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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주는 사람,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배우 강말금 연기론

강말금이라는 배우의 이름을 듣고 그 얼굴을 마주하면, 말갛고 강인한 기운에 단박에 사로잡힌다. 잡초 같은 꿋꿋함과 계곡물처럼 깨끗한 천연덕스러움, 차돌 같은 순수함을 가진 여자. 많은 이들에게 강말금의 첫인상으로 남은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속 찬실은 마치 말금 같았다. 그는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인생의 쓴맛을 삼키면서도 여전히 영화와 사랑을 꿈꾼다. 억센 듯 수줍은, 투박한 듯 단정한 그를 보고 있노라면 몰랐던 아름다움을 하나 깨친 기분이 들었다.

찬실이로서 보여준 쓰고 달고 맵고 신 모습은 여러 갈래의 필모그래피로 뻗어나갔다. <드라마 스페셜-일의 기쁨과 슬픔>에선 회사의 갑질 앞에서도 생활을 지탱해나가는 지혜를, 영화 <고당도>에서는 조카의 등록금을 위해 죽지도 않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내는 선영을 연기하며 현실에 주저앉지 않는 지근한 생활 연기를 선보였다. 드라마 <신성한, 이혼>과 <기적의 형제>에서는 설렘을 간직한 순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짝사랑에 마음을 앓았던 찬실의 사랑스럽고 소녀적인 면모를 계승한다. 그런가 하면 드라마 <서른, 아홉>에서는 현실 자매의 케미를, <대박부동산>에서는 여성 동료와의 스파크 튀는 케미스트리를 드러내며 코믹하고도 야무진 면모를 발산하고, 영화 <로비>에서는 속물적이고 탐욕스러운 장관을,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애순 부부에게 사기를 치는 뻔뻔한 여관 주인으로 분해 대중에게 능청스럽고도 강렬한 캐릭터를 각인시켰다. 강말금이 꾸준히 맡아온 배역 중 하나는 엄마다. 드라마 <나쁜엄마>에서는 꼬장꼬장하지만 정 많고 속 깊은 뽀글머리 엄마를,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는 엄하지만 자애로운 혜빈 홍씨를,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에서는 괴물이 되어서도 딸을 잊지 못하는 지극한 모성의 엄마를, 영화 <애비규환>에서는 여자 친구를 임신시킨 나사 하나 빠진 듯한 소년의 이상한 엄마를 맡았다. 강말금이 연기하는 ‘엄마’는 미성숙한 이들을 돌보고 키워내는 주체로 확장되어,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에서는 조카를 끔찍이 챙기는 베테랑 형사로, <경도를 기다리며>에서는 후배 기자를 키워주는 사수이자 부장으로 진화했다. 이 계보 속에서 강말금의 카리스마는 나날이 빛났고 공력은 단단히 쌓여갔다. 그리고 마침내, 최근 종영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모자란 남편이자 감독을 챙기고 수습하고 담금질하는 아내이자 제작자, 고혜진을 만난 것이다.

고혜진은 세상의 인정에 목마른 미숙하고도 지질한 인간 군상을 보살피고 거둬 먹이는 존재다. 다시 말해 상상력과 감수성이 풍부하며 꿈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으나 그만큼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유약한 감독들을 채찍질하고, 때론 당근을 급여하며 영화를 만들어내는 제작자다. 그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기버’, 주는 사람이다. 퍼주는 사람. 받기보다는 주는 데 익숙하고, 주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는 사람. 그런 고혜진의 욕망은 꿈꾸는 바보들의 꿈을 이뤄주는 것, 그럼으로써 자기효능감을 느끼는 것, 그리하여- 배우 강말금의 말을 인용하자면- “러브 레터와도 같은 작품”을 받아 드는 것. 언뜻 보면 고혜진은 지난한 인정투쟁과 지지부진한 인간 군상 사이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물로 보이지만, 가만히 그를 들여다보자. 남편인 박경세(오정세)의 안될 영화들을 되게 만들고, 상도덕 없는 최 대표(최원영)에게는 “대한민국에서 누가 영화를 돈 벌라고 하냐? 놀라고 하는 거지!”라 일갈하고, 모두가 말리는 황동만(구교환)의 데뷔작을 제작할 것을 택한 고혜진이야말로, 로시난테를 타고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돈키호테가 아닐까.

강말금은 고혜진을 지나치게 희생적이지 않게, 또 너무 모질지도 않게 그려낸다. 단전에서 우러나는 발성과 정확한 딕션으로 말맛을 리드미컬하게 살리며 인물의 힘을 살렸다. 일과 사람에 지친 사무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자애롭게 미소 짓거나 벼락같이 소리쳤다. 강말금의 얼굴을 한 고혜진은 영화 ‘애욕의 병따개’ 시나리오를 읽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사랑한다 말하는, 갑질하는 영화사 대표와 한판하고 와서 탱고 음악에 막춤을 추는 인간적인 인물이 됐다. 배우라는 불같은 꿈을 품고도 현실과 타협해 회사에서 쳇바퀴 돌 듯 보낸 청춘, 서른에 들어간 극단 생활, 무엇이든 한번 손에 쥐면 애지중지하여 자기 것으로 체득하며 나아간 세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며 스스로를 이 자리에까지 데려온 배우 강말금. 그는 자신이 고혜진보다 황동만을 닮았다 말하지만, 강말금에게는 고혜진과도 같은 품위도 황동만 같은 열정도 있다. 꿈꾸는 바를 위해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는,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해치지 않는, 좋은 이야기를 보면 눈물을 흘리고 마는⋯. 그들의 모습에서 배우 강말금을 본다. 앞으로 그가 펼쳐 나갈 새로운 인물들이 어떤 모습이든, 그 중심엔 훼손되지 않는 맑음이 자리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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