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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웍스 6년, 미리보는 <쉬렉>
2001-03-23

동화 벗은 동화, 전략은 지속된다

■ PDI 스튜디오에서 만난 드림웍스 신작 애니메이션 <쉬렉>

지난 2월15일 미국 샌 호세의 PDI 스튜디오에서 드림웍스의 신작 애니메이션 <쉬렉>(Shrek)이 일부 공개됐다. 반도체, 컴퓨터 등

첨단산업 관련업체가 모여있는 실리콘 밸리 부근 PDI스튜디오에서 5년에 걸쳐 제작된 <쉬렉>은 <개미><이집트 왕자><엘 도라도>, 그리고

아드만 스튜디오의 완제품이지만 드림웍스가 공동제작한 <치킨 런>에 이어 다섯 번째로 선보이는 드림웍스표 애니메이션. 드림웍스와 영화, CF

등에서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 회사로 명성을 쌓아오다가 <개미>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선 PDI가 두 번째로 의기투합해 만든 100% 3D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이다. 현재 90% 이상 제작이 진행된 <쉬렉>의 완성을 앞두고, 드림웍스와 PDI는 세계 각국의 기자들을 모아 제작과정

및 작품 일부를 공개하는 투어를 가졌다.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한국 등 10여개국 기자들이 샌 호세의 PDI 스튜디오를

방문했고, 작업과정 및 주요 시퀀스들을 담은 작품 일부를 보고 프로듀서이자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수장인 제프리 카젠버그를 비롯한 스탭들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동화, 우화로 태어나다

<쉬렉>은 기획단계부터 따지면 이미 97년부터 제작에 착수했던 작품이다. 모세의 출애굽기, 개미 왕국을 구해내는 일개미 Z의 모험담, 두

스페인 건달들의 황금향 탐험, 치킨 파이가 될 운명에서 탈출하는 영국 닭들의 엑소더스를 항해해 온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새로 닻을 내린

영토는, 공주와 기사의 동화 세계다. 옛날 옛적 어느 숲속의 늪지에 사는 쉬렉은 북구 신화에 등장하는 덩치큰 괴물 오그르. 늪지에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꾸민 그는 혼자만의 평화와 고독을 즐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날부턴가 갑자기 동화 속 동물 캐릭터들이 하나 둘 늪지로 도망쳐오면서

늪지는 붐비기 시작하고, 안온한 일상을 잃어버린 그는 원인 조사에 나선다. 그의 침대를 차지한 늑대, 입을 다물면 죽기라도 할 듯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당나귀 등은 모두 포악한 영주 파르콰드에게 살 곳을 잃고 쫓겨온 동물들. 일상을 되찾고 싶은 쉬렉은 파르콰드를 찾아가고, 왕이

되기 위해 결혼할 공주를 찾는 그에게 신부감을 데려다주는 조건으로 원상복귀를 약속받는다. 파르콰드는 불 뿜는 용이 지키는 탑에 갇혀 있는

피오나 공주를 신부로 점찍고, 쉬렉은 말많은 당나귀를 벗삼아 공주를 구하러 떠난다.

<쉬렉>은 <배트맨과 로빈> 등 실사영화에서 시각효과를 주로 담당해온 앤드루 애덤슨, 애니메이션 제작사 한나 바버라 스튜디오 출신으로 <엘

도라도>의 프로덕션 디자인에 참가했던 빅키 잰슨이 공동 연출한 데뷔작. 공주와 기사, 탐욕스런 악당 등 동화적인 설정은, 아동 취향의 동화

색채가 강한 디즈니와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사를 내비쳐온 드림웍스의 전작들에서 벗어난 듯 하다. 하지만 30여분에 이르는 주요 시퀀스 시사에서

엿본 <쉬렉>은 동화 치곤 좀 웃기는 동화다. 공주를 구하러 나서는 ‘기사’ 쉬렉은 잘 봐주려고 해봐야 못생긴 초록빛 괴물이고, 공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모험에 나선다. 공주는 또 어떤가. 구출된 피오나는 자신을 구한 기사와 키스를 나누고 사랑에

빠지는 게 공주의 운명이라며 쉬렉에게 투구를 벗으라고 요구하지만, 멋진 왕자가 아니라 괴물이란 사실을 알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뿐만 아니라

“거울아, 거울아, 신부감을 보여다오” 하는 주문에 따라 파르콰드에게 신데렐라, 백설공주, 피오나를 차례로 소개하는 ‘마법의 거울’은 “백설공주!

다 좋은데 일곱 남자와 산다는 게 좀 문제죠”라며 익살을 떨고, 피오나를 감시하던 암컷 용은 당나귀가 미모를 칭찬하자 공격을 멈춘다. 90년에

나온 윌리엄 스타이거의 아동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얼핏 동화를 가장한 <쉬렉>의 본색은 사실 아동 관객의 눈높이를 교묘히 넘어선

우화에 가깝다. 잘 알려진 동화를 재료삼아 패러디와 황당한 개그적 상상력으로 요리함으로써 아이들은 물론, 십대와 성인 관객까지 폭넓게 포섭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인 것이다.

“그냥 고전적인 동화를 곧이곧대로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맞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그걸 훌륭하게 해내는 또 하나의 회사도 있고, 우리가

그보다 더 잘할 거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건 내 관심 밖의 문제고, 아티스트들에게도 그리 도전적인 일이 아니다.” <쉬렉>의 시사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카첸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동화의 아이디어를 빌려와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을 만들되, 동화의 관습을 안팎으로 정교하게,

독특한 스타일과 톤, 태도를 가지고 뒤집는 것, 그게 재밌고 도전적”이라며, “5년 동안 만들려면, 재미가 있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쉬렉>은 공주를 구하는 기사의 모험담이라는 동화의 보편적인 골격을 지니면서도, <백설공주>처럼 익숙한 동화적 유산을 혼성모방과

패러디로 변주한 코믹 모험판타지로 탄생한 것이다.

<이집트 왕자>, 도전의 서곡

이러한 <쉬렉>의 변주는 카첸버그가 드림웍스의 첫 기획 <이집트 왕자>부터 은근히 강조해온 차별화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 디즈니에서 나온

뒤 드림웍스SKG 설립을 논의하던 중에 구상했다는 <이집트 왕자>는 “동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바람에서 출발했다. <애니메이션의 역사>

등을 저술한 미국의 애니메이션 평론가 찰스 솔로몬이 쓴 <이집트 왕자-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비전>에 따르면 카첸버그는, “동화를 스토리텔링의

기초로 삼는 디즈니의 전통”과 다른 애니메이션의 비전을 갖고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아이들을 위한 그림동화로 인식되고 있는” 애니메이션을,

더욱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하나의 테크닉으로 발전시켜가고 싶다는 것이다. “93년에 나온 <쥬라기 공원>과 <쉰들러 리스트>가 실사영화란

공통점을 가질 뿐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듯”, 애니메이션도 그 자체로 아동용 장르가 아니라 여러 소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길

바랬달까. 스필버그, 게펜과 모여 드림웍스에 대한 구상을 나누던 카첸버그는 그러한 꿈을 밝혔고, 스필버그는 세실 B.드밀의 <십계>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게펜도 흔쾌히 동의했고, 그게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초석인 <이집트 왕자>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95년 2월, 사무기기조차 없는 LA 유니버설 시티의 텅빈 사무실에 <이집트 왕자>의 스탭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스튜디오가

출범했다. 카첸버그는 디즈니의 중견 프로듀서 페니 핑켈만 콕스, 샌드라 래빈을 스카웃했고, 그와 할리우드의 흥행사 스필버그의 이름을 보고

모인 애니메이터들을 채용했다. 스필버그가 이끄는 런던의 애니메이션제작사 앰블리메이션을 합병하면서 유럽 출신의 재원들을 대거 수용하면서 40개국에서

온 400여명의 애니메이터들로 구성된 스튜디오의 꼴을 다져갔다. <이집트 왕자>의 제작과정에서 이들 제작진에게 떨어진 주문은, 기존 애니메이션에서

익숙한 보편적인 장치를 넣지 말라는 것. 솔로몬이 드림웍스의 청탁으로 제작과정부터 따라붙어 썼다는 <이집트 왕자…>에 따르면, 말하는 동물이나

주인공을 받쳐주는 코믹한 조연을 없애고, 선악의 이분법적 구분을 피하라는 것이다. 과연 완성된 <이집트 왕자>에는 말하는 동물이나 웃기는

조연이 없고, 람세스와 모세의 갈등에 형제애를 가미해 선악의 이분법이 희석돼 있다. 얼굴이 길고 가무잡잡한 유대인들과 이집트인들의 외모는

비교적 사실적이며, 19세기 화가 구스타브 도레의 그림과 데이비드 린의 시네마스코프를 참조했다는 배경과 볼거리는 웅장하면서 전체적으로 색감이

어둡다. 성서에서 가져온 소재 자체의 무게도 무게거니와, 아동용 장르로서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란 테크닉을 사용한 영화로 보다

폭넓은 관객층을 바라보겠다는 전략의 결과랄까. 작품의 성격에 따라 카첸버그는, 밝은 색감의 깜찍한 캐릭터로 사업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온

디즈니와 달리, 어린 관객들을 겨냥한 캐릭터 사업 대신 OST와 책으로 사업방향을 돌리겠다고 공언했다. <이집트 왕자>는 미국에서 약 1억달러를

벌어들이는 성공을 거뒀다.

실패의 여운, <치킨 런>으로 벗어나

이러한 작품의 성격은 <이집트 왕자>보다 기획은 좀 늦었지만 한발 앞서 개봉된 <개미>에서도 이어진다. 밝은 색감의 개미들을 비롯한 <벅스

라이프>의 귀여운 캐릭터, 반투명한 초록빛 숲과 달리 <개미>의 개미들은 전혀 귀엽지 않고, 배경은 어두운 갈색조가 지배적이다. 대신 <펄프

픽션>의 트위스트 장면 패러디와 같은 성인 취향의 유머와 세련된 대사를 앞세운 <개미>는, 미국에서 9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제작비의

4배가 넘는 1억6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벅스 라이프>의 성공에는 훨씬 못미쳤지만, 6천만달러 제작비를 회수하고도 남는 액수였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작품으로는 두 번째, 드림웍스의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으로는 세 번째인 <엘 도라도>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기존 애니메이션의 공식들을 조금씩 비껴간 작품이다. 주인공들은 사기도박으로 먹고 사는 건달들이며, 일확천금의 꿈에 부풀어 엘 도라도로 모험을

떠난다. 결국 원주민을 도와 침략자 코르테스를 막는 선행을 펼치지만, 판에 박힌 영웅형은 분명 아니다. <개미>나 <이집트 왕자>에 비하면

색감이나 분위기가 훨씬 가볍고 경쾌해졌지만, 극을 주도하는 두 주인공의 재담은 아이들이 즐기기엔 성인 편향. 마야 문명의 유적을 화사한

원색으로 되살린 환상적인 스펙터클도, <라이언 킹>으로 아카데미를 수상한 엘튼 존과 한스 짐머 콤비의 음악도 평이한 드라마를 흥행 부진의

늪에서 구해내진 못했다. 9천5백만달러의 예산을 들인 <엘 도라도>는 자국시장에서 5천만달러를 간신히 넘기는데 그쳤다. 이 실패에 대해

카첸버그의 답은 명쾌하다. “상투적이고, 사람들이 지금껏 봐온 것과 다르지 않았다. 충분히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엘 도라도>의 실패의 여운은 길지 않았다. 99년에 2억4천만달러를 들여 합작 계약을 맺은 영국의 클레이메이션 제작사 아드만의

신작 <치킨 런>이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치킨 런>은 드림웍스와 5편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로 계약한 아드만의 첫 작품.

작품에 대해서는 아드만 스튜디오에 일임했다고 밝힌 만큼 드림웍스의 전략이 낳은 결과라고 보긴 어렵지만, 묘하게도 <치킨 런> 역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노선에서 그리 멀지 않다. 탈출을 꿈꾸는 닭들의 농장은 종종 어두운 감옥처럼 묘사되며, 주인공인 닭들은 월레스와 그로밋처럼

사랑스럽지만은 않은 것이다. 어쨋거나 <치킨 런>은 작년 미국시장에서 1억 이상의 수익을 올린 몇편 안되는 영화들에 포함됐다. 이러한 시점에서

드림웍스가 <쉬렉>에 거는 기대는 적지 않은 듯 하다. 우선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벤치마킹한 듯 친숙한 동화를 끌어온 시도에서 그간 좀 소홀했던

어린 관객들에 대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이집트 왕자> 때와는 달리 ‘말하는 동물에 코믹한 조연’인 당나귀도 등장한다. 그러면서도 동화적인

세계를 코믹한 패러디 감각으로 적극 변주한 것은 ‘뭔가 다른 작품’에 대한 고집과 10대 이상의 관객에 대한 구애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배려와 함께, 쉬렉이 진흙으로 샤워를 할 때나 숲의 풀들이 바람에 따라 세밀하게 움직일 때 드러나는 컴퓨터그래픽 표현력의 진일보도

눈을 사로잡는다. 그 <쉬렉>이 최종적으로 어떤 성과를 거둘지는 5월이면 드러날 일이다.

더 넓은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향해

그 밖에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계보를 이어갈 작품으로는, 올해 개봉을 바라보고 제작 중인 2D애니메이션 <스피리트; 치마론의 종마>, 내년

공개 예정인 100% 3D애니메이션 <터스커>가 있다. 서부시대 미국을 무대로 한 <스피리트>는 스피리트란 이름의 말이 주인공이다. 인디언들과

기병대에게 잡혔다가 자유를 쟁취해가는 과정을 그의 시선으로 그릴 예정이다. ‘스피리트’의 시점을 대사 없이 내레이션으로만 표현함으로써 <이집트

왕자>처럼 비교적 사실적인 작품으로 만들어 갈 계획. 밀렵사냥꾼을 피해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는 코끼리떼의 모험을 그린 <터스커>는 PDI와

드림웍스의 3번째 작품이다.

<이집트 왕자>부터 <쉬렉>까지, 드림웍스에서 제작한 일련의 작품들이 ‘남다른 점’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카첸버그의

말대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전략 운운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일 지 모른다. 50년이 넘은 디즈니나 다른 스튜디오에 비한다면, 드림웍스는

아직 걸음마 단계고 이제 겨우 4편을 만들었을 뿐이니 말이다. 또 애니메이션을 그릇 삼아 다양한 요리를 담고 싶다는, 또 “누구도 가 본

적 없고 애니메이션만이 이를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겠다는 카첸버그의 바람대로라면, 앞으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담아내는 세계는 점점 더

넓어질 테니까. 오래도록 동화의 아성을 지켜온 디즈니도 <쿠스코? 쿠스코!>에서 이기적인 황제라는 파격적인 주인공과 패러디를 내세우고,

<아틀란티스>에서는 어두운 심해를 무대삼아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아나스타샤>에 이어 <타이탄 A.E.>의 참패로

장편애니메이션 사업을 접다시피한 20세기폭스, 흥행과 비평 다 별 재미를 못 봤던 <매직 스워드>, 평가가 좋았음에도 흥행에 실패했던 <아이언

자이언트>로 부진을 면치 못한 워너와 달리 드림웍스는 비교적 꾸준히 제길을 다져가고 있다. 디즈니와는 또다른 작품으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좀더 풍요로운 색을 보태며 7살을 맞고 있는 것이다.

LA=황혜림 기자 blaue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