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이라는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그동안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해오던 비둘기 둥지 등 스탭과 제작자, 투자자들의 첫 만남은 <씨네21>의
기대만큼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다. 스탭들이 생존권 보장 대책을 제기한 표준계약서, 개별계약제, 최저임금 보장, 인센티브 제도 등을 논의한 뒤
감독급 스탭의 처우문제, 그리고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영화의 시스템 개조 등을 차례로 이야기하려던 애초 계획은 스탭들의 현실에 대한
치열한 문제제기와 제작자들의 고민에 묻혀 충분히 이뤄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날의 테이블은 스탭 생존권을 해결하고 한국영화 시스템을 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앞으로 펼쳐질 스탭과 제작·투자자들의 속내 깊은 이야기를 기대하며 이날의 뜨거운
분위기를 지면에 담았다. 편집자
▶ 참석자
김혜준 (사회·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실장)
김광호 (비둘기 둥지 운영진, 아이디 ‘김호’, 시나리오 작가)
김영철 (촬영감독)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
이은 (명필름 이사·영화감독)
황우현 (튜브엔터테인먼트 이사)
▶ 시간
5월16일 오후 5시
▶ 장소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
김혜준 지난 1997년에도 몇몇 프로듀서들과 함께 한국영화 시스템 개선을 위해
고민한 적이 있다. 지금은 스탭들의 처우개선이라는 문제가 돌출되어 나온 셈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때 논의와 비슷하다. 고민은 시스템 중
일부는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 중이지만 한편 여전히 문제로 남은 부분들도 존재한다는 데 있다. 그 부분을 고려한다면 또 아직 구체적인 데이터
확보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따라서 한국영화 시스템 개선이라는 큰 틀을 전제하되 표준계약서,
개별계약제, 최저임금 보장 등 제기되고 있는 각 사안들을 떼어놓고 또 부문별로 나누어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오기민 개인적으로 표준계약제에 대한 개념을 재검토하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표준계약서를 주장하지만 그것이 드러내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균일하지가 않다. 일괄계약제에 반대하는 개별계약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든 스탭들의 개별성을 무시하고 적용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김광호 표준계약제와 관련해서 스탭들이 주장하려는 바는 간단하다. 물론 커진
파이를 더 많이 달라는 수준에 그치지는 않는다. 한 인간으로서 소속감을 갖고 일하게끔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조수들이 말하는 표준계약서, 개별계약제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오기민 물론 그걸 모르는 바 아니다. 다만 가치판단을 떠나서 그렇다면 일괄계약과 개별계약의 현실적인 차이를 추후에라도 말해달라.
이은 매체를 통해 접하는 현장의 목소리에는 구체성이 결여된 듯 보인다. 비둘기
둥지만 해도 주체와 목적, 구체적인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잘 안 보인다. 주체문제의 경우 김영철 기사처럼 개인이 제작자를 상대로 요구를 하거나
배우들처럼 에이전시를 통할 수 없다면 집단적인 의지 등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연출부로서, 제작부로서, 촬영부로서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황우현투자사의 입장에서 계약 상대가 제작사이고, 제작사가 스탭과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니 어떻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제작사를 겸하고 있는 입장에서 투자와 제작 이 두 부분이 상충하는
것은 사실이다. 투자자 입장과 제작자 입장에서 합리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나 입장 자체가 다를 수 있다.
처우 개선과 전문성 확보의 함수관계
김혜준 일단 조수급 스탭들로부터 불만이 터져나온 배경을 짚어볼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산업의 현황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등 기록적인 흥행작들이 나오고 몇몇 해당 제작사들의 시스템 안정화문제와는 별개로 일부에서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과연 한국영화의 보편적인 경향이 그러한가라는 반문도 있을 수 있겠고.
김광호 시스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뭔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회원들 공통 의견은 사실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프로듀서 혹은 제작자들이 흥행작을
내고 산업적인 측면에서 회사 경영만을 중시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김영철 ‘우리는 지금 잘하고 있다는’ 식의 논리만으로는 곤란하다.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사실 변화가 없다. 단순히 지금이 아니라 좀더 멀리 내다봐야 하지 않을까. 제작자들이 시급하다고 말하는 스탭들의 전문성 확보문제
역시 현 스탭들의 처우개선이 이뤄진다면 길이 뚫릴 것 같다.
오기민 중요한 것은 스탭들의 처우개선문제와 전문성 확보문제가 선후 관계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건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스탭들이
“돈 이정도 받고 무슨 전문성이냐”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반대로 제작자쪽에서는 “임금을 올려주면 전문성이 확보될 것”이라는 주장을 온전히
믿기 힘들다. 한국영화 발전을 이야기하지만, 어쨌든 지금 상황에 만족할 수 없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두 가지 문제를 함께 풀어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요즘 현장에 나가면 스탭 50명 중 3분의 1 정도가 두개의 작품을 채 만들지 못한 스탭들이다. 감독의 경우 도제시스템은 이미 무너졌고,
그로 인해 연출부의 경우 2개 작품 정도만 하고나면 감독 밑에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감독들 역시 그를 데리고 있으려 하지 않는다. 능력있는
스탭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악순환을 해소하고자 전문 조감독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아직 전문 조감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임자가 있어 현재 촬영중인 <고양이를 부탁해>의 경우 그런 시스템을 지향하고 준비하는 작품이다. 10편 이상 참여한 조감독
한 사람만 있어도 현장은 달라진다. 그걸 제작자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런 이들이 있다면 임금을 더 주고서라도 그들을 데려오려고 할 것이다.
이은 연출부와 제작부 이야기를 하는데, 내 경우는 마술피리보다 2∼3년 앞서 만들어졌으니까 회사 차원에서 그런 고민들을 좀더 빨리 했다.
연출부의 경우 과거 긴 기간 동안 붙잡아뒀지만, 우리의 경우 시간을 쪼개서 고용하는 편이다. 대신 제작부 인원의 절반 정도를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이들에게 제작파트 프로덕션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제작부라 하더라도 다들 영화적 지식들을 갖추고 입문하기 때문에 손쉽다.
반면 반고용 상태의 프리랜서 연출부, 제작부들의 경제적인 처우개선은 최저생계비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그들 스스로 조직적인 모임을 꾸릴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 또한 취업 정보를 공유하고, 일자리를 나누는 일 등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충무로 스탭들의 실태
오기민 프리랜서의 임금과 관련해서는 일단 전체적으로근거있는 통계가 필요한 것 같다. 개별 제작사 입장에서는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는데, 비둘기 둥지쪽이나 현장에서는 난 그렇게 못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분명 나온다. 심지어 믿을 수 없을 만큼 황당한 이야기들도 있다. 아직도 이런 데가 있나 싶을 정도로. 전체 한국영화판에서 조수급 스탭들이
어느 정도를 받고 있고, 이를 기준으로 그 이상과 이하를 받는 이들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보는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지금 우리 이야기가
진척되지 못하는 것도 여기서 기인하는 것 같다.
김영철 동의하지만, 그에 앞서 먼저 묻고 싶은 게 있다. 스탭이 소모품인가
하는 점이다. 그 생각을 안 버리면 답이 안 나온다. 제작사쪽에서는 퍼스트든 막내든 필요에 따라 고용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제작이 끝나면
어떤가. 한마디로 버린다는 느낌밖에 안 든다. 처우도 마찬가지다.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스탭들의 처우에 대해 제작자들이 드는 근거들을 봐라.
다 똑같다. 그게 오히려 더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황우현 제작자들을 선별하지 않고 싸잡아서 문제라고 매도하는 것은 문제다. 내 경우 여러 제작사와 작업을 하는 입장이다보니 한마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들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 제작사의 경우는 제작부로 하여금 연출부 일을 많이 하게끔 한다. 조감독으로 뽑힌 사람은 감독이
데려오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런 까닭에 편차가 너무 심하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 중 돈도 한푼 못받았다는 그간의 사정에는 제작사가 파이낸싱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인력을 붙잡아두려고 하는 것이 한 이유다. 효율적인 제작 공정 확보가 필수다.
김광호 스탭들이 그 정도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구별할 줄 안다. 단 좋은 영화사라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아주 강압적이고
관행적인 계약서부터 시작해서 권리를 찾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김혜준 요즘 제작자들 중 심심찮게 타깃이 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웃음) 개인적으로 스탭들은 이들을 제작자들의 상징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보는 이들이 “저 제작사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하는 심리를 일으키게끔 하는 의도적인 도발이라고 본다.
김광호 감정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보긴 힘들다. 한 메이저 제작사에 시나리오를 보낸 적이 있다. 그것도
다섯 종류를 보냈다. 결국 영화화는 못하겠다고 해서 곧바로 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없다는 거다. 저작물을 요구한다면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해당 제작사가 다른 방식으로 유용하리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또 좋은 제작사가 있다는 것도 안다. 인정하지만 그건 상대적이라는 사실이다.
오기민 시나리오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마술피리에도 시나리오가 많이 온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다. 끝까지
검토를 하겠다면 모르겠지만. 영화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고 그쪽과 연락이 안 되면 어쩔 수 없다. 일단 진행되던 이야기부터 마무리하자. 전문
조감독제를 운용하든 연출부의 역량을 제작부로 이양하는 것이든 개별 제작사별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1년6개월 동안 50만원
받으며 일했다는 비둘기 둥지 사이트에 올라 있는 한 익명의 글을 봤다. 내용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파이낸싱이 이뤄지기 전부터 연출,
제작부들을 꾸리거나 이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분명 있다. 하지만 지양될 것이다. 그건 제작사와 감독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은 한국영화가 빨리 성숙해져야 한다는 촉구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까. 처음부터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없다. 선의를 갖고 일하는
어떤 제작자가 새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갖고 감독과 연출부를 데리고 왔는데, 미안해서 밥이라도 먹이고 있다가 최선을 다해 파이낸싱해도
안 된다고 했을 때 이것의 객관적인 잘잘못은 굉장히 애매한 문제다.
오기민 동감한다. 모든 사람이 악의를 갖고 시작한다는 생각은 안 한다. 아무리 선의를 갖고서 출발했을지라도 애초 예정보다 8개월이 늘어났다면,
또 그에 해당하는 몫이 스탭들에게 지급되지 않았다면, 일한 사람 입장에서는 선의로만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은 일한 사람 입장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제작자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계약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어려운 현실 속에서 고기라도
사주고 했는데 나가면서 저런 식으로 불만을 가진다니 섭섭한 감정을 갖지 않겠나. 이것이 현실이다.
김영철 파이낸싱이 됐건 어쨌건 제작자의 필요에 의해서 스탭을 고용해서 쓰는
것 아니냐. 그들이 껌을 줍건 뭘 하건 필요한 일이 있으니까 고용한 것 아닌가. 솔직히 스탭 입장에서는 그 영화가 망하거나 흥하거나 이런 것은
잘 모르지만, 영화가 성공하고 나서도 남는 것이 없다는 제작자들의 이야기를 나도 16년 동안이나 들어왔다. 스탭에 대한 애정을 가져달라.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달라. 나 역시 16년 경력 동안 3년 전부터 세금을 내기 시작했다.
조수급 스탭의 처우개선은 당연, 하지만…
김혜준 이 문제는 연동되어 있는 사안들이 많지만, 논의를 할 때는 각각 나누어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단순히 책임 소재를 따지다보면 서로 다른 표적을 세우는 것이 고작이다. 일단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부분부터 찾아야 한다. 시나리오-프로듀서-감독 사이에서 충분한
논의를 통해 이른 시일 내에 해결할 수 있는 현장의 개선점들도 많다. 그런데도 왜 안 되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된 사항을
조감독에게 전적으로 일임하고 전가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감독들에게도 책임은 있다. 다시 돌아가서 스탭들이 제작자를 타깃으로 삼기보다는
프로듀서에게 당신이 지급하는 100만원이 타당한 금액인지를 묻는다든지 그럴 필요가 있다. 제작자들 역시 그런 스탭들과 테이블을 마련해서 그들의
의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은 아까 답했어야 했는데, 스탭을 소모품으로 생각한 적은 절대로 없다. 또 조수급 스탭들의 처우개선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다만
이 정도의 인건비가 적절한 것인가는 갑과 을의 자유의사에 따른 계약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지금 시장상황이 나쁜 것도 아니다. 호황인 상황에서
정당한 인건비를 요구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아질 것이다. 또한 제작사들 역시 그런 부분에 대한 관심들을 갖고 있다. 인센티브, 보너스에 관한
이야기도 있는 것으로 들었는데. 개인적으로 해당 프로젝트 과정에서 얼마나 크리에이티한 기여를 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기술분야 감독급까지
포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신 작품들의 특성이 다르고 해당 작품의 퀄리티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분야 역시 다 다르므로 그 범위 내에서
유동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오기민 그런 고민들을 하게 된다. 아직 돈을 벌어 본 적이 없어 시도는 안 했지만, (일동 웃음) 만약 흥행이 돼서 상당히 벌어들였을 때
그 몫이 배우뿐 아니라 스탭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비율을 정하는 데 있어서 배우, 주요 메인 스탭, 그리고 나머지
스탭들간에 어떤 기준을 적용해서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김영철 인센티브가 작품 기여도 또는 공헌도에 따른 것이라면 조수급들을 포함한
스탭들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본다. 스탭 역시 영화를 만드는 주체 아닌가. 물론 우리가 단번에 모든 것을 해달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작자들은 흔히 투자자들 앞에서는 이 영화가 잘될 것이라 말하면서 스탭들에게는 돈 구하기가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또 인건비가 상승되면
제작비가 올라가 투자받기 더욱 어려워진다는 말도 오랫동안 들어왔다. 이런 하소연을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가. 왜 우리만 어려워져야 하나.
김혜준 그걸 요구할 수는 있다. 다만 인센티브도 당사자간의 계약을 통해 성립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영철 계약서 작성 자체가 평등하게 이뤄지는 것인가. 동등한 입장은 아니라고
본다. 계약서를 이야기하지만, 사실 충무로에서 작성되고 도장 찍고 하는 대부분의 계약서들이 지금까지의 관행을 따르는 문서 아닌가. 내가 <파이란>을
찍을 때, 촬영 기간과 총회차를 정하고, 이 한도를 넘길 때는 재계약을 해야 한다는 점과 내 아래 스탭들의 경우 모두 개별적으로 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주장해서 결국 관철시켰던 것은 처우개선의 의미도 있지만 그동안의 관례를 깨자는 의미 또한 있다.
오기민 제작사 입장에선 턴키 베이스의 일괄계약이 아니라, 스탭들이 개별계약을 원한다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경우 촬영부는 일괄계약으로, 조명부는 개별계약으로 했다.그들이 요구해서 그렇게 했다. 제작사들이 개별계약을 꺼린다고 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일단 개별계약의 경우 해당인이 일정한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작사 입장에서 나쁠 이유도 없고, 할 수도 있고, 반대할 이유도
없다. 할리우드에서 개별계약제가 나온 배경이 제작자들이 전권을 쥐고 스탭들을 흔들 수 있게끔 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찌됐건 지금
상황에서는 모순이 발생한다.촬영부를 예로 들어보자. 촬영감독은 촬영팀 내의 구성원을 통제함에 있어 자신의 손을 통하기를 원한다.그런 상황에서
아래 팀원들이 개별계약을 한다는 것은 뭔가 모순이 있다.또 개별계약의 본래적인 의의를 찾자면 전문화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덧붙여 스탭들의
최저 생계비용이 올라가야 한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또 이로 인해 제작비가 대폭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문제는 여러 번 말했지만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스탭들도 이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지기 위해서는 촬영쪽에서도 이를 위해 내부적인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영철 우리도 안다. 우리 내부가 깨끗하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오야지’가
중간에서 일부 몫을 가로채는 경우도 있고, 숙련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오기민 일례로 최근 개봉작들 중 내가 본 두 작품만 놓고 보더라도 포커스가 나가버린 장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작품들은 신생 제작사가
아닌 충무로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제작 시스템을 갖춘 그런 곳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열악한 상황에서 반복되는
악순환이라는 것도 안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덧붙이자면 처우개선뿐 아니라 동시에 전문기술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촬영부뿐 아니라
기술 스탭들 내부에서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제작자뿐 아니라 “너 촬영감독 되면 많이 받을 수 있잖아”라고 말하는 촬영감독이나 “그래 나
감독되면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스탭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프로덕션 과정에 스탭들이 시간이 지나면 ‘서드’에서 ‘세컨’으로, 또
‘퍼스트’로 올라가는 일종의 과정으로만 결합한다면 완벽한 결과물을 기대하기는 요원하다는 뜻이다.
김혜준 산업화 단계로 진입하는 단계에서 터져나오는 문제들이다. 배석한 기자가 제작비가 오른 것에 비해 인건비 상승률은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제작자쪽에서 이야기를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오기민 내 경우만 이야기해보자. <여고괴담>은 순제작비 6억2천만원짜리 영화다. 따라서 내가 사정하면서 깎을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를
부탁해> 같은 경우 지금 10억원이 들어간 만큼 스타급 배우들과는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그만큼 올랐다. 물론 스탭들 개개인들로서는 자신들의
경력 때문에 오른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김영철 제작비가 50억원이 되는 영화를 준비하는 쪽과 미팅을 갖던 중 촬영,
조명 합쳐 2억원을 요구했더니 프로듀서가 눈이 동그래지더라. 그때 프로듀서가 부른 값은 1억원이었다. 그러니까 촬영쪽은 5천만원에 못 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3년 전 2700만원부터 시작했으니 많이 올랐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해도 2년에 세 작품 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것도 잘
나가는 감독의 경우일 뿐이다.
공동의 모색, 문제해결의 출발점
김혜준 산업화 초기라 갖가지 문제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합리적인 수습이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오늘만 해도 적어도
스탭들의 최저생계비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 일정 정도 합의점을 찾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더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일단 최저생계비를 포함 적정임금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상한선과 하한선을 구한 뒤 매뉴얼화 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한마디씩 해달라.
오기민 딴 소리 같지만, 가끔 내가 이 직업을 평생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개인 생활 없는 생활이야 젊었을 때는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는 무리한 과정이다. 누군가 “결국은 제작자의 책임”이라고 했지만, 어떤 영화처럼 배우스케줄 때문에 촬영기간이 8개월까지 늘어나는
경우까지도 제작사쪽 책임으로 돌린다면 “그것까지 예상을 했어야 하나?”라고 스스로 묻게 된다. 가끔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는 게 나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웃음)
이은 어떤 결론은 낼 수 없는 자리였던 것 같다. 다만 스탭들의 처우개선문제는 각 부문에서 지속적으로, 또한 이해당사자들의 조직적인 요구와
함께 자유로운 의견교환 등을 통해 접점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김영철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렇게 모인 것이 처음이다. 나부터도 익숙지 않다.
비둘기 둥지의 스탭들 역시 한번도 자신의 뜻을 주장해 본 적이 없는 친구들이다보니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서투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를
해줘야 한다.
오기민 김영철 감독님이 처음 카메라를 잡았을 때처럼 각 단체들의 문제제기 방식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재로선 비둘기 둥지 구성원들이 이름을
공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순 없다. 제작자들이 모든 스탭의 적정 인건비를 알아서 챙겨줄 것이라고 기대해선
곤란하다. 주제넘은 바람이지만 이 사안과 관련해서 내부 정리뿐 아니라 이를 위한 조직적인 모임을 중심으로 합리적인 제안을 해올 것이라 기대한다.
김혜준 무엇을 풀 것인가는 난상토론 과정에서 드러난 것 같다. 그럼 ‘어떻게’라는
문제가 남았는데 이는 제작자쪽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준 것 같다. 공은 일단 현장 스탭들쪽으로 넘어간 것 같다. 정리 이영진 기자
▶ 스탭
기본권, 이제는 말할 때
▶ 충무로
현장 스탭들의 노동현실 점검, 그리고 대안 모색
▶ ‘비둘기
둥지’는 어떤 모임인가
▶ 인터뷰
| 촬영조수협의회(가칭) 임시회장 박용수
▶ 촬영스탭
보수현황 설문조사
▶ 해외사례
- 미국
▶ 해외사례
- 일본
▶ 해외사례
- 프랑스
▶ 스탭의
현실과 처우 개선을 둘러싼 난상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