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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 오마주
2001-04-24

너는 웃지, 나의 영화는 절망한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오가와 신스케, 올 전주영화제가 특별히 ‘회고’하는 이 두명의 거장 감독들은 일견 서로 맞물리는 지점이라곤 전혀

없는 듯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일단 이 둘은 패전의 악몽을 떨치며 놀랍게도 눈부신 ‘경제 기적’을 이룬 국가, 그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았다는 점에서 상통하는 데가 있다. 게다가 이들은 영화를 자신들의 삶 속에 끌어들이려 고투했고 삶을 영화와 융화하려

했다는 것도 꽤 닮았다. 비록 그러기 위해 두 사람이 이용한 방법론은 상이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번 전주영화제가 마련하는 ‘오마주’ 섹션은

카메라가 어떻게 삶을 껴안으면서 역사와 관계하는지를 사고케 할 만한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파 스 빈 더 - 뉴 저 먼 시 네 마 의 심 장

먼저 파스빈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모두가 너무나 잘 알다시피 그는 뉴저먼시네마의 심장이었고 또 뉴저먼시네마 그 자체였다. 15년 활동

기간 동안 40여편 이상의 영화를 토해냈다는,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정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 작품들의 합이 이루어낸 빛나는 광채는

파스빈더를 뉴저먼시네마와 동의어로 보는 것에 별다른 이의를 달지 못하게 한다. 주로 불모의 관계들과 견고한 시스템으로 인해 욕망이 꺾이고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그의 영화들을 따라가 보자.

파스빈더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카첼마허>(1969)는 뮌헨에 온 그리스 출신 노동자 요르고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파스빈더가 직접 연기하고 있는 요르고스라는 인물은 독일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정당한 이유도 없는 외국인 혐오증과

인종주의의 벽에 부닥치게 된다. 파스빈더는 이 그리스인이 맞닥뜨려야 하는 부조리한 경험을 통해 일상 수준에서 독일은 여전히 파시즘의 은밀한

매력에 감염되어 있는 사회라고 말한다. <카첼마허>에서 또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최소한의 정보로 이야기를 걸어오는 미니멀리즘의

스타일인데, 이건 초기의 파스빈더가 급진적인 영화감독인 장 마리 스트라우브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시사한다. 76년작인 <차이니즈

룰렛>은 마치 잔혹성과 악의를 재료로 세워진, 출구없는 미로와도 같은 영화다. 불구인 딸이 소원한 관계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자리에 모이게 한다. 그리고는 치명적인 게임이 시작된다. ‘차이니즈 룰렛’이란 이름이 붙은 이 게임이 치명적인 것은 이것이 나치 시대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했는가를 사람들이 알아맞히는 불쾌하고도 고통스런 ‘진실 게임’이기 때문이다. 떠올리기 싫은 과거의 기억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드라마는 사디즘과 절망을 향한다.

파스빈더의 유례없는 창작에의 열정은 <케렐>(1982)을 끝으로 진화(鎭火)되고 만다. <케렐>은 파스빈더가

죽기 전에 촬영을 끝냈으나 그뒤에야 편집을 마쳐 완성된, 파스빈더의 마지막 작품이다. 영화는 케렐이란 이름의 프랑스인 선원의 ‘정체성’을

추적한다. 한 사창가를 드나들던 그는 결국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진정한 성적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장 주네의 소설을 스크린에 담아낸 이

영화는 주네식의 잔혹극을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비주얼 감각으로 채색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케렐>은 어떤 사람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역겨운 경험으로 남겠지만 또다른 사람들에겐 신경을 긁는 듯한 미묘한 아름다움을 전해주게 될 것이다. ‘오마주’ 섹션은 여기서 짧게

거론한 작품들 외에도 <사계절의 상인>(1971),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1972),

<폭스와 그의 친구들>(1974), <양지로의 여행>(1977) 등을 포함해 모두 15편의

파스빈더 영화들이 상영될 예정이다.

▣ 오 가 와 - 다 큐 멘 터 리 스 트, 카 메 라 의 객 관 성 을 폐 기 하 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공동 작업에 의해 창조되는 세계. 일본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스트인 오가와 신스케가 영화를 매개로 만들어 보고자하는

세계는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 촬영자는 단지 촬영자로만 머물지 않고 찍히기도 하고 찍히는 쪽은 그저 피사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촬영쪽에 영감과 교육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렇듯 찍는 쪽과 찍히는 쪽의 관계를 통해 긴장이 생겨나고 상호침투가 일어나며 진정한 공유가

이뤄지는 다큐멘터리란 세계 다큐멘터리영화사에서도 독특한 것이었다.

60년대 말 오가와는 자신의 말에 따르면 “땅의 냄새”에 매료되어 나리타의 산리쓰카로 카메라를 가져간다. 68년 당시

나리타는 거대한 충돌이 일어나던 땅이었다. 일본 정부가 농민들의 반대하는 목소리도 듣지 않은 채 이 지역에 거대한 국제공항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밀고 나가자 지역 농민들은 학생세력 등과 연대해 그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했던 것이다. 이 투쟁의 과정을 찍어 만든 영화가 오가와의

<일본해방전선, 산리츠카의 여름>(1968)인데, 촬영 당시 오가와는 크게 두 가지의 원칙을 세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 하나는 카메라는 철저히 투쟁에 참가하는 농민들 편에 선다는 것이었고, 또다른 원칙은 그러면서 카메라를 숨기거나 망원렌즈를 쓰거나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결국 오가와가 처음에 의도했던 바도, 그리고 마지막에 성취했던 것도 다큐멘터리 카메라의 이른바 ‘객관성’이란 모호한, 그리고 불가능한 개념을

폐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산리츠카의 여름>은 정말이지 철저히 농민들의 편에 선 영화가 되었던 것이다. 투쟁하는 농민들과 똑같이

카메라는 경찰들이 퍼붓는 물대포 앞에서 한치도 움직이지 못하고 또 경찰들에 ‘체포’되기도 한다. 영화의 후반부. 카메라는 투쟁을 통해 육체가

경험을(다시 말해 일종의 교육을) 흡수했다고 말하는 한 여인을 비춘다. 나리타의 공항이란 “영원한 지옥”일 뿐이라며 그녀가 말한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것이다.” 오가와는 그 농민들이 속한 대지를 공중에서 다시 한번 훑어보며 그 위에 마치 복음을

내려주듯 베토벤의 을 들려준다.

오가와에게 투쟁은(곧 삶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그는 같은 지역에 계속해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결국 산리쓰카에서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들은

<일본해방전선, 산리츠카의 겨울>(1970), <산리츠카: 제3차 강제측량저지투쟁>(1970),

<산리츠카 이와야마에 철탑이 세워지다>(1972) 등으로 이어지며 ‘산리츠카 7부작’을 형성하게 되었다. 산리쓰카에서

농민들과 함께했던 오가와와 오가와 프로덕션 사람들은 실제로 농사를 해보면서 그 과정을 카메라에 담기에 이르렀다. 예컨대 <일본국

후루야시키 마을>(1982) 같은 경우는 오가와 팀 스스로 벼 냉해의 원인을 찾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농민들을 끌어들이며 그들과

어울리는 과정을 담은, 일종의 ‘과학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유물론적 작업 과정을 통해 오가와가 성취한 바는 영화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인식론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시자카 겐지라는 일본인 평론가가 지적한 바 있듯이, 이런 작업을 통해서 벼농사를 비롯한

모든 생활이 영화와 연관되고, 영화와 관련된 것은 또한 모든 생활로부터 오는 듯한, 일종의 순환적인 열린 시스템이 성립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오가와에 대한 ‘오마주’ 섹션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 가운데 <영화 만들기와 마을로 가는 길>(1973, 후쿠다

가즈히코 감독)은 오가와 팀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를 직접 들려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경우다. 1972년 11월에서 1973년

1월까지, 오가와 팀에서 <산리츠카: 헤타 마을>(1973)을 편집하고 있는 동안에 촬영된 이 영화는 상당 부분 오가와 팀의

사람들이 러쉬 필름을 보거나 좌담을 갖거나 하면서 영화 만들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그 내용이 채워져 있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면 우리는

영화의 진정한 완성과 관련하여 이 사람들의 지니고 있는 단순한 듯 하면서도 단호한 그런 생각을 들을 수 있다. “우리는 관객들로부터의 피드백을

필요로 한다…우리는 자신이 해왔던 것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 이건 자극적인 사고다.”

파스빈더 영화 15편, 그리고 오가와 영화 11편이 상영되는 ‘오마주’ 섹션은 영화사의 현장으로 직접 입회할 수 있는 진귀한 기회가 되어

줄 것이다. 영화사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라면 전주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오마주’가 펼쳐지는 극장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홍성남|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