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 곽경택| 영화감독·<억수탕> <닥터K> <친구>
멜로드라마의 대기습이랄까. 올해로 3회를 맞은 막동이시나리오 공모는 최근 한국영화의 경향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멜로드라마가 문전성시를 이뤘다. 잔잔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이 장르가 공모전마다 빠지는 법이 없지만, 이번 응모작 339편 가운데선 무려 40% 가까이를 차지했다. 젊은 작가들, 작가지망생들의 흐름에서 한국영화의 경향을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SF 20%, 깡패영화 20%, 기업이나 정치가의 비리를 다룬 사회물이 10%, 사극이 5%.여성 시나리오 작가들의 참여율이 높아졌다. 멜로드라마들은 섬세한 감정묘사나 일상묘사, 대사의 재미가 언뜻언뜻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이른바 사회물들은 대부분 주제와 씨름하는 데 역부족이었다. 사회 경험이나 사회 전체를 들여다볼 통찰력의 결핍이 느껴졌다. 영화적 표현의 부족, 기존 한국영화의 다양한 문제점 답습, 외국영화의 모방흔적 등은 장르를 넘어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아쉬움이었다. 인물과 설정에서 반복되는 상상력은 이런 것. 음울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해 인물들은 고아로 태어난다. 성격은 선천적으로 비뚤어져 있다. 멜로드라마의 여자들은 왜 그렇게 결혼에 매달리는지, 그리고 어렵사리 사랑을 확인하고나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죽어나가는지.
그래도 올해는, 마지막까지 당선작을 찾다가 아쉽게도 가작 2편으로 만족했던 지난해에 비해 행복한 갈등을 맛봤다. 10여편의 시나리오가 마지막까지 저울대를 떠나지 못했으니까. <앵그리 영 맨>(민병선), <기묘한 관계>(유재용·조용상), <사랑이 오면>(고송하), (김철한), <그녀의 결혼 적령기>(이옥노), <달려라 자전거>(석지산), <연애>(고송하), <주부생활>(방진석), <요괴주점>(권윤석), <베란다>(장민석), <좁은 골목의 영혼>(심용학) 등이었다.
그중 <좁은 골목의 영혼>이 보여주는 영화적 상상력에 올해의 막동이시나리오상은 기대를 얹어주기로 했다. 연쇄살인극이 벌어지는데 명료한 동기가 없고 구성이 너무 복잡하다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연극무대를 연상시키는 몇몇 후보작과 달리 <좁은 골목…>은 영화를 예비하고 있었다. 같은 이유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30대의 정신세계를 묘하게 표현한 보다 앞선 순위를 주었다. 가작으로 뽑은 는 구성이나 글솜씨가 더 매끄러웠다. 그러고보니 올해의 선택도 ‘막동이시나리오 공모’의 전통(!)을 이은 셈이 됐다. 완성도보다는 영화적 상상력과 창의성을 본다, 실제제작에 들어갈 수 있는 작품에 우선순위를 부여한다는 것.
두편의 입상작말고도 소득은 있었다. 혹시 제작가능성이라는 기준을 의식해 관습과 유행에 투항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잘 닦으면 한국영화의 시나리오 역량을 확장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응모자들을 발견한 것 말이다. 입상작을 더 뽑는 건 어떨까, 또 한명의 심사위원 한석규씨와 짧지 않은 시간 숙고 끝에 결론을 냈다.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만나자, 원래 기대란 다음을 기다리는 것 아닌가.
▶ 제3회
막동이시나리오 공모 발표
▶ 당선작
<좁은 골목의 영혼>
▶ 가작
<11월의 비>
▶ 제3회
막동이시나리오 심사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