고, 그는 그뒤로도 한동안 ‘가장 아름다운 사람’, ‘최고의 신랑감’, ‘가장 흥미로운 인물’ 등 각종 조사에서 수위를 차지했다. 90년대 소녀들의 판타지 속에는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브래드 피트의 성공담과 사생활도 그의 스타덤에 후광을 덧씌웠다. 운송회사 간부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는 미주리대에서 광고를 전공했지만, 학교를 마치진 못했다. 졸업 직전에 “사는 게 재미없어서” 배우가 되려고 무작정 LA로 달려왔을 때, 그가 가진 건 낡아빠진 닛산 자동차와 325달러뿐이었다. 그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닭 의상을 입고 호객하거나 스트리퍼들을 총각파티에 실어다주는 리무진 운전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분홍색 탱크톱 차림의 엑스트라로 38달러를 받는 등 한동안 크레디트에조차 오르지 않는 미미한 역할들을 거쳤고, >TV드라마 <댈라스>와 슬래셔영화 <폭력 교실>에 출연했지만, <델마와 루이스>의 J. D가 되기까지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J. D로 내정돼 있던 윌리엄 볼드윈이 출연을 번복한 이후로, 브래드 피트에겐 믿을 수 없는 행운이 이어졌고, 그 자신이 인정하듯 “여복”도 따랐다. “당신처럼 매력적이고 지적이고 수줍은 듯 유혹하는, 정열적인 사람이 어떻게 아직 혼자일 수가 있냐”는 <조 블랙의 사랑>의 대사는 픽션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브래드 피트는 할리우드 여성들로부터 끊임없는 사랑을 받았고, 화려한 연애사로 인해 늘상 파파라치의 표적이 됐다.
타이슨의 전처이자 모델인 로빈 기븐스, 대선배 지나 데이비스와의 연애는 짧았지만, TV영화 <투 영 투 다이>에서 만난 줄리엣 루이스, <쎄븐>에서 만난 기네스 팰트로와는 오랜 연인 사이였다. 결국 그는 오랜 방황을 마치고(?) 지난 가을 <프렌드>의 스타 제니퍼 애니스톤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들의 결합은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커플 이래 할리우드 사상 가장 뜨겁고 풍성한 화제를 낳았다.
난 길들여지지 않아!
그러나 브래드 피트가 평가받아야 할 부분은, 그가 나고 자란 할리우드에 길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평론가 진 시스켈과의 인터뷰에서 브래드 피트는 자신의 ‘외모’가 배우의 커리어에 가져다준 득과 실을 이야기한 바 있다. 빛나는 외모 ‘덕’에 세상의 문을 쉽게 열 수 있었던 반면, 외모 ‘탓’에 그 세상 속에 오래 머물 수는 없을 거라고.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사람들이 왜 나와 다른 대우를 받는 건지, 물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대답하길 꺼리시다가, 내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난 알고 있다. 어머니는 외모 덕을 보려들지 말라, 그걸 이용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거다.” 그래서일까. 브래드 피트는 외모의 호소력으로 이룩한 자신의 스타덤, 자신의 화사한 이미지와 이별하는 연습을 해왔다. 할리우드와 팬들은 그에게 멜로드라마와 액션영화의 히어로를 요구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델마와 루이스>로 스타덤에 오른 뒤에도 단역 출연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특히 많이 ‘망가진’ 역할을 반겼다. <트루 로맨스>에서 마약에 절어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날 깔보면 죽여버릴 거야”라고 웅얼거리던 그를 기억하는지. <칼리포니아>의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존재론적 고민에 시달리던 뱀파이어, <쎄븐>의 오만과 분노에 찬 신참형사, 의 미치광이 혁명가로, 브래드 피트는 자신의 스펙트럼을 조금씩 넓혀 나갔다. 청춘스타로 자족하지 않고 진짜 배우가 되려고 한 것이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부터 차츰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해, <12 몽키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그는, “상을 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상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리고 <파이트 클럽>과 <스내치>에 이르러, 여성 관객의 달콤한 연인에서 남성 관객의 끈끈한 동지로, 아이돌 스타에서 성숙한 배우로, 운신의 폭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진정한 히어로가 되기 위해
세상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오늘의 브래드 피트가 저절로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타고난 배우가 아님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 증거는 내 초기작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그는 더더욱 외모의 ‘덫’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던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천재적인 낚시꾼’의 면모를 보이기 위해 할리우드 마천루에 올라 얼굴에 생채기가 나도록 낚시대를 휘둘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온갖 종류의 영어를 구사한 이력도 화려한데, IRA 테러리스트를 연기하기 위해 북아일랜드 억양(<데블스 오운>)을, 오스트리아 등반가를 연기하기 위해 독일식 억양을(<티벳에서의 7년>), 아일랜드 집시를 연기하기 위해 영국 집시 마을에 찾아가 그들의 말씨를(<스내치>) 배웠다. ‘스타연’하지 않는 겸손하고 소탈한 면모도 한몫 했다. ‘이코노미 클래스’로 불린 <스내치> 촬영현장에서는, 손수 차심부름을 하고 덜 익힌 감자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며, 그를 경계하던 인디 배우들과 허물없는 친구가 됐고, 그렇게 다진 팀워크는 영화 속에서 고스란히 빛을 발했다.
브래드 피트가 역할 모델로 삼아온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그가 외양과 이미지를 거스르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 것인지, 좀더 명확히 알 수 있다. 남자라면, 배우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로버트 드 니로를, 우리 시대 ‘남자 영화’의 히어로를, 강한 카리스마의 보스 이미지를, 브래드 피트도 가슴에 품었던 것이다. “그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난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도전하고 싶었다.” 그는 남들이 꺼리는 혐오스런 역할만 도맡아하는 숀 펜의 용기를 벤치마킹하며, 자신의 우상과 ‘닮은 꼴’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스타덤을 떠난 스타
주류와 비주류를 오가며 정형화된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시도는 브래드 피트만 해낸 것이 아니다. 톰 크루즈도 키아누 리브스도 블록버스터와 저예산독립영화를 쉴새없이 오갔다. 그러나 브래드 피트는 톰 크루즈처럼 철저한 계산으로 자신이 최대한 돋보일 수 있는 영화를 고르지도 않았고, 키아누 리브스처럼 함량 떨어지는 작품까지 덥석 받아들어 들쭉날쭉한 아웃풋을 내놓지도 않았다. 브래드 피트는 자신이 돋보이거나 잘나보이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고, 어떤 영화, 어떤 역할이든 비슷한 완성도의 연기를 선보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배역에 더이상 흥미가 없다. 그런 시나리오는 내가 피하려는 함정”이라는 지론을, 그의 개성있는 필모그래피가 오롯이 반영하고 있다. <아폴로13> 대신 를, <올모스트 페이머스> <베가번스의 전설> 대신 <스내치>를 선택한 것도 현명했다. <스내치>에 이어 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코믹 로드 무비 <멕시칸>을 선보인 브래드 피트는 현재 토니 스콧 연출의 9천만달러짜리 전쟁영화 <스파이 게임>에 출연하고 있다. 그리고는 탁구경기라도 하듯 다시 반대편으로, 인디영화의 품으로 달려간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오션스 일레븐>, 코언 형제의 <흰 바다를 향해>가 브래드 피트의 차기작. “새로운 관계에서 새로운 뭔가가 탄생한다. 언제나 같은 타입을 연기하는 건 지루한 일이다.” 다음에 어떤 작품에서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도통 예측할 수 없는, 그런 배우에게 어떻게 싫증을 낼 수 있을까. 스타덤을 거부하고 할리우드를 거부한 채,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이 별난 스타의 우직함과 명민함을, 감히 부정할 수 있을까. 언젠가 우리는 눈부신 아름다움을 뽐내던 초창기의 브래드 피트를 아련히 추억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일 것이다. 그땐 그랬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