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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의 후예, `뉴` 뉴웨이브를 꿈꾸다
2001-05-11

대만의 씨네키드 - 아역배우 출신으로 감독 데뷔작 준비중인 커유이룬

커유이룬(柯宇綸·24) ko1977@ms17.hinet.net

1977년 대만 타이베이 출생

1981년 감독인 아버지의 영화에 출연

1991년 평생의 스승 에드워드 양과 만남

1995년 대만 국립예술학교 입학

최근 읽은 책<백년동안의 고독>

최근 본 영화<유로파> <브레이킹 더 웨이브> <욕망의 낮과 밤>

시간이 나면 책보고 영화보고 사람 만나고 뒹굴 뒹굴….

대만의 씨네키드를 만나는 것은 숨이 벅찬 고목 밑둥에 난 새싹을 발견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허우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 차이밍량, 리안의 나라 대만의 영화계는 그들의 이름을 새겨넣기에는 너무나도 남루한 모양새로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다. 1년에 10편

남짓 제작되는 영화 중 대만 관객의 눈길을 끄는 작품은 하나가 될까말까한 상황, 그 대다수가 중앙전영공사(CMPC)라는 국민당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영화사가 제작하며, 18개관이나 되는 워너 빌리지 같은 멀티플렉스에선 모두 할리우드영화만 상영하고, 허우샤오시엔이나 에드워드 양 같은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감독들은 자국 내에서 자본을 구하지 못해 프랑스 등 해외의 돈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 등등. 언젠가 대륙으로 돌아갈

것이므로 싸구려 가구만으로 치장하고 재봉틀조차 사지 않는 <동년왕사>(허우샤오시엔, 1985)의 주인공 집을 떠올린 것은 지나친

비약이었을까.

에드워드 양의 제자, 장젠의 친구

커유이룬은 대만영화계라는 숲에서 부지런히 이파리를 만들고 줄기를 키워 마침내 고목 자리를 차지할 준비를 갖추는 젊은이 중 하나였다.

그는 타이베이 남경동로 주변 주택가의 작지만 매우 아늑한 사무실에서 첫 단편영화의 시나리오를 마무리하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입구의 간판에

적힌 ‘藍月電映公社’라는 본래 이름보다는 그냥 ‘블루문 필름 컴퍼니’라고 부르는 이곳은 그의 부친인 커이쳉(柯一正)이 운영하는 영화사의 사무실.

이 아담한 2층짜리 건물은 세개의 중소업체가 나눠쓰고 있는데 블루문은 1층과 2층 일부의 공간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1층 공간은 언뜻 지나치다보면

분위기 좋은 카페라 여길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모양새를 갖추고 먼 여행길에 지친 이방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줬다.

지금은 감독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그가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배우의 자격으로서였다. 커는 4살 때 감독이자 제작자인 아버지 커이쳉의

1981년작 <칼을 들고 있는 아이>에서 주연으로 출연했다. 그뒤로 두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그는 아역 활동을 잠시 접고 평범한

어린이로 생활을 했다. ‘데뷔’한 지 만 10년이 되는 1991년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한해로 기억된다. 이때 아버지와 젊은 시절부터 친구로

지내던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 주인공 샤오스의 친구로 출연한 그는 평생 스승으로 양을 모실 수 있었고, 절친한

친구로 지내는 샤오스 역의 장젠(張震)을 만났다. 1995년 에드워드 양 감독의 <마종>(麻將)에서 커와 다시 함께 연기했던

장은 <해피투게더> <와호장룡> 등에서 비중있는 역을 맡았고, 현재 왕가위의 에 출연중이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생길 때마다 커가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벗이란다. 얼마 전엔 장이

만들고 있는 힙합 댄서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촬영을 거들기도 했다. 커유이룬은 이후 1997년엔 홍콩 관금붕 감독의 <유쾌락 유타락>,

1999년엔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에 출연했다. <하나 그리고 둘>을 찍을 당시 군 생활을 하고 있던 커는

군인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5월 개봉 예정인 저우옌쯔(周晏子) 감독의 의 촬영을 마치고 막 싱가포르에서

돌아왔지만 피곤한 기색도 없이 자신의 첫 작품에 몰두하고 있었다.

자가용에 붙은 ‘도그마 95’ 스티커

<잠시 동안 당신이 살고 있는 그곳을 떠나라>라는 제목의 이 영화에 관해 그는 학교를 배경으로 하며, 관객이 현재의 모든 생각으로부터

떠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며, 손가락을 ‘정말로 잘’ 물어뜯는 습관을 가진 교사 역할을 맡을 배우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정도 이외엔 “미리

얘기해주면 재미없다”며 입을 다문다. 그리곤 말해주는 또 하나의 힌트는 도그마 냄새가 나는 영화라는 것. 커는 자신이 도그마의 추종자임을

숨기지 않을 정도로 라스 폰 트리에와 그 친구들의 세계를 사랑한다. 오죽하면 그의 혼다 차 뒤에 ‘DOGME 95’라는 글씨를 직접 만들어

붙였을까. 그가 도그마를 좋아하는 것은 영화의 내용과 현실이 일치한다는 점 때문이다. “연기자의 경우, 모습과 표정이 마음에서 진짜 우러나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여 좋다. 관객은 그런 영화를 봄으로써 자신이 화면 속 주인공들과 함께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결국 커가 생각하는

도그마란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이나 디지털 비디오를 사용한다는 등의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는 내용의 진실성인 듯하다. “내 첫 영화는

도그마와 같지도 다르지도 않게 만들겠다”는 그의 이야기는 이런 뜻을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대만영화의 미래를 어깨에 걸고 전진

커유이룬은 자신이 이처럼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 아버지가 영화감독이었고 아역 생활을 포함해 배우로 활동해왔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면 익숙한 배우로 활동하지 무엇 때문에 감독을 지망하겠냐며 되묻는다. 사실 그가 연출쪽으로 인생의 가닥을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그는 18살 되던 해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연기학교라 할 수 있는 국립예술학원 드라마과에 입학했다. 주로

무대 공연을 전공하는 이곳에서 그는 2년을 다닌 뒤 지금까지 나가지 않고 있다. “복학할 생각이 없다”는 그는 “내 생각엔 굳이 학교를 통해

배울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한 마디로 시간낭비인 것 같아서”라고 설명한다. 그에게 영화란 사람, 그리고 세상과 대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뇌 속의 모든 상상이나 생각,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도 영화를 통해 새롭게 표현할 수 있다. 사람과 만나는 것도 좋지만 영화를 통해 대화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더욱 좋다.” 이런 세계를 직접 창조할 수 있으니 감독의 인생은 얼마나 행복하겠냐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연기를 완전히 접겠다는

것은 아니다. 비록 연기가 “생활을 위해 하는 것”이긴 하지만 어릴 때부터 연기자로 활동하며 시나리오 각색하는 것을 익혔고, 함께 작업한 많은

감독을 통해서 연출가의 덕목도 깨닫게 됐기 때문에 연기자로서의 기억은 소중하게 간직할 생각이다.

본격적으로 대만영화계 속으로 뛰어드는 그에게 사명감이 있다면 그것은 대만 사람들이 대만영화를 좋아하게끔 하는 것이다. “물론 내 영화 스승은

에드워드 양이며 그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한때 대만영화의 르네상스를 일궈낸 선배들과 나의 길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갖춘 영화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관객의 호응을 얻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사실 영화란 태생적으로 상업적이라는 속성을 띨 수밖에 없으며 평생

예술만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술성만을 고집하는 것은 대중보다는 감독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일 뿐이다. 사실 대만영화가 침체를 걷게

된 데에는 우선 감독들의 책임이 크다. 너무 예술적인 것을 추구하다보니 대만인조차 그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차분하고 신중했던 말투가 잠시 격앙됐던 것으로 미뤄볼 때 힘들게 극장에 걸려도 길어봐야 1주일이면 간판을 내리는 대만영화를 지켜보며 그는

가슴에 무언가를 깊게 새겨넣었던 것 같다.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영화는 리안의 <와호장룡>. 예술성과 상업성, 그리고 마케팅의

삼박자가 가장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모든 영화를 보고 그 영화들을 전부 좋아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여자친구의 생각에 동의하진 않지만 세상엔 좋은 영화가 많고 그중에서도 슬픈 냄새가

나는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와 왕가위의 작품을 각별하게 좋아한다는 커는 자신의 영화를 본 뒤 한명이라도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게끔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 친구들에게

사실 한국영화는 <쉬리> 외엔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인터뷰>라는 작품이 도그마 인증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영어자막본을

구하고 있어요. 도그마적 영화관에 동의하는 친구가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해보자구요. 그럼 짜이찌엔∼.

타이베이=글 문석 기자 사진 오계옥 기자

현지섭외 레지나 호(Regina Ho) 통역 이종현

자문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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