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1 – 발견
- 창작을 이제 막 시작한 감독들의 단편영화를 볼 때 어떤 감정을 느끼나.
이상근 단편영화가 시작하기 전 “진짜 재밌으면 좋겠다!”라고 기대한다. 다른 영화를 볼 때와 완벽히 다른 마음가짐은 아니지만 보석 같은 영화를 만나길 기대한다. 그리고 어떤 고생을 거쳐서 영화를 만들었을지 알기에 소중함을 간직하고 아끼는 마음이 든다.
유재선 영화제에 참석하면 반드시 한두편의 단편영화에 꽂힌다. 그러면 가슴이 막 두근거린다. 그 감독의 미래가 궁금해지고, 향후 작업에 관한 소식을 접하면 반갑고 응원하고 싶어진다.
윤가은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 2~3분밖에 안 지났는데 ‘와, 이건데!’ 싶을 때가 있다. 그럼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이 사람 뭐지?’라면서 영화를 바라본다. 그리고 영화가 끝에 다다라서도 만족 이상을 전해줄 때 전율을 느낀다. 그러면 그 감독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영화에 관한 정보를 미친 듯이 찾게 된다.
이종필 영화학교 다닐 때 존경하는 선생님이 “영화 만드는 능력은 서서히 좋아진다기보다는 점핑한다”라고 얘기했다. 영화제에서 낯설고 처음 보는 이름의 창작자들이 만든 단편영화를 볼 때 그 점핑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들이 어딘가에 있다가 점핑해 지금 여기에 도착한 모습을 볼 때 놀랍다.
장재현 단편영화는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저때 내가 야심이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옛날로 돌아가는 그런 기분에 빠진다. 그러면서 때 묻은 나를 회개하게 되고.
이옥섭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의 취향이나 사랑하는 것들이 묘하게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다. 그게 내 오해일 수도 있지만, 그럴 때 영화를 보는 동시에 사람을 만나는 기분도 든다. 이 감독은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까 궁금해지고,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이충현 단편영화를 볼 때 항상 설렌다. 나 역시 단편영화를 만들었기에 단편 창작자들의 에너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이제 막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내놓은 단편영화를 보면 내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엄태화 어떤 한 장면일 수도 있고, 감독이 돋보일 수 있고, 새로운 좋은 배우들이 눈에 들어올 때도 있다. 한 장면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땐 ‘상업영화에서 저런 장면을 찍는다고 했을 때 과연 내가 제작사나 투자사를 설득해서라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배우가 돋보이는 경우, 상업영화를 하면서 자꾸 안전한 선택을 하는데 ‘나는 왜 더 도전하지 못하고 원석 같은 배우들을 못 찾았을까’ 싶다.
조성희 반가움! 동료가 있구나. 영화만 생각했던 때 나와 닮은 친구를 보는 느낌.
- 지난해 미쟝센에서 만난 작품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이상근 나는 영화제 시작부터 <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가 그렇게 좋더라. 울림이 컸다. 영화는 결국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다. <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는 배우의 연기도 좋고, 감정도 유려하게 전달해서 가짜가 아니라 진실되게 느껴졌다.
유재선 이세형 감독의 <스포일리아>를 정말 인상 깊게 봤다. 심사위원인 이경미 감독과 기담 섹션의 최우수 작품상으로 이견 없이 선정했다. 개인적으로는 대상까지 밀어보려고 했다. 그 정도로 인상 깊었다.
윤가은 <자매의 등산>이 재밌었고 <벚꽃 종례>도 정말 좋았다. 풋풋하고 말랑말랑한데 느끼하지 않았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했고 이것이 요즘 하이틴영화란 걸 느꼈다.
이종필 나 역시 작품도 좋았지만 <자매의 등산>의 심해인 배우와 <스포일리아>의 장요훈 배우가 참 좋았다. 장요훈 배우는 <탈주><파반느>오디션 때 제일 잘해냈다. 이 친구에게 무언가가 더 있을 것 같지만 역할이 작아 보지 못한 모습을 <스포일리아>와 다른 단편들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촬영상을 주진 못했지만 김진형 촬영감독! 지난해 심사하며 본 작품 중 <나만 아는 춤> <오후의 손님> 두편의 촬영이 정말 좋았는데, 같은 촬영감독이었다.
장재현 <미미공주와 남근킹>이 제일 기억난다. 순수하게 재미있었다! 근데 그게 단편영화 작업에서 참 어려운 일이다. 시간은 짧은데 할 말은 많고 장르도 살려야 하는 게 쉽지 않다.
조성희 기담 섹션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이세형 감독의 <스포일리아>를 보고 통쾌함과 해방감을 느꼈다. 예술적 성취와 감독의 상상력에만 몰두해 그외엔 아무것도 의미 없다는 창작자의 태도가 근사했다.
이충현 품행제로 섹션이었던 이소현 감독의 <아다댄스>. 심사 때도 언급되지 않은 작품이고, 내가 심사한 섹션의 작품도 아니었지만 뮤지컬 형식을 시도한 실험 정신이 정말 인상 깊었다.
엄태화 남소현 감독의 <떠나는 사람은 꽃을 산다>. 감독처럼 베를린에서 유학 생활을 한 적은 없지만 유학생이 느끼는 장소의 공기와 만나는 이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이 그대로 전달됐다.
한준희 <미미공주와 남근킹>을 보고 엄청 많이 웃었다. ‘이 감독은 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존에 학습해온 플롯이나 캐릭터에서 완전히 어긋나 있었다. 그런데도 정말 재밌었다. 많이 웃었다.
키워드2 – 연결
- 미쟝센영화제가 재개되기 전과 지금의 시대는 너무 다르다.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도 변했다. 미쟝센영화제가 어떤 경험의 장소가 돼야 한다고 보나.
이상근 여전히 여러 사람과 큰 스크린을 바라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석같이 빛나는 영화들을 소개하고 다 같이 즐기는.
윤가은 계속해서 영화 만드는 사람이 뭘 고민하고 있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고, 무엇을 바라보면서 가야 하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되면 좋겠다.
유재선 우선 관객에게 그해 최고의 단편영화들을 모아서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모든 영화감독이 미쟝센영화제를 거치는 건 아니지만, 많은 감독의 출발점을 볼 수 있다는 건 무척 특별한 일이다.
이종필 10대 시절 영화를 꿈꾸며 이 영화, 저 영화를 보던 시기에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빔 벤더스 감독의 <구름 저편에>(1995)를 보았다. 극 중 영화감독으로 등장하는 존 말코비치 배우가 내레이션으로 “영화감독이란” 하고 운을 뗄 때 지루하게 보고 있다가 무슨 말을 할까 싶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영화감독이란, 집 없는 사람들로서 헛된 꿈을 꾸며 방랑하는 존재다”라고 말하더라. 당시엔 ‘좋은 말 같지 않은걸?’이라고 생각했지만, 언젠가부터 그 내레이션이 자주 떠오른다. 미쟝센영화제에 와서 집행위원, 심사위원 감독들, 상영작 감독들을 보면 다 집 없이 방황하다 마주치는 사람들 같다. 묘한 따뜻함이 있다.
장재현 이 영화제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감독, 배우, 스태프가 주인공이 되는 그런 장이다. 미쟝센에 온 관객들이 눈여겨본 이들이 몇년 뒤에 잘돼서 ‘역시 내 직감이 틀리지 않았구나’를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돼야 한다. 예를 들면 미쟝센영화제에서 좋은 배우들을 만난다. 몇년 뒤 그 배우가 당시 심사를 한 감독의 작품에 등장하는 걸 볼 수 있다. 나도 그랬다. <사바하>에 무당으로 나오는 김금순 배우를 미쟝센에서 처음 보았다.
이옥섭 같은 영화를 선택한 관객들이 이 영화가 좋을지 아닐지 모르는 상태로 함께 앉아 상영을 기다리는 그 순간이 참 좋다. 단편영화를 보면서 상상했던 감독이 영화가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 실제론 어떤지 확인하기도 하고. 미쟝센영화제가 그런 우연한 만남의 장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성희 미쟝센영화제가 다시 열리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표도 순식간에 매진됐다. 출품 공고를 내면 작품도 많이 들어온다. 관심이 이렇게 많은 걸 봤을 때 아직 오프라인으로 작품과 감독을 만나는 영화제의 의미가 건재하다는 걸 느낀다.
이충현 지난해 심사위원으로 오랜만에 미쟝센영화제에 참여했다. 정말 좋았다. 영화제가 열리면 사람들이 다 같이 극장에 모여 영화를 보고 상영관을 빠져나오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당연했다. 그 당연한 것을 지난해 영화제에서 오랜만에 경험하다보니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미쟝센이 더욱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극장이 힘들 때 영화제가 힘을 줄 수 있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겠다고.
한준희 단편영화가 쇼츠, 릴스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영화적일까. 질문의 대답은 작품 자체인 것 같다. 그에 대한 답을 보여줄 수 있는 단편영화들이 모인 영화제가 됐으면 좋겠다.
엄태화 나는 기본적으로 영화는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쇼츠나 릴스를 보지만 그건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재미 말고 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 스토리가 주는 재미가 있다. 미쟝센영화제는 극장을 찾은 관객이 무언가를 함께 느끼고 감동받고 웃고 우는 단편영화를 보여주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미쟝센영화제에서 수상했을 때의 경험 혹은 관객으로 참여했을 때 기억도 공유한다면.
이종필 나와 윤가은, 유재선 감독은 연출작으로 안된 사람들이다. (웃음) 우린 미쟝센영화제에 애증이 있다.
윤가은 ‘미쟝센영화제 어떻게 되나 보자’, ‘진짜 나 같은 사람은 영화 안 만들어야지’, 이런 복합적인 마음이 있었다.(웃음)
이종필 여기 이상근 감독님은 미쟝센의 왕자다.
윤가은 자신은 ‘미쟝센의 서자’라고 하는데, 왕자다. 단편 <베이베를 원하세요?>가 예심에서 떨어졌는데, 본선 작품을 심사하던 박찬욱, 류승완 감독이 예심에 떨어진 작품들을 다시 뒤져서 찾아냈다.
이상근 이종필 감독은 연기상을 받았잖나. 연기상이 오히려 받기 힘들다.
이종필 물론 연기상 받아서 정말 좋았다. 매니지먼트사에서 연락도 많이 왔었다. 송강호 선배에게 상을 받았고, 뒤풀이 가서 앉아 있는데 이현승 감독님이 “야, 너 여기서 뭐 해. 연기상 수상자인데 강호랑 얘기 좀 해”라고 떠밀어서 “네, 저 연기상입니다”라고 인사한 기억도 난다.
이상근 나는 2004년 3회 때 처음 선정됐는데, 정말 강렬했다. 내 인생 첫 영화제였기 때문에. 영화제 중반쯤 지나서 이현승 감독님이 내 옆에 탁 앉아서 어깨를 토닥토닥하더니 “잘 봤어. 그래 뭐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고”라고 하면서 자리를 뜨셨다. 며칠 지나 시상식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그때 ‘세상에 이런 일이 일구나’ 싶었다. 집에 가서 자랑도 했다. 그런 다음 1년은 건너뛰고 <베이베를 원하세요?>를 찍어서 냈더니 또 덜컥 됐다. 예심에서 떨어졌는데 심사위원인 류승완, 박찬욱 감독이 쓰레기통에서 건져올려 최우수 작품상을 주셨다. 연기상도 받았고. ‘나한테 또 이런 일이?’ 싶었다. 그다음에 <명환이 셀카>를 냈는데 수상은 못했다. 그리고 몇년 휴학하고 영화 촬영 현장에 있다가 학교로 돌아와서 <간만에 나온 종각이>이란 작품을 만들어서 <백년해로외전>과 같이 상영했다.
이종필 시멘트로 묻어버리는 영화!
윤가은 진짜 이상한 영화다!
이상근 나는 미쟝센영화제에서 얻은 게 많다. 갚아야 할 게 많다.
한준희 나는 수상한 적은 없고, 폐막식에 헛헛한 마음을 가지고 앉아 있은 적은 있다. (웃음) 그리고 ‘꼭 잘돼야겠다’는 이상한 생각들을 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 영화제 경쟁작에 들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계속 이 일을 해나가도 된다는 증명이라고 느꼈다.
조성희 나는 30대 초반에 미쟝센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늘 공포에 떨면서 살던 때였다. 당시 미쟝센이 내게 준 것은 허락이었던 것 같다. 영화를 계속해도 된다는 허락. 집에서도 영화감독의 길을 반대했지만, 미쟝센영화제만큼은 윤허해주는 느낌이었다. (웃음)
이충현 수상자로 호명되던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만큼 행복했다! 수상 전까지 영화는 혼자만의 일이었고 외로운 싸움이었는데, 상을 받음으로써 계속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은 듯했다. 영화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시작점!
엄태화 수상 당시에는 어안이 벙벙했고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 작업이 잘 안되거나 아이디어가 너무 생각이 안 나서 좌절할 때 그때를 반추해본다. 그때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당시에는 만끽하지 못했지만, 사실은 내 생애 정말 좋았던 순간이란 생각이 든다. 미쟝센이란 충전기를 하나 달고 사는 느낌이랄까.
장재현 내가 지금 영화를 시작하고 20년 다 돼간다. 그런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날을 꼽으면 <파묘> 천만 관객 돌파 때보다 미쟝센영화제 수상 때가 더 좋았다. 정말 순수하게 행복했다.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어렸을 때 처음으로 반에서 1등 했던 기억 같은 건 영원히 잊히지 않잖나. 처음 받은 상장 같아서 영원히 못 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