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자전, 대를 잇는 비디오 사랑
우수 비디오숍 ...경기도 성남시 으뜸과 버금 분당점, 조현철씨
으뜸과 버금 분당점의 주인 조현철(37)씨는 요즘 절로 웃음이 난다. 몸이 안 좋아 병원 신세를 지느라 가게를 자주 비우지만 걱정이 없다. 자신보다 더 똑 소리나게 매장을 관리하는 손길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매장을 책임지고 있는 여직원 변지선(30)씨가 그 주인공. 회계학을 전공하고 회계법인에서 얼마간 근무한 탓인지 사소한 부분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그녀가 온 뒤로 매장이 더 깔끔해지고 정리정돈이 잘되었다는 게 주위의 평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차분한 성격의 그녀는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좋은데, 해박한 영화지식으로 손님의 까다로운 입맛 시중을 능숙하게 든다. 사실 그녀도 일년 전에는 고객으로 분당점을 찾았다. 유난히 드라마와 미스터리를 즐겨 찾던 그녀였다. 지금도 편식습관을 못 버리고 있지만 손님들에게는 골고루 권해주려 애쓴다고.
조현철씨는 원래 경영학도로 외국인 상사에서 몇년간 영업부직을 맡아 일을 했었다. 그러다 96년 삼촌 김재민(60)씨가 하던 사업을 그만두고 현재의 분당점 바로 옆에다 비디오 가게를 차리자 회사를 그만두고 일손을 도왔다. 김재민씨는 으뜸과 버금 회장직을 역임할 만큼 적극적인 운영을 해오다 98년 조현철씨에게 가게를 인계했다. 삼촌의 비디오 사랑은 조카에게 이어져 삼촌이 모아 온 2천여편의 희귀비디오에다 조현철씨가 구한 500여편의 비디오가 합해져 현재 2500편의 희귀비디오를 소장중이다.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폐업처분 소식이 있던 창원까지 내려가 김기영 감독의 <화녀> <하녀> <육식동물>,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 이만희 감독의 <삼포 가는 길>, 이두용 감독의 <장마> 등의 한국영화 비디오들을 건진 것. 또한 성베네딕트 미디어로 이름을 바꾼 분도제작사에서 출시된 90여편의 외국 명화를 풀세트로 갖춘 것도 자랑거리 중 하나다. 20여평의 매장 안에 1만2천편의 비디오만 해도 꽉 차지만 얼마 전부터 판매용 DVD를 갖추고 조심스레 반응을 살피고 있다. 삼촌과 함께 LD와 CD를 취급하다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만 입고 처분해버린 아픈 기억이 채 아물지 않은 상태다. DVD시장의 경우, 지금은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투자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에서 약간의 자조가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제 고객의 수준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비디오 가게가 다양하고 깊이있는 소프트웨어로 승부하지 않으면 ‘명퇴’를 당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